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논란을 오락 프로그램·CF의 ‘이미지’로 만회하는 ‘신기함’은 계속될까
▣ 강명석 기획위원
농담 56%쯤 곁들여서 이런 제안 하나 해보자. 이효리가 리얼리티 쇼를 한 편 찍는다. 온갖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톱스타인 이효리의 연예계 활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효리가 출연한 드라마의 연기력이나 노래의 가창력을 비난하는 글들을 보면 괴로워하고, 억대 출연료의 방송광고(CF) 계약을 하면 기뻐한다. 어떤 시청자들은 이효리가 잘 안 되는 모습에 만세를 부를 것이고, 또 다른 시청자들은 이효리가 결국 잘되는 모습을 보며 “효리 파이팅!”을 외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어찌됐건 시청률은 꽤 높을 것이다. 물론 이효리가 이런 리얼리티 쇼를 찍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효리의 연예계 활동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리얼리티 쇼였다. 리얼리티 쇼처럼, 이효리는 매년 위기와 반전을 반복했다.
2005년에는 연기 데뷔작 SBS 가 형편없는 완성도와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해 ‘이효리 위기론’이 일었고, 2006년에는 3년 만의 정규 음반 타이틀 곡 〈Get ya〉가 발표와 동시에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조용히 묻혔다. 그리고 2007년, 이효리의 새 소속사 엠넷미디어가 제작하고, 이효리가 주연으로 출연하며, 이효리의 디지털 싱글이 삽입곡으로 쓰인 드라마 은 아예 논란 덩어리다. 이효리의 연기력은 물론 조폭과 시한부 인생 등의 진부한 소재를 다룬 드라마의 완성도, 과도한 간접광고(PPL), 거대 기획사가 공중파 방송사에 무상으로 콘텐츠를 제공한 데 따른 방송윤리의 문제까지 모든 것이 논란거리가 됐다.
‘이상적인 여자친구’캐릭터 완성!
그러나 놀랍게도 이효리는 여전히 자타 공인 톱스타다. 이효리가 지난 1개월간 출연한 한국방송 , SBS , 문화방송 등은 모두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게다가 이효리는 여전히 많은 CF에 출연하고, CF 프로모션을 위해 부른 노래 과 등은 히트했다. 끊임없이 논란에 시달리지만 추락하지는 않고, 진지하게 시도하는 노래와 연기는 늘 안티 팬의 공격에 시달리지만 오락 프로그램과 CF는 성공한다. 하지만 이효리는 계속 노래와 연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계속 논란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이효리는 보통의 스타들과 다른 방식으로 대중에게 소비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톱스타 이효리는 가수 이효리와 오락 프로그램의 이효리의 결합이다. 이효리의 솔로 데뷔 곡 〈10 minutes〉는 이효리를 ’섹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핫팬츠와 배꼽티로 대표되는 섹시 콘셉트의 패션과 온몸을 이용한 웨이브를 보여준 〈10 minutes〉는 이효리에 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창조했고, 이 이미지는 이후 수많은 CF에서 반복되면서 이효리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키는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그러나 〈10 minutes〉는 핑클 시절부터 한국방송 까지 쌓아온 이효리의 또 다른 캐릭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핑클은 남성들이 바라는 각각의 여자친구 캐릭터를 모아놓은 것 같은 그룹이었고, 이효리는 핑클 활동에 이어 사회(MC)를 맡으며 남성에게 ‘이상적인 여자친구’ 캐릭터를 완성했다. 보통 남성 MC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는 일반적인 여성 MC들과 달리, 이효리는 학창 시절의 부끄러운 경험이나 연애담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등 남자 MC 신동엽에 밀리지 않는 입담을 선보였다. 또 멋진 남성 게스트가 출연했을 때는 장난스럽게 그들을 유혹하기도 했고, 여자 게스트가 출연하면 애교 있게 자신의 외모를 뽐냈다. 어떤 이야기든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털털하지만 애교도 있고, 예쁘고 섹시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10 minutes〉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가 난 남자를 쉽게 유혹할 수 있다고 외치는 자만이 아니라 이미 모든 남자들이 사귀고 싶어하는 여자가 ‘드디어’ 섹시한 옷을 입고 살짝 웃으며 사귀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효리의 섹시함은 부담스럽지 않았고, 이효리처럼 매력적인 여자친구가 되길 원하는 여성들에게는 따라해야 할 유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이효리에게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쌓아온 캐릭터를 더 상업적인 형태로 구체화할 수 있는 창구였던 것이다.
실력을 강조할수록 반감은 커진다?
