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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토크’ 인 더 케이블

등록 2007-09-07 00:00 수정 2020-05-03 04:25

박철·이경실·김구라 등이 케이블 방송에서 펼치는 ‘한밤의 TV 연애’ 프로그램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바야흐로 케이블 방송에 성고민을 물어보는 시대가 되었다. 먼저 에서 ‘찐한’ 성교육을 해준다. 그래도 부부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에 일단 한번 고발해본다. 고발도 소용이 없다면? 에 위자료를 청구한다. 1450만의 시청 가구를 거느린 케이블은 200만 시청 가구의 위성방송까지 더하면 국민의 80% 이상이 보는 국민의 방송이 되었다. 오늘날 케이블 방송은 밤이면 밤마다 국민의 고충을 해결하느라 바쁘다. 박철, 이경실, 김구라의 쇼는 저마다 다른 요일의 같은 시간(밤 11시)에 은밀한 이야기로 기나긴 밤을 밝힌다. 시청자를 교육하고, 문제의 인물을 고발하고, 위자료를 청구하고, 케이블 방송은 성 문제에 관한 ‘풀 서비스’를 제공한다.

거침없는 주부 앞에 박철도 민망

시한폭탄 주부들, 언제 폭탄 발언을 터뜨릴지 모른다. 오죽하면 천하의 박철도 민망해 가끔 말이 꼬이고, 얼굴이 붉어질까. 매주 금요일 11시 케이블 채널 ‘스토리온’에서 방송되는 의 진정한 주인공은 ‘철’s 패밀리’로 불리는 30대 주부들이다. 의 패널로 나오는 20명의 주부들은 ‘야한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웃으면서 쏟아내는 그들의 이야기는 진하지만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진지하고 마침내 솔직하다. “제가 달아오르기 전에 남편은 끝나는 거예요. 미치겠는 거예요” “여성 상위 체위를 좋아하는데, 그때만 제가 오르가슴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등등. 하지만 에선 주부들이 ‘자위’ ‘오르가슴’을 입에 올려도 어색하지 않다. 물론 그들은 얼굴을 가리지도 음성을 변조하지도 않는다. 다만 솔직하게 성관계를 하면서 겪은 일, 생긴 문제를 말한다. ‘철’s 패밀리’의 솔직대담 토크에 이어지는 ‘실험 카메라’도 장난이 아니다. 실제 부부가 등장하는 ‘실험 카메라’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실험한다. 공공장소에서 남편에게 키스를 요구하고, 스튜디오에서 아내의 성감대를 맞혀보라는 퀴즈를 낸다. 아내들의 당당한 혹은 뻔뻔한 모습과 남편들의 당황한 혹은 어색해하는 모습이 엇갈리면서 부부관계의 속살을 보여주는 장면이 자연스레 나온다.

는 1부 ‘스타 토크쇼’, 2부 ‘사랑의 기술’로 구성됐다. 주부들의 솔직한 토크가 나오는 사랑의 기술 앞에 스타 토크쇼를 배치해 지상파의 아침방송 토크쇼 같은 형식을 선보인 것이다.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스타 토크쇼가 앞에 배치돼 사랑의 기술에서 나왔던 야한 이야기를 중화시킨다”며 “무조건 ‘야하지, 야하지’ 하는 방식이 아니라 부부생활 중에 성생활도 있으니 솔직하게 얘기해보자는 분위기가 야하지만 재미있다는 결과로 나왔다”고 분석했다. 20회 넘게 진행됐던 사랑의 기술은 제목부터 솔직하고 당당했다. ‘내 몸의 황금 포인트, 성감대’ ‘몸으로 나누는 뜨거운 대화, 체위’ 등등. “성은 정상도 없고, 비정상도 없다”고 말하는 구성애의 강의도 방송을 통해서 보기 힘들었던 성상담의 진화였다. 이러한 결과로 는 케이블 방송으로 시청률 1%를 넘는 인기를 얻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성지식을 얻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는 주부의 사연, 섹스리스(Sexless) 부부들의 하소연이 올라온다. 하지만 20여 회를 거듭했던 ‘사랑의 기술’은 소재의 고갈로 8월24일 방송부터 ‘행복의 기술’로 바뀌었다. 성지식 전문가 구성애 대신에 행복 전도사로 불리는 최윤희가 상담자로 출연해 행복의 기술을 전파한다.

