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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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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노력이 명품을 낳다

등록 2007-06-29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전시마다 색깔 뚜렷한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font>

한꺼번에 미술잔치 열린 유럽에 가다 ②

▣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전쟁과 양극화의 시대에 예술이 구체성을 잃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예술이 평균치로 전락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5년마다 열려온 세계 전위미술의 큰 잔치 ‘2007 카셀 도큐멘타’는 바로 이런 물음들에 답하기 위한 노력들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국제 현대미술 전시들이 비슷한 작가와 작품을 되풀이해 늘어놓는, 또 다른 제국의 ‘프로파간다’처럼 되어가는 지금, 다른 형태의 동시대 미술운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또한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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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가도 개막 일주일 전 공개

독일 북부의 소도시 카셀을 5년마다 미술의 중심으로 만들어온 ‘카셀 도큐멘타’는 항상 그랬듯 전체를 아우르는 특정 주제를 세우는 대신 당대 예술에 대해 말하는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부부로서 전시 총감독·예술감독을 맡은 로저 붸르겔과 루트 노악은 주전시장인 프리드리시아눔, 도큐멘타홀을 비롯해 특설 전시장인 아우어 파빌리온, 노이어 갤러리와 빌헬름스회허성 등 5개 공간에서 3년간 준비한 작가 122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도쿠멘타 전시는 작가 명단을 개막 일주일 전에야 모두 공개했을 만큼 상당한 파격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후안 다빌라, 존 매크라켄, 케리 제임스 마셜, 트리샤 브라운, 마르타 로즐러, 다나카 아쓰코 등 20여 명의 특정 작가들이 거의 모든 전시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이한 방식을 취했다. 몇몇 작가 개인전들을 여기저기 뒤섞은 것처럼 보인다. 다분히 편향적 인상을 줄 수 있음에도 도큐멘타는 결코 평균적인 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시 본래의 취지에 충실해 보였다. 선정된 주요 작가들 또한 때로는 형식적으로, 때로는 정치적으로, 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양상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다른 작가들과 뒤섞였다. 노이어 갤러리와 빌헬름스회허성의 전시회에서 보이듯 과거의 역사적인 미술품들과 함께 전시되기도 하면서 전시 전체에 걸쳐 일관되면서도 복합적인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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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셀 도큐멘타와 베니스 비엔날레의 차이는 바로 그 목소리에 있는 듯하다. 평균적이고 형식적인 말투는 아무리 정치적으로 급진적이거나 휴머니스트적인 내용을 늘어놓더라도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다. 카셀의 기획자들은 관객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집요하지만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려 했다.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아쉬운 건 골동품, 전통 문짝 따위를 쓴 중국 작가들의 설치작업이 일본 작가 작품들과 함께 대거 전시된 데 반해, 한국 출품 작가는 베니스 본전시에서처럼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이다. 주최 쪽이 역점을 둔 전시장 가운데 하나인 ‘글래스 파빌리온’(아우어 파빌리온)의 얼개가 기대에는 못 미쳤다.

대형 공공작품이 뮌스터 시내 곳곳에

카셀 서북쪽의 독일 소도시 뮌스터에서 비슷한 시기에 열린 ‘200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마다 열리는 세계 공공미술의 큰 잔치다. 상설 공공전시 작품과 비상설 작품들이 양축을 이룬다. 올해 행사는 브리지트 프란첸, 카스퍼 쾨니히, 카리나 플라트 등이 공동기획을 맡았는데, 이 명품 미술잔치를 치러온 뮌스터의 관록과 헌신적 노력을 엿볼 수 있다. 87년, 97년에 제작된 작품들이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다, 다시 새 작품들이 추가되면서 도시 전체가 잠재적 미술관으로 바뀌어간다는 점은 정말 인상적이다. 도널드 저드, 클래스 올덴버그의 30년 전 작품들과 브레히트, 댄 그래험, 제니 홀처, 리처드 터틀의 20년 전 작품, 일리아 카바코프, 호르헤 파르도, 로렌스 바이너 등의 10년 전 작품들이 눈에 겹쳐진다. 여기에 브루스 나우만, 마틴 보이스, 로즈마리 트로켈, 기욤 비일 등 대가들의 대형 공공작품 근작들이 설치돼 총 72개 작품이 현재 시내 곳곳에서 전시 중이다. 천막 설치물과 퍼포먼스로 이뤄진 마리아 파스크의 , 어떤 인물이 특정 지역을 떠도는 도라 가르시아의 처럼 전시 뒤 사라질 최근작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작품들이 영구설치 목적으로 제작됐다. 행사기간 중에는 뮌스터 시립미술관에서 지난 30년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발전 과정에 대한 사진, 텍스트, 영상자료들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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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힌 뮌스터는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로도 선정된 바 있다. 실제로 모든 관람 동선이 자전거로 다니기에 적절하게 짜였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대여 시스템을 이용해 이동한다. 행사 첫날부터 지도를 들고 자전거로 도시 구석구석을 헤매는 외국인들과 다른 지역 사람들의 행렬로 도심과 주변 숲, 호수 등에서는 독특한 풍경이 연출됐다. 사실 이 행사의 전시 기간은 시립미술관 전시와 프로젝트 공개 시점을 의미할 뿐이다. 대부분의 전시는 시민과 방문객이 상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양 프로젝트’도 장기적 전망 갖길

전시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역시 수준 높은 큐레이팅이다. 좋은 작가를 골라, 그로 하여금 도시 경관과 사회·역사적 맥락에 걸맞은 작품을 제작하도록 치밀하게 준비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느껴진다. 왜 이 행사가 10년이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2년 단위로 진행되는 한국의 공공미술 이벤트인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일본의 에치고 츠모리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바로 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명품 미술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안양 프로젝트도 10년 단위까지는 아니어도 장기적 전망 아래 수준을 높여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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