그래서 가수를 통해 이효리의 캐릭터는 적극적으로 소비됐지만, 정작 ‘음악’은 잘 소비되지 않았다. 〈10 minutes〉 발표 뒤 이 노래의 콘셉트를 살린 이효리의 CF는 계속 방영됐고, 술집이나 옷가게 등 ‘유행’이 필요한 곳에서는 〈10 minutes〉가 쉴 새 없이 나왔다. 그러나 〈10 minutes〉가 수록된 음반 판매량은 이효리의 화제성에 비해 저조했다. 이효리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됐다. 이효리가 섹시 아이콘이자 트렌드 리더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가수로서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중은 이효리를 가수라기보다는 매력적인 캐릭터나 섹시 아이콘으로 받아들인다. 인기는 있다는데 정작 ‘가수’로서의 실적이나 능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실력 없이 섹시한 이미지만으로 인기를 얻었다는 논란이 생겼고, 이효리의 인기는 〈10 minutes〉 발표 당시 하루 걸러 스포츠신문 1면에 이효리의 사진이 등장했던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효리는 이런 논란들을 자신의 ‘실력’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 그는 SBS 드라마 에서 실제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가난한 여공을 연기했고, 〈Get ya〉에서는 특유의 귀여운 섹시함 대신 공격적이고 격렬한 춤으로 터프한 모습을 선보였다. 누가 봐도 그것은 이효리가 자신의 실력을 놓고 대중과 벌이는 정면 승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효리의 이런 활동 방향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이미지’로 소비된 가수가 ‘실력’으로 승부하겠다고 나설 때, 대중의 기대치는 당연히 높아지며, 그 기대치를 만족시키려면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상당한 발전을 해야 한다. 게다가 귀엽지도 섹시하지도 않은 이효리에 예전 같은 호의를 보이기란 어렵다. 이효리는 애초에 이기기 쉽지 않은 싸움을 걸었고, 그 결과는 늘 대중의 인정 대신 ‘논란’이라는 딱지로 돌아왔다. 그 과정이 반복될 때마다 이효리는 안티 팬에게서 ‘실력 없는 톱스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됐다. 발표 전에는 정면 승부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큰 관심을 모으는데 결과물이 좋지 않았으니 다른 가수와 비슷한 수준이라도 ‘과대 포장’이라는 반감을 산 것이다. 특히 드라마 은 이효리의 딜레마를 더욱 확대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에서 이효리는 가난한 가수 지망생을 연기했고, 같은 발라드로 이미지 변신을 노렸다. 그건 와 〈Get ya〉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효리가 가창력으로 인정받는 가수 지망생을 연기하는 모습에 감정이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은 거대 기획사 엠넷미디어의 힘을 등에 업고 공중파 방송사에 무상으로 제공돼 금요일 밤에 특별 편성됐다. 그러나 결과물은 과도한 PPL과 진부한 설정으로 점철된 그저 그런 작품이었다. 거대 기획사가 톱스타를 앞세워 밀어붙인 무리수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충분히 예상될 만한 일이었다. 이효리가 엄청난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 한, 이효리는 실력을 강조할수록, 그가 톱스타라는 것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반감에 부딪히는 이상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드라마 실패에서 구해준 CF
그런 이효리를 구원해준 것은 ‘가수 겸 연기자’ 이효리가 아니라 ‘매력적인 캐릭터’로서의 이효리였다. 의 실패로부터 이효리를 구한 것이 CF 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애니모션’은 이효리에게 이미지 변신을 요구하거나 그의 가창력과 춤솜씨를 강조하는 대신 이효리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순응했다. 이효리에게 특유의 건강하고 밝은 섹시 아이콘의 모습을 강조하는 춤을 추도록 했고, 트렌드 리더로서 이효리를 부각시킬 수 있는 트렌디한 클럽 음악을 선사했다. 이 발표된 뒤 누구도 이효리의 가창력이나 연기력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에 상관없이 은 히트했고, 이효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곡이 됐다. 현재의 이효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창력이나 연기력이 아니라 캐릭터의 콘셉트와 긍정적인 이미지다.
그것은 결코 허상뿐인 이미지만은 아니다. 그 이미지야말로 지난 10여 년 동안 이효리가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착실히 쌓아온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효리가 〈Get ya〉의 표절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역시 한국방송 에 MC로 복귀해 〈Get ya〉의 무대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이효리만의 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이효리가 가수로서도 연기자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대중은 주의 깊게 보고 들어야 연기력과 가창력이 더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준의 가수 겸 연기자 이효리를 원하지 않는다. 이효리가 보여줘야 할 건 가수도, 연기자도, 오락 프로그램 MC도 아니지만 어쨌든 ‘가장 매력적인 여자’인 이효리만의 어떤 매력이다. 지난 3월26일 방영된 SBS 에서 이효리는 8살 연하인 탤런트 김혜성에게 장난스럽게 대시하고, 자신의 부끄러운 실수담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이효리 외에 현재 한국에서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매력을 이렇게 잘 드러낼 줄 아는 20대 후반의 여성 톱스타는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잘 노는’ 이효리, 평지로 내려올까
이효리를 둘러싼 논란은 어쩌면 아직 대중문화에서 오락 프로그램에서 ‘잘 노는’ 엔터테이너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효리가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인기와 잘 만들어진 무대 위의 이미지만으로도 톱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이효리 스스로나 대중 모두 마음 편하게 이효리의 캐릭터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이효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말 모두가 기립박수를 칠 만큼의 노래나 연기를 보여줄까, 아니면 노래나 연기를 잘하건 못하건 브라운관에 얼굴만 비추면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좋은 엔터테이너로 남을까. 물론 출연하는 오락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증명하듯, 연기와 음악에서 논란이 일면 자신의 캐릭터를 살린 오락 프로그램이나 CF에서 이를 만회하는 이효리의 ‘신기한’ 활동 방식은 아직 유효하다. 그러나 논란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이효리의 이미지 자체를 식상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 것이고, 에서 이효리가 밝혔듯 그도 이제 29살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점점 끝이 다가온다. 이효리는 줄에서 무사히 내려와 탄탄한 평지를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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