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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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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살로 요동치며 생명을 찍다

등록 2007-07-13 00:00 수정 2020-05-03 04:25

자연 속에 알몸으로 뛰어드는 중견사진가 최광호의 동시 초대전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중견사진가 최광호(51)씨는 파벌과 쏠림에 민감한 한국 사진동네에서 이단아 혹은 별종의 행보를 고집해왔다. 늦깎이인 30대와 40대 때 일본과 미국 유학을 결행해 사진을 다시 배웠으며, 자연 속에 사진가가 직접 알몸으로 뛰어들어가 작업하는 생태 행동주의적 작업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생명에 대한 탐구, 이를 위한 핍진한 몸 체험은 매끈하고 냉혹한 디지털 ‘뽀샵’(포토샵) 사진의 유행과는 정반대의 전선을 형성할 수밖에 없을 터.

‘넝쿨지다’ ‘땅의 숨소리’에서 꿈틀꿈틀

그의 동시 초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서울 수송동 갤러리 고도(7월17일까지, 02-720-2223)의 ‘넝쿨지다’와 서울 인사동 아트비트갤러리(7월24일까지, 02-722-8749)의 ‘땅의 숨소리’에서 수작업한 ‘생명 사진’ 근작들은 기존 사진 유행에 맞서 일궈낸 전선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갤러리 고도의 경우 작업량 많기로 소문난 최씨의 작업에서 미발표작인 포토그램 넝쿨 시리즈 40여 점을 추려냈다. 포토그램은 필름을 쓰지 않고 감광지 위에 직접 자연물을 놓고 빛을 쬐어 영상을 인화하는 기법인데, 굵고 가는 숱한 풀꽃의 넝쿨 줄기들을 이런 식으로 윤곽만 부각해 보여주고 있다.

여러 종류의 넝쿨, 여기에 장난스럽게 넣은 듯한 낙지 발 등의 이미지들이 뒤엉켜 마치 추상화처럼 이리저리 어둠 속에서 꿈틀꿈틀 곡선을 그려나간다. 일부는 고사리잎 혹은 자궁 모양으로 뭉쳐 미로의 그림처럼 해학적 인상도 남긴다. 넝쿨의 잔털, 윤곽의 실루엣이 극대화하는 그림자 사진들이다. 모호이너지, 만 레이 같은 20세기 초 서구 다다이즘 전위사진가들이 즐겨 썼던 포토그램 기법으로 왜 거슬러 올라간 것일까. 뜻밖에도 새벽녘 그의 작업실 바깥에서 바람결에 거미줄을 건드린 호박 넝쿨손을 본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넝쿨을 벌레로 착각해 다시 휘감는 거미의 모습에서 깨달은 생명과 자연의 질서, 그것이 필름 없고 복제본 없는 이 사진들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스스럼없이 누드로

찍힌 내용물은 다르지만, 아트비트갤러리의 전시에서도 작가의 시선은 한 맥락으로 통한다. 강원도 고성의 산불 난 야산에서 찍어온 그와 동료들의 현장 누드 사진들은 온몸으로 자연 속에 들어가려고 몸짓한다. 작가를 비롯한 남자와 여자의 알몸은 불에 탄 나무들과 그 아래 대지의 새싹을 배경으로 묵묵히 서 있거나 두 손을 허공으로 뻗거나 바위 위에 널브러져 있다. “전쟁터 같은 검은 땅” 위에서 소생하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스스럼없이 옷을 벗고 누드로 사진을 찍고 찍히게 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손바닥 위에서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는 자신의 정액을 찍었던 구작처럼, 그는 여전히 건강한 관능과 감각을 낯선 인화의 방식 혹은 자신의 몸에 몰입하는 경로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는 듯하다. 즉물사진이 판치는 사진판의 부박한 유행과 담 쌓고, 자신의 몸이 느낀 바대로 시선을 내리꽂는 ‘최광호표’ 사진은 거친 세부에도 불구하고, 꿈틀거리는 작가의 욕망이 눈에 잡히는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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