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나타난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과 주연 겸한 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벌써 10년. 1997년 제작된 이후 10년 만에 로베르토 베니니가 으로 돌아왔다(2005년작 은 조금 늦게 한국에서 개봉한다). 베니니가 감독과 주연을 맡고, 베니니의 부인이자 영화적 뮤즈인 니콜레타 브라스키가 주인공의 연인으로 나오며, 음악감독 니콜라 피오바니도 여전히 건재하다. 여기에 의 레옹, 장 르노도 가세했다. 거짓말 같은 유머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무(無)로 만들어 초월해버리는 베니니식 코미디도 여전하다. 배경은 나치의 아우슈비츠에서 이라크 바그다드로 옮겼고, 역할도 아들을 위해서 행복한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에서 연인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애인으로 바뀌었지만, 베니니의 사랑스러움은 여전하다.

사랑하는 이를 찾아 바그다드로
이번에도 사랑이다. 사랑을 위한 헌신이다. 시인이자 교수인 아틸리오(로베르토 베니니)는 비토리아(니콜레타 브라스키)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인생을 살아간다. 이렇게 지극한 마음의 아틸리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로마에서 바그다드로 갔던 비토리아가 폭탄테러 현장을 지나다 쓰러졌단 소식을 듣는다. 이라크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현실도 아틸리오를 막지는 못한다. 잠시만 베니니 유머의 한 토막. 아틸리오는 공항에서 바그다드행 비행기표를 달라고 하다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만, 다음 장면의 텔레비전 화면에선 바그다드에서 의료품 상자를 나르는 모습으로 나온다. 천연덕스럽게 혹은 우스꽝스럽게 적십자 조끼를 입고서. 아틸리오는 신분을 의사로 속이고 기어코 그곳에 도달한 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꺾어서’ 촌철살인의 방식으로 순식간에 소원을 이루어버리는 베니니식 코미디를 ‘즐감하기’ 원한다면 은 10년 만의 귀환이다. 이라크에서 전쟁이 터지자 파리에서 바그다드로 달려간 이라크 시인인 푸아드(장 르노)는 아틸리오에게 “여기는 어떻게 왔어?”라고 묻는데, 질문은 이중으로 해석된다. 표면의 의미 아래로,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꿈을 그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뉘앙스가 읽힌다.
이처럼 베니니의 영화는 ‘착한 꿈’을 찬양하고, 베니니의 세계는 낙관으로 가득하다. 그의 세계는 진심만 있으면 통하는 세상이다. 물론 진심은 유머와 위트로 통한다. 에서 “마음과 마음을 통하게 하는” 시인으로 나오는 아틸리오도 마음이 통하는 기적을 믿는다. 비토리아를 살릴 시간이 4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틸리오는 희망을 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낙천도 잃지 않는다. 행동하는 낙관주의자인 아틸리오는 비토리아를 살리기 위해서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이라크 전통요법, 잠수부 산소호흡기, 아틸리오가 비토리아를 위해 좌충우돌하면서 구해온 목록의 일부다. 혼수상태의 비토리아 앞에서 말까지 조심하는 아틸리오는 하나의 임무가 끝나면 언제나 의사에게 묻는다. “다음은 무엇을 하면 되나요?”
개인기가 더 부각돼 아쉬운 유머
정말로 그럴까? 의문이 들 만큼 꿈같은 얘기다. 하지만 베니니 작품을 흔한 착한 꿈의 영화에 그치지 않도록 만드는 힘은 무엇보다 배우에서 나온다. 그리고 유머를 만드는 상황의 설득력이 중요하다. 베니니의 유머는 비현실에 비현실을 더하지 않고, 오히려 비현실적 상황을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의 유머는 치고 빠지는 유머가 아니라 영화를 밀어가는 힘이 되는 유머였다. 비극은 유머를 통해서 힘을 잃고 희망은 의미를 얻었다. 그렇게 그의 유머는 기발하면서도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유머가 꿈같은 얘기를 한 번 더 뒤집어 묘한 현실감을 만들었다. 하지만 에서 아틸리오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베니니의 유머와 뒤섞이지 못한다. ‘시추에이션’의 촌철살인으로 현실을 뒤집어버리는 유머가 약하니 베니니의 개인기만 부각된다. 괜스레 바그다드의 거리를 헤매고, 사막에서 낙타에게 농담을 건네는 아틸리오는 웃기지만 울리지는 못한다. 이처럼 은 베니니의 코미디가 이야기를 밀어가는 힘으로 충분히 전환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래도 베니니의 사랑스러운 평범함은 관습적 장면에도 마술 같은 힘을 불어넣는다. 베니니의 평범한 얼굴과 진심 어린 표정이 없었다면, 이탈리아어와 아랍어로 대화하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영화 속 장면이 설득력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베니니는 근육이 없어도, 머리숱이 부족해도, 얼마든지 달콤하고 든든한 연인이 된다는 사실을 어김없이 증명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서 뛰어다니는 베니니를 보고 나면, 막바지에 나오는 마법 같은 키스가 설득력을 얻는다. 은 이라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 만큼 미국에 대한 비판이 슬며시 녹아 있다. 온몸에 약통을 매달고 오토바이를 타는 아틸리오를 자살폭탄 테러범으로 오인하는 미군의 모습 등 이라크, 나아가 아랍의 현실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는다. 베니니의 영화답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시” 같은 시적인 대사도 넘친다. 9월1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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