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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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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진화한다네, 한국의 여가수들

등록 2007-05-10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중의 욕구에 부응해 성공한 이효리 이후 여자 가수들의 선택과 노력

▣ 이문혁 대중음악평론가

대한민국에서 여자 가수로 살아남는 법은? 첫 번째, 노래를 잘한다. 그래도 안 되면? 노래를 정말 잘한다. 마지막으로는? 노래를 정말 죽여주게 잘한다. 이게 혹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제일 빠른 길은 이거다. 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잠깐 샛길로 빠지면.

이효리의 무대에 반응한 대중들

스파르타 군인들의 눈물겨운 근육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흥미진진하게 봤다. 영화 은 그렇게 보면 되는 영화였다. 미국과 이란의 정치적인 문제, 혹은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인식 등을 최소한 이런 영화에 떠올리고 구시렁대는 것은, 를 보고 우주공간에서의 중력 문제를 간과하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혹시 정말 그런 음흉한 의도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그에 대한 가장 철저한 복수는 그냥 배에 초콜릿 한 판이 붙어 있는 듯한 그들의 몸을 있는 그대로 즐겨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를 보고 거미의 생태에 대해서 진진한 고민을 한다면 얼마나 환자처럼 보일까 상상하니 더 그렇다. 만화는 혹은 만화 같은 영화는 그냥 그렇게 봐주면 끝이다. 결국,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즐거울 수도, 마음이 무거울 수도 있다는 결론이 샛길로 빠진 목적이었다. 결론은 조금 이따가 다시 한 번 반복하기로 하고 그럼 살짝 진지하게 본론으로 가자.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들을 죽인 이후, 더 이상 사람들은 음악을 귀로만 듣지 않는다. 눈으로 듣는 음악의 시대. 게임의 법칙이 달라지면 전략도 수정돼야 하는 법. 남녀를 불문하고 가수들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였다. 음악을 더 잘 들리게 하거나 혹은 음악을 조금 덜 들리게 하거나. 화면으로 증폭된 음악은 그 자체를 좀더 풍요롭게도 했지만, 영리한 이들은 자신의 음악의 밀도를 화면으로 슬쩍 감추는 방법까지 알아차렸다. 눈이 놀라면 귀는 멍해진다. 남보다 더 높은 음을 낼 수 있느냐 없느냐만큼 남이 보여주지 못한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느냐 없느냐 또한 중요해졌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줄 때 눈은 더 많이 모인다는 것도 터득했다. 남자들이 보고 싶은 것, 혹은 남자의 시선으로 훈련된 여자들도 보기 싫지는 않은 것은? 아름다운 얼굴과 만지고 싶은 몸보다 효율적인 건 없었다. 이효리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뭔지를 알았다.

〈10 Minutes〉은 그 자체가 이효리의 성인 선언이었다. 앳된 네 명이 채웠던 무대에 홀로 서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는 ‘귀여움’이라는 껍질과의 철저할 결별이라는 것을 그녀는 감지했고 대중은 반응했다. 음악의 밀도는 그 다음 문제였다. 대중은 이효리만의 음악을 소비하려 하기보다는 그녀가 무대에서 만들어내는 〈10 Minute〉이라는 퍼포먼스를 보고 싶어했다. 히트곡이 스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타가 부르는 노래가 히트곡인 세상에서, ‘가수’라는 타이틀이 모두 품지 못하는 이효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아이콘’이라는 이름으로 보충됐다. 광고(CF)에서 증폭되고 상승한 그녀의 이미지는 그녀를 정상의 가수를 넘어서 정상의 스타 자리에 올려놓았고 홀로서기는 완성됐다.

거꾸로 간 아이비, 음악 찾은 렉시

훌륭한 가수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스타를 목표로 삼는 것이 정상의 가수가 될 수 있는 지혜로운 전략이라는 것은 이효리가 준 첫 번째 교훈이었고,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던 다른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에게는 재취업의 가장 성공적인 매뉴얼이었다. 심화돼가는 음반시장의 붕괴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한 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 대중과 계속 만나기 위한 발판으로 가수로 계속 남고자, 아니 남아야 하는 많은 제2, 제3의 이효리를 낳았다. 약은 쓸수록 양이 늘어나는 법. 입고 나오는 옷의 무게는 데뷔 순서가 나중일수록 점점 가벼워졌고, 무대는 점점 더 아득해졌다. 이른바 ‘섹시’라고 이름 지워지는 우리만의 변종 외래어를 수식어로 하는 ‘여자 댄스 가수’들은 그들을 보며 음악을 보는 많은 이들이 보고 싶은 것들을 자신들만의 무기로 삼고 대중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진화하며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가고 있다.

채연은 발표하는 음반마다 다른 장르의 음악으로 자신의 폭을 넓혀가고 있고, 서인영이 보여주는 무대 위의 옷이 줄어들수록, 그리고 퍼포먼스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점점 더 시끌시끌 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아이비는 거꾸로 갔다. 발라드 가수보다 더 많이 가리고 나오는 댄스 가수. 여전히 ‘섹시’한 여가수라는 범주 안에서 그녀는 드러내기보다는 감추고, 흔들기보다는 눈으로 포효한다. ‘유혹’을 선언하면서도 절대 겉으로는 애걸하려고 하지 않는 그녀의 ‘소나타’에 대중은 기꺼이 유혹당했고, 그녀는 1집보다 나은 2집이라는 숫자적인 성공 이외의 것을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렉시는 자신의 고향 같은 음악으로 돌아가 꾸미지 않은 털털함이 더 가슴을 설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각 가수들의 음악성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는 샛길의 결론.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즐거울 수도, 마음이 무거울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결국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의 주인은 수용하는 이들이며, 그들은 걱정하는 만큼 맹목적이지 않다는 것, 즐기기 위해 소비하는 것과 생각과 감동을 얻기 위해 소비하는 것을 구별할 정도의 지혜가 있다는 말이다. 소위 ‘섹시 여자 댄스 가수’들에게 인순이 선생님에게 주는 것과 똑같은 의미의 ‘디바’라는 호칭을 부여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의미로 부르는 ‘디바’라는 호칭에 인색하지도 않다. 버티고 돌파해보려는 그녀들만의 방식대로의 노력이 또 다른 의미에서 음악만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많은 음악인들의 노력의 무게보다 덜한지 더한지 판단하기에는, 둘을 같이 올려놓고 잴 저울이 만만치 않다.

잘들 버텨주시길, 살아남으시길

노래를 정말 죽여주게 잘하는 인순이 선생님은 그것으로 우리 여자 가수로서, 그리고 하인스 워드보다 백배는 더 위대한 혼혈인이자 디바로 지금까지 ‘살아남으셨’다. 우리나라에서 여자 가수로 살아남는 것뿐만 아니라 가수로, 음악인으로 살아남는 것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올까봐 꿈에도 무섭다. 잘들 버텨주시길. 마지막으로 이제는 얘기할 수 있는 개인적인 한마디. 데뷔 때부터 보아가 우리나라의 섹시한 여가수라고 느꼈었다. 로리타 어쩌고 할까봐 입에는 못 올렸지만 말이다. 아, 보아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아시아의 가수인가? 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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