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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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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해넘이에 군침 꿀꺽 넘기다

등록 2007-10-05 00:00 수정 2020-05-03 04:25

조용한 유적지와 바다, ‘먹자지껄’한 음식이 어우러진 영광에서의 하룻밤

▣ 영광=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작곡가 김민기씨의 노래 를 흥얼거리게 하는 서해 풍경이었다. 하늘 같은 바다, 바다 같은 하늘이 눈앞에 있었다. 늦은 오후 바다 한구석이 비늘처럼 반짝거려 겨우 바다 모양새를 짐작할 뿐이다. 하늘은 온통 물결 같은 회색빛 구름이 노을에 더부룩하니 겹쳐졌다. 거기 숨은 태양이 눅은 황금빛을 점점이 비치며 가라앉는다.

전남 서북쪽 영광군 백수 해안의 해질 녘 바다와 하늘은 장엄한 무대다. 안개 구름에 제대로 해넘이를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희뿌연 조망 속에 엉켜든 하늘 바다 위를 비늘처럼 빛내는 햇살의 실루엣이 운치 있다. 굳이 해넘이가 아니어도 영광 땅은 조물주가 내린 영광으로 빛난다. 진상품 굴비를 비롯해 장어, 민어, 숭어, 꽃게, 보리새우 등의 해물과 쌀, 천일염, 고추 등의 먹을거리들이 가득하다. 영광의 자연은 장대한 산과 바다, 개펄, 들녘, 염전, 포구 등으로 쉴 새 없이 탈바꿈한다. 관광지 개발에 진력하고 있는 영광군이 9월 중순 마련한 언론사 팸투어(사전 답사)를 따라갔다. 굴비의 유명세에 눌린 영광의 숨은 풍광, 역사, 맛 따위를 1박2일 동안 오감으로 체험한 자리다.

기다림의 흔적이 유적지 되어

영광의 답사 명소들은 기다림의 공간이 많다. 만선의 기원으로 가득했던 법성포 포구 부근에 384년 동진에서 온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처음 불법을 백제 땅에 전했다는 불교 도래지가, 포구 안쪽 옥녀봉 기슭에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의 탄생지·대각지 유적 등이 있다. 답사의 기점인 굴비 집산지 법성포는 시냇물 같은 포구와 야트막한 뒷동산 언덕에 숲과 올망졸망한 민가를 안은 아담한 고을이다. 시내는 온통 굴비 점포다. 끼루룩거리는 갈매기 울음소리 요란하고, 어선 가득한 선창을 보면서 뒷산의 공원길을 넘는다. 40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단오제가 매년 봄 열리는 숲쟁이 공원, 인공폭포가 있는 꽃동산을 거쳐 4세기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불법을 백제에 전하고자 처음 표착했다는 불교 도래지로 발길이 간다.

불교 도래지는 영광과 법성포의 현 지명과 옛 지명(아무포·부용포) 등이 모두 불교식이며, 여기에 마라난타가 표착했다는 전설, 조선시대 이 지방의 사적기를 근거로 공원화했다고 한다. 20여 곳에 부처의 삶과 수행도를 새긴 공원의 핵심인 부용루와 뒤쪽 108계단, 그리고 그 위 마라난타와 아미타불 등을 새긴 사면대불(공사 중) 등의 불교 신앙 시설이 있다. 인도 간다라풍의 고대 사원 양식으로 지은 간다라 전시관 등에는 실제 파키스탄 간다라에서 모셔온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다분히 동화나라 같은 공원 건축물보다도 마라난타가 왔을 법한 포구 너머의 망망대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정취가 훨씬 좋다. 포구 주변의 야트막한 언덕 숲에서 보는 서해 수평선이 기다림의 잔상을 심는다.

법성포에서 길룡리 쪽으로 좀더 들어오면 포구 옆에 옥녀봉을 낀 원불교 성지가 나타난다. 옥녀봉은 머리 댕기를 땋은 선녀가 거울 호수 같은 법성포를 보면서 임이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상이라고 한다. 간곡한 지세에 하늘이 호응해 노루목 대각터에서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었고, 마라난타의 불교 전래도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옥녀봉 아래 원불교 성지인 구간도실터는 옥녀봉에서 내려오는 영기가 좋아 다른 종단 사람들도 와서 다투어 땅 기운을 쐬고 간다는 곳이다.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뒤 제자들과 같이 수행했던 집터인 이곳은 제자들이 흰 종이에 손가락 도장을 찍을 핏자국이 그대로 배어 나타났다는 백지혈인의 전설로도 알려져 있다.

