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희’를 배경으로 조연들이 벌이는 웃음의 향연 영화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은 납치극 혹은 인질극이 아니다. 오히려 납치된 인질이 납치범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소동극에 가깝다. 이렇게 전도된 설정도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는 마치 이러한 공식을 전제하듯, 처지가 뒤바뀌는 상황을 일찌감치 마감해버린다. 먼저 납치범 3인조의 구성. 만삭의 아내가 교도소에 수감된 도범(강성진)은 “아이의 본적을 교도소로 만들래?”라고 추궁하는 아내를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2천만원의 보석금이 필요하다. 도범의 옆에는 백수건달 처남 종만(유건)이 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어설픈 납치범은 결혼 사기를 당하고 목매달아 죽으려던 농촌 노총각 근영(유해진). 이렇게 급조된 3인조는 권순분(나문희) 여사를 납치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계획을 세운다.
총명한 여사님에 압도당한 납치범들
권순분 여사는 “하루 3천 그릇의 국밥을 팔아서 한 달 7억5천만원의 매상을 올리는” 재벌급 국밥집 사장이다. 3인조는 권순분 여사를 납치하는 데 성공하고 여사의 자식들에게 협박 전화를 걸지만 공사다망한 자식들은 협박할 틈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린다. 자식들의 ‘작태에’ 납치범보다 납치된 권순분 여사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지사. 납치범들의 예상과 달리 총기가 넘치는 권순분 여사는 단숨에 어설픈 3인조를 제압하고 “내 몸값 내가 받아주겠다”며 나선다. 당초에 납치범들은 몸값으로 5천만원을 받을 생각이었으나, 권순분 여사는 자신의 몸값을 500억원으로 올리고 경찰과 언론을 대상으로 납치극을 벌인다. 여기에 권순분 여사를 어머니처럼 모시는 부산의 경찰서장 재도(박상면)가 여사님 구하기에 나서면서 추적극이 시작된다.
추석용 코미디를 기대한다면
에서 전도된 납치극에 나올 법한 역전극의 실랑이는 매우 짧다. 어설픈 3인조는 총명한 여사에게 단숨에 압도당한다. 밀고 당기는 힘의 역전에 힘을 들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상황이 명백히 역전된 상황에서 권순분 여사가 훈훈한 총기로 어설픈 인질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조종하며, 경찰과 언론을 상대로 얼마나 치밀한 인질극을 벌이는지에 주력한다. 이렇게 재빠른 역전극은 영화적 긴장을 주지는 못하지만, 재미를 풀어놓을 여유를 마련한다. 관계의 역전이 빠르게 진행돼 너무 뻔한 이야기만 남았다 싶은 순간에 오히려 뻔하지 않은 코미디로 영화에 재미를 불어넣는 것이다. 중반의 코미디 향연에서 거구의 여성으로 나오는 자야(박준면)의 구실이 지대하다. 영화 에서 왕곱단 역으로 나왔고, 드라마 에서 둘째딸 백금녀를 연기하고 있는 박준면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자야는 에서 조연급 ‘감초’ 이상의 구실을 해낸다. 여기에 자야와 ‘러브 라인’을 형성하는 근영 역의 유해진이 가세하면서 코미디는 은은한 절정에 이른다. 유해진은 근영의 이름 한 자로, 표정 한 번으로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무르익은 코미디를 선보인다. 이렇게 ‘나문희’라는 든든한 배경을 두고서 조연들이 벌이는 웃음의 향연이 의 백미다.
그래도 은 타이틀롤을 맡은 나문희 ‘여사’ 없이는 생각하기 어려운 영화다. 나문희는 대단한 파격을 시도하지는 않지만, 코믹하면서도 푸근한 이미지로 영화를 이끈다. 그는 첫 주연을 맡은 소감에 대해 “잘 차려진 잔칫상에서 노래하고 춤춘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중년을 넘어 장년의 나이에 영화에서 마침내 주연을 맡은 나문희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연기를 선보인다. 나문희를 중심으로 구성된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력은 을 억지로 웃기지 않아도 웃음이 배어나오는 코미디로 만들었다. 은 를 만들었던 김상진 감독의 8번째 작품이다. 그는 광복절 특사를 받기 위해서 탈옥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죄수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처럼 상황을 뒤집어 웃음을 만드는 코미디 영화에 능숙하다. 그는 또다시 돌아온 코미디 영화에서 자신의 장기가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은 전반의 코미디가 지나고 후반의 추격극이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하지만 ‘웃음 반, 스릴 반’의 전략은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후반의 추격신에 기차에 헬기까지 동원되지만, 아찔한 추격신의 묘미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지나친 시간을 할애한 추격극을 보면서 전반의 코미디가 그리워진다. 여기에 친자식들은 불효하고, 유사 자식들은 효도한다는 설정도 새롭지는 않다. 훈훈한 감동을 주려는 결말도 예상 가능해 뒤통수를 치는 감동극으로 나아가진 못한다. 은 추석을 앞둔 9월13일 개봉한다. 가족 관객을 겨냥한 전형적인 추석용 코미디다. 그것을 기대한다면 괜찮다.
<li>이번호 주요기사</li>
▶제2의 노무현인가, 제2의 정몽준인가
▶괴로운 미녀 대신 킹콩이 되어라
▶아프리카에서 만난 내 딸
▶옛날 옛적 서양 선교사들 따라하기
▶담임 없는 학교를 상상해보라
▶삼별초는 오키나와로 갔는가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상] “대통령이 자꾸 거짓말”…수능 마친 고3도 서울 도심 ‘퇴진’ 집회에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 결정…‘굴욕외교’ 비판 피하기
82살까지 살아도 65살부턴 골골…‘건강한 노화’는 꿈이런가
“국민 요구 모두 거부하니”…서울 도심서 ‘윤 대통령 거부’ 행진·집회
“명태균에 아들 채용 청탁…대통령실 6급 근무” 주장 나와
‘미국 최고 의사’ 84살 김의신 “암에 좋은 음식 따로 없어, 그 대신…”
“박장범 사장 임명으로 ‘김건희 방송’ 전락…국민과 함께 복원할 것”
‘1호 헌법연구관’ 이석연, 이재명 판결에 “부관참시…균형 잃어”
탄두가 ‘주렁주렁’…푸틴이 쏜 ‘개암나무’ 신형 미사일 위력은
성균관대 교수·동문들 “윤석열 퇴진…사회적 연대 재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