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의 해피엔딩을 섬뜩하게 각색한 발레 </font>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곡 는 누구나 줄줄 꿰는 낭만적인 줄거리로 유명하다. 물레 바늘에 손을 찔려 100년간 잠자는 불행에 빠진 공주는 가시덤불 성에 갇혔다. 왕자님의 등장과 키스로 마침내 깨어나 공주는 구원을 받고, 결혼해 행복하게 잘살았다는 결말이다. 세계 발레 동네의 이단아로 꼽히는 안무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이런 줄거리가 성에 차지 않았다. 2002년 그는 개작을 내놓으면서 화려한 동화의 환상을 뒤집어버렸다. 모호한 불안이 잠복하며, 교육, 성차별의 문제까지 암시하는 복잡다단한 사회적 춤판으로 탈바꿈을 시켰다. 그가 이끄는 프랑스 남동부 소국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10월12, 13일 밤 7시30분 대전문화예술의전당과 10월17, 18일 밤 8시 성남아트센터오페라하우스에서 선보일 두 번째 내한무대의 발레 의 얼개가 바로 그렇다.
결혼하고 보니 시어머니가 식인귀
마이요가 각색한 에서 이 해피엔딩은 섬뜩하고, 불안과 불온이 잠복한 동화로 돌변한다. 공주는 요행히 눈을 뜨고 왕자와 결혼하지만, 왕자의 어머니, 곧 시어머니인 식인귀에 의해 산 채로 음식 솥에 던져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이요는 프랑스 작가 페로가 지은 동화 원작의 음울함과 그로테스크함을 고전발레의 환상적 구도로 뒤덮어버린 천재 안무가 프티파의 각색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오랜 잠에 빠졌다가 왕자와의 키스로 여성적 강인함을 되살린 공주는 결국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시어머니를 순수한 영혼의 힘으로 내몰아낸다. 어쨌든 해피엔딩을 이루지만, 공주가 잠에서 깨어난 뒤 무대에 펼쳐지는 불안하고 섬뜩한 사건들, 이런 줄거리에 걸맞지 않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이고 원색적인 의상과 배경 소품들, 밝고 명랑한 분위기…. 극의 재미는 주인공인 오로라 공주와 왕자의 상반된 성장 환경, 공주에 가리워졌던 왕자와 그의 어머니가 생생한 캐릭터로 새롭게 부각된다는 점에 있다.
공주는 과잉 보호를 뜻하는 투명한 풍선에 싸여 등장하고, 왕자는 사랑 없이 어머니에게서 자라난 것으로 설정된다.
마이요는 ‘부모와 아이의 사랑에 대한 작품’으로 원작을 재해석한다. 적당한 부모의 사랑이 가정비극을 막는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숱한 남성들의 공격 속에 투명한 풍선이 깨어지며 맨몸이 드러나는 오로라 공주의 모습 또한 성폭력의 암시가 아닌가. 또 잠에서 깬 공주가 왕자와 함께 뒤엉켜 벌이는 2인무는 프티파 안무에서는 보기 어려운 관능과 애욕 또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잠자는 공주를 원죄를 지닌 인간 존재로, 왕자를 구세주 예수로 보았던 기존 해석과는 완전 딴판인 셈이다. 동심과 전위의 성격을 아울러 지닌 무대 미술과 조명 등의 파노라마는 묘한 시각적 모순이 쾌감으로 변해 다가온다. 프랑스 남동부 소국 모나코에서 온 몬테카를로 춤꾼들의 발레 선물은 애호가들에게 현대발레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무대가 될 듯하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국내 첫 무대
현대발레 안무의 거장인 존 노이마이어에게 사사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는 ‘고전의 재창조’를 숙명적 화두로 강조해왔다. 1992년 몬테카를로발레단 예술감독에 취임한 이래 등의 고전을 재해석한 현대발레 작품들을 꾸준히 창작하며 호평을 받아왔다. 국내 첫 무대인 는 2003년 12월 모나코 현지에서 초연돼 발레춤꾼의 최고 영예 중 하나인 니진스키상도 받았다.
사실 몬테카를로발레단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근현대 발레 혁신의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최고의 발레 흥행사 댜길레프와 전설적인 무용수 니진스키, 혁신적인 안무와 무대장치로 20세기 초 서구 춤판을 풍미했던 러시아 발레단 발레 뤼스의 적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1963년 문을 닫았다가 1985년 캐롤라인 공주에 의해 다시 발족한 발레단은 1992년 마이요의 예술감독 임명 뒤 고전의 재해석과 동시대 현대발레 등을 함께 다루면서 명문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다지고 있다.
마이요의 혁명아적 카리스마와 더불어 이번 발레단 공연에서 또 다른 주목거리는 바로 말러 전문 지휘자인 거장 엘리아후 인발과 왕립 악단 몬테카를로 필하모닉의 연주를 듣는 것이다. 토스카니니, 번스타인, 솔티, 마르케비치 등의 거장들이 거쳐간 이 악단의 현악과 관악기 연주자들은 화려한 색채감이 극에 달하는 차이콥스키 발레곡의 왈츠와 서사적 음악들을 들려준다.
몬테카를로 필하모닉의 연주도 합세해
클래식 팬들에게는 발레 공연과는 별도로 열릴 인발의 특별한 말러 교향곡 연주가 더욱 반가울 것이다. 10월15일 밤 7시30분 대전문화예술의전당아트홀에 이어, 19일 밤 8시 성남아트센터오페라하우스에 인발은 악단과 함께 말러 곡을 불러들인다. 말러와 같은 유대인인 인발은 녹음을 거부한 독불장군이자 선불교에 심취했던 거장 첼리비다케의 제자다. 과장 없이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말러 해석으로 일가를 이룬 그는 2005년 베를린 심포니와의 내한 연주에 이어 가장 진중하며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말러 교향곡 5번을 들려준다. 젊은 영재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 김수연씨와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 d장조를 협연한다. 우주의 전체상을 교향곡 틀에 담고 표현하려 했던 말러, 그의 모호한 총체성을 무엇보다 존경한다는 인발은 어떻게 말러의 향연을 꾸밀까. 042-610-2032, 031-783-8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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