‘보석 뿌린 길’엔 짜디짠 삶터가

법성포를 벗어나 남서쪽 해안도로를 타고 내려간다. 영광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낙조길’이자 ‘보석 뿌린 길’이라고 한다. 편안한 굴곡의 야트막한 언덕, 도란거리는 듯한 밭과 숲, 호수 같은 바다 풍경이 보인다. 단조로운 해안선과 뿌연 안개 때문에 하늘과 바다를 가릴 수 없는 경치가 더욱 돋보인다. 법성포와 원불교 성지에서 해안도로 들어서는 들머리는 아름다운 연꽃 방죽과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하는 친환경 농업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싱그러운 기분으로 바다를 응시할라 치면, 산허리와 정상에 굴 뚫고 18홀짜리 영광CC 골프장을 건립 중인 공사 현장이 어색하게 가로놓이고 뒤를 이어 낙조를 조망하는 산책로가 기다린다. 2000년대 초반에야 해안도로가 뚫린 해안가 절벽에는 지그재그로 이어진 60도의 가파른 산책로가 이리저리 거미줄처럼 걸쳐 있다. 산책로 양 사이에 장미 향보다 진한 해당화 나무들이 자란다. 험난한 절벽과 온통 숲으로 뒤덮인 단조로운 해안선이 마치 동해 바다 같다. 곳곳에 기암 절벽이 툭툭 내던지듯 해안가를 수놓는다. 모자바위, 거북바위 등의 모습이 그것이다.

해안도로를 지나 염산으로 가는 길에 드넓은 천일염 염전이 있다. 영광의 염전은 580ha 규모로 전국의 10%인 3만9천여t의 소금을 매년 생산한다. ‘대신염전’이란 곳에 들어갔다. 구름을 빠져나와 막 저무는 태양이 달걀 노른자처럼 염전 곳곳의 바닥에 앉아 색다른 해넘이 풍경을 만들어낸다. 대학 졸업하고 곧바로 소금밭에 뛰어든 백철민 대표가 시커먼 얼굴로 창고에서 걸어나왔다. 스물아홉 청년이 세계 최고의 고급 소금을 만들겠다고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온종일 흰 소금과 씨름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소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자부심으로 뭉친 소금 청년은 흰 눈 같은 정제 천일염을 한 봉지씩 퍼다주었다.

기름살 오른 조기떼의 아우성

둘쨋날은 서해 바다로 나갔다. 영광 원자력발전소 앞 포구에서 발동선을 타고 서남쪽으로 달려 30여 분, 갈매기 낙원 칠산섬으로 갔다. 서해 물길을 헤치는 선박의 포말에 놀라 수면 위로 숭어와 몽어떼들이 미친 듯 뛰어올랐다가 바다 저편으로 매암 돌며 사라져간다. 어떤 녀석은 물수제비뜨듯 물 위로 몸체를 퉁겨 달려나간다. 바다가 펄떡거리는 생명의 도가니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일곱 개의 크고 작은 섬이 일렬로 선 칠산도 부근 칠산바다에 배가 멈춘다. 남으로는 무안, 북으로는 위도까지 걸치는 칠산 어장은 3~4월 남쪽에서 올라온 기름살 오른 조기떼를 잡는 국내 최대 어장이다. 군청 홍보담당 임동환 계장은 “옛적 조기 파시가 한창 성할 때는 밤마다 조기떼들의 울음소리가 사람들 자는 머리맡까지 들렸다”고 전해준다. 어군탐지기가 없던 시절, 어부들이 대나무를 바닷속에 쑤셔넣어 조기떼들의 소리를 듣고 고기떼를 찾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 파시 때 흥청거렸던 법성포 진풍경 이야기들이 그때만큼 고기가 안 잡힌다는 푸념과 함께 들렸다. 머리에 푸른 풀밭을 인 칠산도 섬들, 그 섬의 주인공이던 갈매기와 노랑부리저어새는 마침 섬에 보이지 않고 정적만이 감돌았다.

마라난타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 고찰 불갑사는 내륙 깊숙한 남쪽 불갑산 자락에 있다. 천왕문 속 네 분의 사천왕상이 출입하는 행자들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뜨끔한 마음으로 눈앞을 가로막은 만세루를 돌아 대웅전에 들어간다.

이곳 사천왕상은 각별하다. 원래는 고창 영기사란 절에 있다가 절이 폐사되어 비바람 맞던 사천왕이 당시 설두대사의 꿈속에 나타나 나를 옮겨다주면 가람과 절의 재산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마침 영광군수도 그런 꿈을 꾸었다고 말하며 죽이 맞아 법성포 뱃길로 130여 년 전 이들 사천왕을 들여왔다. 불갑사 사천왕은 어느 절보다도 높이 떠받들어진다. 숱한 절이 불탔던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이 절 만세루에 불을 질렀으나, 중앙부 일부만 타고 불은 곧 꺼졌다고 하니 사천왕상의 꿈속 약속은 지켜진 격이 됐다.

