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 세계 최고의 춤 실력은 한류 문화상품으로 설 수 있을까
▣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사진제공 예술경영지원센터
헐렁바지에 물구나무, 머리 회전, 팔굽혀펴기 등의 브레이크 댄스를 휘휘 추는 한국 청년들.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자랑하는 ‘코리안 비보이(B-Boy)’들이 자수성가의 목표를 넘어섰다. 2000년대 초까지 도심 구석의 골목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의 퀴퀴한 구석에서 서럽게 춤 내공을 닦았던 이 브레이크 춤의 대가들이 이제 세계 공연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한계로 지적된 스토리 구성력 보강
그 첫 무대는 지난 8월5일 개막해 27일까지 열리는 국제 공연예술 축제인 61회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현장에 가는 비보이 공연만 4편이다. 2005년 독일의 비보이 월드컵 격인 ‘배틀 오브 더 이어’에서 우승한 라스트포원은 고대 그리스 오디세이 신화를 코믹하게 풀어낸 춤극 를 1~27일 시베뉴 극장에서 올린다.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 비보이 경연에서 2관왕을 차지한 맥시멈크루는 캐나다 쪽 지원을 받아 2~27일 에든버러 어셈블리홀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딴 작품으로 얼굴을 내밀게 된다. 올 4월 런던 피코크 극장에서 프로모션 공연을 감행한 비보이 죄수들의 코믹 탈주극 퍼포먼스 (세븐센스 제작)은 (2~25일 어셈블리홀)으로 이름을 바꿔달고 7월 말부터 현지 홍보 마케팅 공략에 들어갔다. 2005년 이래 홍익대 앞 전용극장에서 장기 공연을 거듭해온 기획사 SJ bboys의 비보이 뮤지컬 (이하 비사발)도 에든버러에 뛰어들었다.
출품작들은 대개 시간을 들여 경쟁력을 갈고닦은 준비된 작품들이다. 비보이의 한계로 지적됐던 스토리 구성력을 보강하고 연극적 서사와 극적인 요소들을 강화했다. 기상천외의 감옥 탈주 시나리오를 담은 은 비보이 출연자들을 1년 전부터 코미디 배우로 아예 조련시켰다. 맥시멈크루의 경우 어셈블리 극장과 아예 합작한 기획 무대를 꾸민다. 지난해 캐나다 몬트리올의 코미디 축제 ‘저스트 포 래프’의 비보이 배틀에서 우승한 것이 계기가 되어 캐나다 조직위와 에든버러 어셈블리 극장과 같이 기획·연출한 합작 무대다. 비보이 그룹 익스트림크루 멤버들이 열연하는 뮤지컬 은 5~24일 클럽웨스트라는 극장에서 공연하는데, 에든버러 공연에 앞서 지난 7월에 국내 공연도 진행하면서 관객의 반응을 살폈다.
한국 비보이들이 세계 대회를 휩쓸긴 했지만, 국제 페스티벌에서 흥행을 모색한 경험은 일천하다. 지난해 페스티벌에서 퍼포먼스팀 ‘묘성’이 전통 연희 문화와 춤을 결합한 얼개를 공연했으나 관객 동원이나 비평 등에서 뚜렷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이와 달리 올해 유례없는 비보이들의 세계 시장 진출은 상업적 흥행이나 비평적 성과 양 측면에서 모두 주목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춤 실력과 저변층을 확보한 한국 비보이들이 적절한 무대 콘텐츠만 찾으면 흥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고, 빈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줄거리 구성이나 안무, 메시지 전달력 측면에서 나름대로 진일보한 성과물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극 퍼포먼스 로 에든버러에서 2005년 이래 2년 연속 대박을 터뜨린 (주)예감이 비보이란 명칭을 쓰지 않고, 익스트림 댄스라는 개념을 넣어 페스티벌의 주류인 코미디극을 표방하면서 을 들고 온 것이나 라스트포원의 가 신화의 연극적 이야기를 비보이 안무와 결합시킨 것 등이 그런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불량 소년 이미지를 바꿔주세요”
또 에든버러에 간 일부 비보이 공연들은 기성 뮤지컬이나 영화 뺨치는 마케팅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2005~2006년 논버벌 퍼포먼스 로 ‘에든버러 대박’을 일군 (주)예감은 회심의 후속작 을 알리기 위해 개막 일주일여 전부터 줄거리를 간추린 거리 홍보공연을 거듭하고 있다. 현지 언론인 등에 기사가 소개됐고, 공연 장소인 어셈블리홀의 주말 객석 예매도 800여 석 가운데 500석을 돌파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주)예감의 한경아 실장은 “에든버러가 흥행 시장 진출의 거점이 되는 만큼 현지 기획자와 언론인들과의 접촉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며 “적어도 주말 공연은 매진, 전체 객석 점유율도 70% 이상에 이를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예감 쪽은 런던 피코크 극장 상설공연화, 중국·홍콩 공연 등의 후속 아이템도 계속 짜고 있다고 한다. 를 공연하는 라스트포원 팀도 올봄 런던에서 이미 프로모션 공연을 한 바 있어 현지 홍보가 훨씬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 저작권 분쟁으로 주춤했던 은 소송 당사자 사이에 저작권 문제를 일단 정리하고, 영국과 미국 등의 순회공연 계획을 기획사 쪽이 밝혀놓은 상태다.
물론 무지갯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유럽에서 비보이는 미국 하위문화의 불량한 장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 국내 참가팀들은 색다른 춤극 형식을 통해 장르에 대한 거부감을 불식시켜야 하는 부담이 붙는다. 에든버러에 파견된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우연 국제교류팀장은 “ 공연 연습장을 찾아온 현지 기자가 좋은 춤을 통해 비보이는 나쁜 불량 소년들이란 인식을 바꿔달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춤꾼들 실력에 비해 외국 교섭력과 상품 아이디어를 갖춘 기획자들이 태부족한 것은 한계로 꼽히고 있다. 출품작 의 경우 기획자 도착이 지연된데다, 초청자인 현지 극장과 캐나다 기관 사이의 소통 문제로 개막일 가까이까지 제대로 무대 준비가 진척되지 않아 출연진들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비보이 장르의 섣부른 공연 상품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비보이의 저항성과 역동성이 극의 형식과 메시지 속에 묻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다. 의 경우 비보이 춤꾼들이 1년간의 수련 끝에 모두 배우로 탈바꿈했지만, 코미디극의 구성 속에 하나의 소품으로 비보이가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우연 팀장은 “비보이 춤과 흔히 결합하는 논버벌 퍼포먼스나 뮤지컬 창작의 경우 공동 저작권 등의 법률적 문제들에 대해 국내에 명확한 관행과 규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항성과 역동성이 형식에 묻히진 않을까
한국 비보이들은 제도권 예술 교육제도에 대한 반항 정신과 서구 주변부 문화에 대한 호기심 등을 업고 컸다. 자신의 몸을 소진시키며 연습에 몰입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본기와 기초 체력을 쌓게 만든 안티와 저항의 비보이 문화가 한류 문화상품으로 온전히 몸바꾸기를 할 수 있을까. 에든버러에 진출한 비보이 작품들의 성패는 고민의 향방을 가늠짓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에든버러 페스티벌에는 전세계에서 1만8600여 명의 공연자들이 찾아와 시내 250개 공연장에서 2050개의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은 비보이 공연물을 포함해 연극, 무용 등에서 모두 14편의 작품을 공연한다. www.edinburghfestivals.co.uk, 02-745-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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