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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와 바젤, 규모의 축제여

등록 2007-06-22 00:00 수정 2020-05-03 04:25

10년만에 겹쳐진 네 개의 미술전 중 먼저 찾은 베니스 비엔날레와 바젤 아트페어

한꺼번에 미술잔치 열린 유럽에 가다 ①

▣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현대미술 애호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전시의 로망’이 펼쳐지고 있다. 세계적 권위와 이름값을 지닌 명품 미술잔치들이 6월 유럽에서 한꺼번에 막을 올렸다. 100여 년 전통의 국제미술제인 52회 베니스 비엔날레(6월10일~11월21일), 세계 일류 화랑들만 오는 작품 장터인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6월13~17일), 실험성 가득한 미술 난장인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12’(6월16일~9월23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6월16일~9월30일)다. 비엔날레는 2년, 도쿠멘타는 5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흔치 않은 국제미술제다. 10년 만에 겹쳐진 네 행사는 동시대 현대미술의 따끈따끈한 흐름들을 보여주는 시금석이자, 세계 미술판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을 짚어주는 계기판이 된다. 미술비평가인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의 현장 감상기를 두 차례 나눠 싣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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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한 번 유럽에 돌아온다는 전시의 ‘황금 시즌’. 그 위세는 대단했다. 문화 올림픽이라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바젤 아트페어를 거쳐 독일 땅의 카셀, 뮌스터로 북상하는 약 2주간의 미술 대장정은 세계 각지의 미술계 인사와 수집가, 애호가 수만명을 순례자로 끌어들였다. 바젤 아트페어를 제외한 행사들은 9월 말까지 펼쳐지므로 그 행렬 또한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규모는 커지고 내용은 단순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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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다인 77개 나라가 출품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6월7~8일 사전 공개 행사(프리뷰)로 시작했다. 전시는 이전처럼 도심 동쪽 바닷가 자르디니 공원의 국가관 본전시와 부근의 옛 군용 조선소터인 아르세날레의 특별전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그러나 올해는 여러 가지 달라진 특징이 보였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전시 총감독 로버트 스토어는 애초 ‘감각으로 사고하고 사유로 지각하기’라는 테마를 내세웠다. 그런데 뚜껑을 여니 그 실체는 뜻밖에도 본전시 덩치 키우기와 신구 작품 조화 등으로 나타났다.

조직위 쪽은 이탈리아관의 본 전시를 딸림 전시장인 아르세날레관까지 대폭 확장했다. 국가관도 늘려 터키, 아프리카관 등이 신설됐고, 미술시장에서 약진 중인 중국도 2005년에 이어 아르세날레 안에 국가관을 설치했다. 전체 규모는 굉장히 커진 듯했다.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이전보다 오히려 단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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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80년대 이전 활약한 대표적인 미국, 유럽권의 대가 작품들을 최근 선보인 제3세계의 정치적인 미술과 뒤섞어 대거 전시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색조 혹은 기하학적 구도의 미니멀 그림을 그린 엘스워스 켈리, 로버트 라이만, 솔 르윗과 전광판 텍스트 작업으로 유명한 제니 홀처 등의 작품들과 세계 최빈국인 르완다, 앙골라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들은 대등한 자격으로 아르세날레 전시장에 놓였다. 여성성을 탐색하는 노장 루이스 부르조아와 추상 구상을 오가는 독일 개념 미술 대가 리히터의 역작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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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폭발 이후의 버섯 구름을 묘사한 조형물이나 미 공군 전투기를 십자가로 매달린 예수상을 제작한 아르헨티나 노장 레온 페라리의 설치물은 흥미로운 성찰거리를 던졌다. 9·11 동시테러 당시 뉴욕 상황을 이색 조형물로 재현한 미국 작가 찰즈 게인즈, 오스카 무노즈 등의 작품들또한 본전시의 화제였다. 그럼에도 비엔날레는 전체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당연하지만 그 이유는 전시기획에 있다. 비엔날레는 전세계적으로 전쟁과 양극화라는 문제가 모든 이들의 뇌리를 각별히 짓누르고 있는 시기에 열렸지만, 전시들은 이런 화두에 대해 미흡한 대답을 내놓았을 뿐이다. 본전시와 특별전에서 전쟁, 죽음, 고통 등의 주제들이 대거 다루어졌음에도 주제 제시 방식은 절충적일 뿐 아니라, 분위기조차 일반 미술관 전시에 가까워 지나치게 형식적이란 평들이 나왔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의 본령은 시대정신의 제시에 있음에도, 52회 전시는 이런 본령을 구현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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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서 한국이 소외된 이유는