절 답사를 마치고 빨간 꽃무릇 상사화가 지천에 깔린 불갑사 입구를 내려온다. 9월 중순부터 보름간 불갑산 50만여 평은 바닥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다. 10월 중순부터 20여 일간은 또 다른 절경인 단풍이 불갑산 일대를 다른 빨간빛 환상 속으로 이끈다. 이 빨간 꽃대들은 한국전쟁 때 빨치산과의 잦은 교전으로 유난히 많은 사람 죽었다는 영광의 비극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풍부한 물산 덕분에 지방관들 누구나 승진 자리로 부임하기를 원해 ‘옥당골’로 불렸던 영광 땅의 축복은 전쟁 때는 거꾸로 혈전을 벌여 반드시 빼앗아야 할 명분이 되었다. 이념이 다른 남북 양쪽 군인이 양민을 무차별 사냥하는 지옥이 되었다. 기독교인 약 200명이 퇴각하는 인민군에게 학살당했다는 염전 아래쪽의 염산면 기독교인 순교지는 그 처절한 살육의 흔적이다.

영광 땅의 역사적 생채기를 생각하면서 내려오는 길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가 주자 성리학을 전해준 대학자 강항의 서원 내산서원을 지나 80년 광주의 넋으로 추앙받는 박관현 열사의 생가로 이어진다. 그 앞길에 추모비와 동상이 서 있다. 광주항쟁의 서곡이 된 80년 5월10일의 도청 앞 민주화 집회 당시 뛰어난 대중 연설로 광주 사람들을 휘어잡았던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은 항쟁이 진압된 한참 뒤 검거되어 모진 고문 끝에 옥중에서 숨졌다. 늠름한 눈빛을 발하는 청년 박관현 동상 앞에서 잠시 영화 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게 된다. 내산서원부터 박관현 열사 동상까지 이어지는 길을 ‘청년의 길’이라고 부른다.

상 위, 30가지 해물 퍼레이드

고픈 배를 안고 반갑게 돌아온 답사의 전초기지 법성포. 만 깊숙이 조개발처럼 들어온 포구에 어선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좌판이 분주하다. 잽싸게 발을 돌려 일번지라는 대형 굴비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길이만 97m짜리 대형 식당에 굴비, 병어, 전어, 갈치, 백합, 꽃게장, 온갖 해물들이 약 30가지나 상에 올랐다. 소주로 목 축이고 여행 후일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모두들 할 얘기가 많은 모양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지리서 에서 법성포 포구를 “호수와 산이 아름답고, 민가의 집들이 빗살처럼 촘촘하여 작은 서호로 부른다”고 했다. 서호는 천하 제일의 경치를 자랑했던 중국 항저우의 명승 호수다. 서호와 버금갔다는 법성포는 지금 공유수면 매립공사로 호수 같은 풍광의 핵심이던 뻘밭은 다 사라지게 되었다. 굴비산업, 관광산업 개발의 목청이 드높은 가운데 법성포는 자신이 지녔던 천하의 아름다움 하나를 삶터를 늘리기 위해 스스로 없애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포구 너머 돌 쌓은 매립지를 힐끗 보고, 갈매기의 꺽꺽거리는 울음소리를 구슬픈 만가처럼 들으며 서울행 귀로 버스에 올랐다.


영광 풍광 즐기기, 알고 가시길

서울서 3시간30분, 드라이브도 좋아… 광주~영광 하루 코스 1만8천원

전남 영광군은 목포까지 가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군의 중심을 관통한다. 영광 교차로에서 곧장 군내로 진입할 수 있다. 서울에서는 매일 40분 간격으로 20차례 고속버스가 다닌다. 평상시 3시간30분, 막히면 5시간 정도 걸린다. 영광은 광주에서도 가장 가까운 해안 지역. 지난 9월 새 국도 개통에 따라 30~40분이면 광주 도심에서 갈 수 있다. 법성포에서 백수해안도로 천일염전, 불갑저수지, 불갑사 지구로 통하는 국도와 지방도가 잘 닦여 있어 풍광을 즐기며 드라이브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군청에서 해설사들을 동원해 매주 펼치는 광주역 버스투어에 참가하는 것도 괜찮다. 광주역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출발해 주요 답사지들을 보고 당일 오후 6시에 다시 광주역으로 돌아온다. 굴비 백반을 제공하는 점심을 포함한 답사 비용은 1만8천원. 문의 영광군청 문화관광과(061-350-57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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