기존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배용준 대작’ 문화방송 드라마
▣ 이문혁 드라마 프로듀서
어려서 텔레비전을 보며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도대체 어떤 착한 사람들이 저렇게 돈 한 푼 안 받으면서 매일 저런 걸 만들어 보여주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사이에 나오는 광고가 그걸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고, 음악 방송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는 세상의 모든 것 뒤에는 돈, 거창하게는 자본의 논리가 쩔렁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드라마 를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솔직히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첫 방송을 보고 놀라웠다. 소문난 잔치에 적지 않게 먹을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배우 배용준이 있었다.
배용준+김종학·송지나+제작비+공중파
제작비 등 기존의 모든 숫자에 ‘0’을 하나 더 붙여놓은 라는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많은 이들이 있겠지만, 그 중심에 배용준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라는 주신의 별 아래서 일본의 많은 이들을 더불어 행복하게 했던 ‘욘사마’가, 를 통해 다시 한 번 주신의 왕으로 부활하기를 마음먹지 않았다면, 기존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이 대작은 하늘 아래 태어나기 힘들었다. 과장하면 배용준의, 배용준을 위한, 배용준에 의한 드라마, 혹은 ‘주문형 한류 맞춤 상품’이 였고, 그런 그에게는 든든한 네 개의 신물이 있었다. 그 하나는 ‘김종학’ ‘송지나’라는 원투 펀치. 다른 하나는 수백억원이라는, 정말 실감이 안 나서 오히려 더 실감나는 제작비. 그리고 드라마 속의 표현을 살짝 빌리자면 “빤쓰 벗고 도와주는” 공중파의 무지막지하고 ‘파격’적인 지원. 마지막으로는 주신의 왕의 재림을 아직까지도 ‘화천회’처럼 일사불란하게 준비하고 기다려준 ‘욘사마’의 나라 밖,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팬들. 이렇듯 실패하기가 성공하기보다는 더 힘들 조건을 가지고 ‘태왕’은 세상에 태어났다.
돈이 없으면 못 만드는 것이 드라마다. 하지만 돈만 있다고 좋은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라서 어렵다. 속에는 돈도 보이지만, 그들이 보낸 3년의 시간이 그다지 허송의 것은 아니었음도 느껴진다. 브라운관을 통해서는 처음 보는 듯한 만듦새의 화면을 가능하게 한 것은 놀라운 상상력이다. 더불어 그 상상력을 현실로 가능하게 한 만든 이들의 고집이다. 한참 할아버지이신 이 너무 소박하게 사셨구나라고 느껴질 만큼, 은 정말 고구려가 망한 다음의 얘기구나라고 안타까울 정도로 속의 세상은 정교하고 화려하다. 격구장 속의 말들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고, 화면 속에 너풀대는 염색 천의 색색은 눈을 행복하게 한다. 마카오 카지노에 지금 가져다놔도 될 법한 룰렛 모양의 도박기의 세밀함, 보성 녹찻밭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웅장한 아름다움은 또 어떤가. 광개토대왕비 속에, 혹은 몇 편 안 되는 사료 속에 중국 글씨로 갇혀져 있던 고구려를 우리 눈앞 ‘태왕’의 나라로 바꾸어놓은 상상력과 장인의 노력이, 누구나 한 번쯤 의심했던 를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최소한 배용준이 연기하는 ‘담덕’의 어린 시절은 저것 아닌 다른 것으로는 상상할 수 없게 만든 ‘유승호’의 놀라운 재능이, 의 두 주인공 박상원·최민수가 보여주는, 세월과 연륜이 느껴지는 말 그대로의 ‘조연’이, 텔레비전을 가진 백 집 중에 서른 집은 에 눈을 맞추게 한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30%의 시청률에 아직 ‘태왕’은 배가 고프듯, 드라마 라는 하나의 사건을 보는 이들 또한 주린 배를 다 채우지는 못해 보인다.
100 집 중 서른 집이 본다는 것은
우리 가요가 ‘서태지’ 이전과 ‘서태지’ 이후를 얘기할 수 있다는 같은 의미에서, 이전과 이후로 드라마를 나눌 수 있을까? 한 드라마 혹은 넓게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은 객관적인 숫자와 더불어 그것이 사회에 혹은 그것이 속한 장르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키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백 집 중 서른 집이 보고 있다는 것은 아직 칠십 집은 안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하물며, 동시간대에 을 배우기 위해 ‘태왕’을 외면하는 사람도 15%는 족히 넘었다. 제작비로만 비교해도 ‘0’이 하나 빠진 드라마를 말이다. 제작비 혹은 드라마의 완성도와 시청률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알리바이에 기댄다고 하더라도 가격 대비 효율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드라마 를 ‘귀가 시계’로 만들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어서 상대적 비교가 더 아프다.
그럼 다른 측면. 드라마 는 미니시리즈 혹은 트렌드 드라마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었고, 드라마 이후 30대 싱글 여성은 주인공 1순위였다. 3년의 준비 기간과 몇백억원을 넘나드는 제작비, 그리고 다시 이런 조합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최고의 스태프와 연기자를 쏟아부은 것에 비해서 그 실재적인 반향은 실질적으로 한류가 가능하게 했던 드라마 보다 크다고 하기는 ‘아직은’ 어렵다. 이유는? 드라마 은 드라마 자체가 잘돼서 돈을 벌어들였다면, 돈을 벌기 위한 상품으로 기획되고 태어난 것이 드라마 다. 오해하지는 마시길. 배용준이 없이, 또한 배용준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홈시어터도 아낌없이 장만하겠다는 구매력 높은 ‘욘사마’의 팬들이 없이, 이런 엄청난 프로젝트가 반복되기는 힘들다는 현실을 말하는 거다. 투자란 기본적으로 돈 놓고 돈 먹기이다. 최고의 시청률보다는 최고의 수익률이 더 우선일 수밖에 없이 기획된 거대한 프로젝트가 다. 그래서 드라마 속 태왕의 캐릭터와 ‘욘사마’의 이미지가 부딪힌다면 주저 없이 후자를 선택해야 하며, 고증에 철저한 세트보다는 테마파크로 만들어 유료화할 수 있는 공원을 만드는 것이 더 우선일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하는 것이 프로젝트가 발을 딛고 선 현실이란 얘기다. 반복 불가능한 전례랄까? 휘둥그런 볼거리가 가끔은 헛배를 부르게 하는 느낌도 드라마라는 장르로서의 ‘집중력’을 가끔 건드리는 드라마 외적인 어떤 것들 때문은 아닐까 하는 것은 괜한 질투심 때문이 아니라, 애정에서 비롯된 아쉬움이다.
드라마 안팎에서 모두 건승하길
속의 대사 한마디. “도박장에는 태어나고 죽고 사람살이가 다 있는 곳인디.” 드라마 속에도 태어나고 죽고 사람살이가 있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만드는 일이 도박이어야 한다면 슬픈 일이다. 가 드라마 안팎에서 벌이고 있는 땀을 쥐고 있는 승부가, 주신의 왕이 등극해서 북방을 호령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어쨌든 건승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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