젊은 작가 이형구씨의 이색 설치작업 등을 소개한 한국관 전시는 전반적으로 무난하다는 평이다. 미국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동물 캐릭터들의 뼈대를 마치 X선 투시 사진으로 본 것처럼 재현하는 그의 조각적 설치 작업들은 대부분의 관람객에게 소재를 보편적으로 인지시킬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상당한 호소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전시 공간과 정적인 연출 탓에 비엔날레의 전체 분위기와 함께 한국관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듯 비친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게다가 이씨가 이번 비엔날레 전체 전시를 통틀어 유일한 한국 작가라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작가들이 소외된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국제 네트워크의 부재와 세계적인 위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작가층의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우리 미술을 세계 곳곳의 평단과 기획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국제적인 중간 매개자(mediater)의 양성, 상업성을 뛰어넘는 탁월한 주제의식을 지닌 작가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비엔날레 기간에 행사장 주변 베니스 도심에서 열린 몇몇 동반 전시에는 이우환, 김수자씨 등 중견 작가들이 근작들을 출품하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뒤이어 12일에 시작된 38회 바젤 아트페어는 최근 국제 미술시장의 열기를 반영하듯 베니스에서 넘어온 인파와 현지 시민들의 관심 속에 떠들썩하게 진행됐다. 수많은 컬렉션 방문과 딸림 행사, 전시, 공연들로 닷새간의 기간이 숨가쁘게 흘러갔다. 한국 화랑은 두 곳이 나왔다. 보수 기성 화랑 위주인 전시관 1층에 국제갤러리가, 좀더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신진 화랑 위주의 2층에 피케이엠(PKM)갤러리가 부스를 차렸다.

사실 바젤 본전시에 출품하는 것은 전세계 화랑주들에게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참여를 못한 화랑들은 신진작가 위주의 별도 전시인 ‘아트 스테이트먼트’에 몰렸다. 특히 올해는 독일 화랑을 통해 출품한 재독작가 양혜규씨가 작가 두 명에게 주어지는 ‘블르와즈 아트 프라이즈’를 받았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트 언리미티드’(무제한 예술)란 특별전이다. 주요 갤러리들에서 선정된 신진 혹은 중견 작가들의 대규모 설치 프로젝트들을 전시 얼개로 기획한 것이다. 마치 비엔날레를 방불케 하는 전시 내용과 압도적인 작품 규모 등에서 바젤 아트페어의 규모와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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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주변에는 대안 미술장터를 표방한 ‘볼타’(Volta), ‘리스테 07’ ‘스코프’ 등 작은 아트페어들도 열려 젊고 유망한 개성파 작가들 위주로 작품들을 내걸고 있었다. 볼타에 참가한 한국의 두아트갤러리 부스도 보였다. 올해 바젤 페어 역시 지난해에 비해 방문객들이 훨씬 늘어나 매출액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시장의 열기, 관객 호응도로 봐 이런 흐름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흩어진 국내 전시들도 모아본다면

베니스와 바젤은 순수기획 전시와 상업 전시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비슷한 성격의 작가들과 화랑들이 참가한다고 볼 수 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국가적 위상이 걸린 행사로 발전해가는 이런 전시행사들을 보노라면 국내에 흩어진 숱한 지역 문화예술 프로젝트들이 하루빨리 국제적 기준에 맞게 기획·준비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베니스나 바젤 같은 수준에 하루아침에 다다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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