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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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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깨기 무한 도전 중

등록 2007-06-01 00:00 수정 2020-05-03 04:24

한정된 연예인들로 치열한 경쟁 펼치는 오락 프로그램들, 문제는 뚝심!

▣ 강명석 기획위원

4주가 지났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SBS 의 시작과 함께 “4주 만에 문화방송 을 깨겠다”던 SBS의 호언장담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까지 토요일 저녁 시간대 시청률 1위는 여전히 이다. 물론, 그건 당연한 일이다. 제작진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다. 현재 한국 오락 프로그램은 새 오락 프로그램이 몇 주 만에 인기를 얻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제작비는 물론 출연 연예인들도 겹치기 출연이 예사인 한국 오락 프로그램은 대부분 일주일에 하루, 정확히 말해 몇 시간 동안 인기 연예인들을 출연시켜 한 회분을 녹화한다.

그래서 한국의 주말 버라이어티쇼들은 대부분 한정된 스튜디오 안에서 연예인들이 게임을 한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들의 재미는 연예인들의 활약 여부에 달려 있다. 그래서 한국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출연자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그들에게 어떤 게임을 통해 차별화된 캐릭터와 관계를 부여하느냐가 중요하다. 같은 유재석이라도 의 유재석과 문화방송 의 유재석은 조금이나마 달라야 한다. 그리고 그 차별화된 캐릭터를 만드는 데는 시청률에 흔들리지 않고 프로그램이 설정한 방향대로 나갈 수 있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기존 캐릭터에 머물면 초라해질지니

은 이미 다져놓은 6명의 캐릭터 때문에 그들이 우스꽝스러운 여장을 하고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해도 웃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지금의 입지를 다지는 데는 거의 2년이 걸렸다. 그래서 최근 신설된 주말 버라이어티쇼들에 필요한 건 게임의 아이디어보다는 어떤 캐릭터를 만들겠다는 뚜렷한 콘셉트와 그걸 유지할 수 있는 뚝심이다. 한국방송 는 강호동을 중심으로 10여 명의 출연자가 한자 맞히기에 나서는 ‘준비됐어요’, ‘여걸식스’의 출연자 중 일부와 새로운 출연자가 모여 여러 과제에 도전하는 ‘하이파이브’, 탁재훈과 신정환이 추억의 명곡을 해당 가수에게 직접 배우는 ‘불후의 명곡’ 등 모든 코너를 연예인들이 모여 무언가에 도전하는 콘셉트로 만들었다. 또 는 유재석·박명수·하하 등 의 출연자 중 절반을 출연시키고, 은 문화방송 의 진행자(MC)인 김용만과 현영을 그대로 MC로 기용했다.

이는 요즘의 흐름을 반영해 연예인들의 도전 과정에서 캐릭터를 만들거나, 혹은 기존 캐릭터의 힘을 빌려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 중 상당수는 연예인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불분명하거나, 뚝심이 부족하다. ‘준비됐어요’는 게스트들이 매번 2~3명씩 교체되는 탓에 캐릭터 사이의 연속된 이야기를 만들기 힘들고, 10여 명에 달하는 출연자들은 그만큼 캐릭터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다. 게스트가 누가 됐건 고정 출연자들이 여자 게스트에게 열광하고, 강호동이건 김종민이건 똑같은 형식의 문제를 맞히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프로그램이 끝나는 건 마찬가지다. 반대로 ‘하이파이브’는 스튜어디스 되기처럼 나름대로 스케일이 있는 도전과제에 게스트 없이 고정 출연자들만을 등장시키면서 꾸준히 캐릭터를 만들겠다는 뚝심을 내비친다. 그러나 ‘하이파이브’의 여섯 출연자 중 현영, 조혜련, 지석진 세 명은 ‘여걸식스’의 출연자들이었다. 이들에게 ‘여걸식스’와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겠다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아직 다 같이 도전을 하고 완수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하이파이브’는 다소 부족해 보인다.

특히 얼마 전 조기 종영이 결정된 는 기존 캐릭터의 창조적인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 예다. 대형 바둑알을 주고받으며 출연자들끼리 서로의 약점을 지적하는 ‘알까기 토크’는 출연자들의 사생활을 들춰내면서 그들이 오락 프로그램 속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유재석과 박명수라는 사실을 더욱 부각시켰고, 각종 자학적인 방법을 유도하는 버저를 이용해 문제를 맞히게 하는 ‘이상한 부저’는 출연자들이 물공을 이마에 터뜨리며 허우적거리느라 캐릭터를 만들 시간조차 없었다. 오히려 성공작은 이들에 비해 출연자도, 스케일도 크지 않은 ‘불후의 명곡’이다. 탁재훈과 신정환의 컨츄리꼬꼬를 무대 위가 아닌 버라이어티쇼에서 재결합시킨 것도 재밌지만, 평소엔 천방지축 캐릭터이던 그들이 명곡의 당사자들 앞에서 적당히 애교를 부리며 열심히 노래를 배우는 모습은 꽤나 신선하다.

인기는 ‘불후의 명곡’이 얻게 될지도

이제는 ‘가수 출신 MC’쯤으로 여겨지던 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소방차의 안무를 배우고, 그동안 ‘노래 못 부르는 가수’로 알려진 신정환이 김종서의 모창을 그럴듯하게 해내는 모습은 그들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준다. 거기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추억의 명곡을 배우는 콘셉트는 주말 버라이어티쇼의 주 시청자층인 중장년층에게 어필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한국방송이 ‘불후의 명곡’이 4주 안에 를 넘어서길 기대하는 대신 충분한 시간을 주는 뚝심만 발휘한다면, 의 인기 코너는 ‘준비됐어요’나 ‘하이파이브’가 아닌 ‘불후의 명곡’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뚝심이 발휘된 뒤에는 새로운 길이 열려 있다. 이미 캐릭터가 쌓일 대로 쌓인 은 최근 그 캐릭터를 좀더 고차원적으로 이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최근 출연진들은 각종 야외 행사나 아이들을 위한 서커스 공연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들에게 사람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화려한 레드카펫보다는 찜질방 위문공연이 더 어울리는 ‘못난이’ 캐릭터들이 확고하게 자리잡힌 결과다. 사람들은 TV 속의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바로 곁에 왔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고, 그 이벤트들을 통해 스타이면서도 대중에게 더 가까운 의 매력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명확한 캐릭터 콘셉트가 그에 어울리는 게임을 만들어내고, 그 게임을 통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다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셈이다. 물론, 모든 프로그램이 과 비슷한 길을 갈 이유는 없다. 도 지금의 ‘두뇌 트레이닝’ 콘셉트를 명확하게 유지한다면 그 안에서 자연스레 생긴 캐릭터들이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갈지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지금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자원은 한정됐고, 경쟁은 치열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독창성, 그리고 그것을 밀고 나갈 수 있는 뚝심. 확신했다면, 앞으로 가라. 그러면 언젠가는 길이 보인다. 그것이 4주가 아니라 4달이 걸린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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