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긍정적인 ‘연고주의’와 ‘지역주의’를 만들어내는 부산 산지니 출판사</font>
▣ 부산=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산지니 출판사는 지난해 이맘때부터 1년 사이 20권의 책을 펴냈다. 내기 쉬운 책만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 영화 문화를 다룬 은 590쪽이나 되고, 은 사진 자료가 많이 들어간 편집이 까다로운 책이다. 2005년 2월부터 현재까지 27권이니 근래 출간에 가속도가 붙은 것 같다. 올봄부터 시작해 여름호까지 펴낸 문학비평지 2권도 여기에 더해진다. 여느 ‘약진하는 중견 출판사’의 프로필이지만 산지니가 특별한 것은 서울에서 산 넘고 물 건너 반도 최남단 부산에 자리한 출판사이기 때문이다.
판권을 들춰보기 전에는 책의 출신지를 알 수 없다. 이라는 흥미로운 책을 책상 위에 솎아서 올려두고 나서다. 앞장부터 훑어보다가 ‘부산시 연제구…’라는 글자에 눈이 멈췄다. ‘서울내기’에 뒤지지 않는 번듯한 만듦새의 책을 펴내는 출판사에 “부산에서라꼬?”라는 예의 없는 감탄이 솟았다. 겸손을 가장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부산인 이유’를 물어보았다.
<font color="#C12D84">예의없는 감탄, “부산에서라꼬?”</font>
산지니 출판사의 강수걸(40) 대표는 2003년 10년간 다니던 창원의 중공업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출판일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 도서관에서 살았다. “그전에도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직장에서는 다양한 독서를 하지 못했지요. 좋아하는 책만 읽었으니까요. 어떤 책이 잘 팔리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별의별 책을 다 보면서 공부했지요.” 서울에 왔다갔다 하며 출판기획 강좌를 들으면서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1년 반 ‘도서관 백수’ 생활 뒤 산지니 출판사를 출판 등록했다. “서울에서 할까 부산에서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부산에는 인프라가 없지요. 서울에서는 편집자도 구하기 쉽고 바로 시작할 수 있지요. 제본이나 인쇄 같은 것도 서울 쪽이 훨씬 잘하지요.”
그러나 강 대표는 서울에 가지 않았기에 얻은 것이 많다. “서울은 지방에 관심이 없지요.” 서울에서 부산을 다룰 때는 ‘여행’이거나 ‘맛기행’일 것이다. 하지만 사는 사람들의 부산은 다르다. 그런 부산을 그려내는 일은 부산에 있기에 가능하다. “지역의 필자를 발굴하고 지역문화를 심도 깊게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산에 출판사를 냈습니다.” 부산은 그가 나고 자라고 대학까지 나온 곳이다.
부산의 많은 지역 예술인은 산지니가 부산에 있기에 찾아주었다. 곧 나오는 손문상 화백의 을 끌어온 것도 부산이어서 유리했다. 부산 보통 사람들의 정감이 뚝뚝 묻어나는 글그림을 모은 책이다. 손문상 화백은 그전에 서울의 ‘책 잘 만들기로 소문난’ 출판사에서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산지니는 이런 ‘연고주의’에다 ‘지역주의’에도 ‘편승’한다. 는 산지니가 부산에 있었기에 탄생할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의 부제는 ‘소설 속을 걸어 부산을 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부산의 골목을 찾아가는 기행이다.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인 조갑상 선생이 원고를 들고 왔다.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모임’의 앞자리에 서는 나카무라 데쓰의 등 ‘세계적’인 책도 있지만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부산 지역 진보주의자들의 책이다. “지역의 진보는 색깔이 다르니까요.” 박노자 선생이 발문을 쓴 , 김석준 교수의 대담집 , 부산 반송의 지역 주민 활동을 다룬 등이 그런 책들이다. 만화 도 곧 펴낸다. 혹시 노사모? “좌측 깜빡이를 켜고는 우회전만 하는 정부에 대한 이야기지요.”
390만의 인구가 살며 ‘자력갱생’할 수 있는 여건도 도움을 주었다. 부산은 등 지역지가 전국지와 대등하게 경쟁하는 유일한 도시다. 서울의 대형서점이 지방에서 고전하는 곳은 부산뿐이다. 영광도서나 동보서적 등 큰 서점들이 버티고 있어서다. “이 서점들이 부산에서 개최하는 지역행사에 스폰서를 많이 합니다.” 과 함께 영광도서에서 한 달에 한 번 개최하는 독서토론장은 200~300명이 빼곡이 들어선다. 영광도서는 부산을 다룬 책을 모아놓은 별도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font color="#C12D84"> 3등 전략, 틈새시장을 노린다</font>
어쨌든 전국의 모든 출판사가 ‘평등하게’ 불황이다. 그래서 정부가 하는 출판 지원책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은 부산의 출판사가 사업을 접는 바람에 폐간될 위기에 놓인 것을 가져온 것이다. 시와 소설에 해당되는 문인 지원이 평론에는 해당하지 않아서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우수문예지 지원사업에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37개를 지원하던 것을 무슨 이유에선지 20개로 줄였다. 지역 잡지는 20% 쿼터가 있지만 그래봤자 4개 잡지만이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의 모 단체에서 하는 가이드북 입찰에 참여했는데, 서류도 인편으로만 접수하며 까다롭게 굴더니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유야무야돼버린 경우도 있다.
“지방 출판사인 경우는 주로 문학 출판사가 많습니다. 서울에 원고 넘기고 나서 기다리다 지친 문인들이 빨리 책을 내주는 가까운 출판사를 찾지요.” 저자들이 들고 오면 검토한 뒤 내주도록 노력한다. 그의 겸손한 말이 따랐다. “우리는 ‘3등 전략’입니다.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거지요. 서울 분들이 책 목록을 보고는 참 부산스럽게 낸다, 그러시데요.” 산지니 출판사의 출간 목록에는 ‘부산’ 외에 ‘중국, 인도, 쿠바’의 키워드도 있다. “지금까지 낸 책 중에 소설이 없는데요, 사실 소설도 번역 중입니다.” 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출판사 이름은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 보라매라도 다 쉬어 넘는” 할 때 나오는 ‘산지니’다. ‘산에서 자라 여러 해가 묵은 매나 새’란 뜻이다. 강 대표는 여기에 “오래 버티는”이라는 말을 추가해서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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