이경실의 가정폭력 경험 더한 상담

와 같은 채널인 ‘스토리온’에서 방송되는 (이하 )는 토요일 밤의 열기를 달군다. 개그우먼 이경실이 진행하고 탤런트 유혜정, 개그맨 표인봉,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등이 패널로 나오는 는 성 문제도 다루지만 성 문제만 다루지는 않는다. 삼겹살 기름에 밥을 비벼 먹고, 북엇국에 식용유와 마요네즈를 섞어 먹는 ‘식성 독특한 남편’처럼 독특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고발의 대상이다. 물론 성관계 때마다 남편의 몸에 흔적(상처)을 남기는 부인의 이야기처럼 성 문제도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남편에게 돈을 받는다는 18금(禁) 이상의 고백도 있었다. 이렇게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서 ‘고발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재연하고 100명의 시민 배심원이 범칙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는 진행된다. 가정폭력을 당했던 이경실의 경험이 더해져 에는 상담 프로그램의 상당한 설득력이 생긴다. 패널들이 자신과 주변의 경험을 통해서 전하는 ‘토크’도 솔직하기 그지없다.

매주 수요일 밤 11시, ‘tvN’에서 방송되는 은 고발에서 한 걸음 나아가 “위자료 당당하게 말하자”고 주장한다. 이혼한 부부의 사연을 재연하고, 패널들이 위자료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비만 오면 성욕을 참지 못하는 부인 등 적나라한 침실의 사연들이 중심이다. 역시나 이의정, 이광기, 비키 등 패널이 김구라의 진행으로 적나라한 ‘섹스 토크’를 주고받는 방식이다. 사연을 보고서 “이건 짐승도 아니고”같이 솔직함을 넘어 가끔은 ‘거친’ 발언도 나온다. 김구라는 트랜스젠더 출입 경험을 비하조로 말했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한밤의 TV 연애’는 시작된다. 지상파에서는 언감생심 불가능한 솔직대담 토크쇼는 케이블 방송의 새로운 성지가 되었다. 강명석 평론가는 “어차피 케이블은 시청률 1% 싸움”이라며 “지상파에서 다루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파고들면서 야한 토크쇼가 생겼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토크쇼는 드라마에 견줘 예산이 적게 들어 케이블 시스템에 적당하다. 이런 매체 환경에서 시작된 케이블의 ‘섹스 토크’는 어느새 한국식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더구나 지역과 계층으로 분할된 매체가 드문 한국에서 케이블 방송은 하위문화를 형성할 거의 유일한 매체다.

적당히 솔직하거나 독하게 선정적이거나

또한 케이블 방송이 자체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좌충우돌의 모색기를 지나면서 몇 개의 경향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처럼 주부에 초점을 맞추어 솔직하지만 선정적이지 않은 길을 가는 방향이 있다면, 끊임없는 진위 논란을 일으키면서 ‘독하게’ 선정적인 길을 가는 같은 프로그램도 있다. 게다가 케이블 토크쇼는 ‘괜찮은’ 연예인들을 진행자로 영입하면서 괜찮은 모양새도 갖추었다. 물론 아직은 여기에 나온 소재가 저기에 또 나오고 성차별적 시선과 발언이 계속되는 한계가 있지만, 케이블 토크쇼는 한국식 하위문화를 향해서 오늘도 진화한다. 어쩌면 오늘의 케이블 방송은 80년대 스포츠신문이 했던 구실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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