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성을 성애가 아니라 ‘대화 상대’로 받아들인 시대의 토크쇼 한국방송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하필이면 ‘미녀들’이다. 그냥 여성들도 아니고, 혹시나 미남들도 아니고, 역시나 ‘미녀들의 수다’다. 외국인의 대명사로 미녀들을 내세우는 담대한 시도에, 성평등 의식이 철저하지 못한 설문에, 때때로 아슬아슬한 말을 ‘날리는’ 남성 출연진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한국방송 2TV에서 일요일 오전 10시30분에 방송되는 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던 외국인에 대한 ‘우리’의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목만이 아니라 정말로 ‘미녀들’
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여성들이 나와 ‘한국의 건강보양식, 이것이 충격이다’ ‘기상천외한 한국의 졸업식 문화’ 등을 주제로 놓고 한국과 출신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에는 16명의 외국인 ‘미녀들’이 등장하는데, 제목만 ‘미녀들’이 아니라 정말로 ‘미녀들’이다. 물론 미모보다는 수다로 승부하는 출연진도 없진 않지만, 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스타가 되기란 쉽지 않다. 수다를 중계하던 카메라는 수다 사이사이에 열심히 미녀들의 미모를 ‘훔친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혼혈인 에바 포피엘(영국)의 청순미, 전형적인 금발 미인 엘리자베타 비알로바(우크라이나)의 우아함, 베트남 여성 하 황 하이옌의 소녀 같은 매력, 일본인 사오리 장의 깜찍함…. 카메라는 마치 ‘골라 보는’ 재미가 있다는 듯 그들을 번갈아 비춘다. 이렇게 다국적 여성의 미모는 지금껏 안방에서 경험하기 힘들었던 즐거움을 선사한다. 어쨌든 외모의 매력이 인기의 바탕이 되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미녀들의 수다가 아니라) 그냥 외국인의 수다였으면 인기가 좋았을까”라고 말했다. 더구나 미녀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한국인 남성 출연진은 천명훈씨의 ‘시커먼스’ 파문에서 보듯이 이따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는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고 인기를 얻었다.
그래도 에는 뭔가 장점이 있다. 한국인은 할리우드의 미녀들은 몰라도 우리 안의 외국인 여성을 그다지 ‘미녀’로 찬양하지 않았다. 최소한 방송에서는 그랬다. 그동안 잘생긴 혼혈인 남성이 드라마 스타가 되는 사이에도, 혼혈인(혹은 외국인) 여성이 브라운관에서 사랑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국에서 성공한 두 명의 혼혈인 배우, 대니얼 헤니와 데니스 오는 ‘우연히도’ 남성들이었다. 외국인 여성이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경우는 한국에서 사는 프랑스인 이다도시처럼 정말로 한국화된 외국인에 국한됐다. 는 비로소 ‘아줌마’가 아닌 외국인 여성이 한국인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에는 ‘루다도시’로 불리는 루베이다 던포드(캐나다)처럼 한국인 뺨치게 한국적인 외국인도 있지만, 엘리자베타처럼 한국어에 서툰 사람도 있다. 사투리를 쓰는 외국인 로버트 할리처럼 ‘한국화된’ 외국인만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를 만드는 이기원 프로듀서는 “(출연진이) 한국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에서 재미가 나온다”고 말했다. 강명석씨는 “예전에는 외국인의 아름다움은 (방송에서) 논외의 문제였다”며 “어쨌든 는 한국인이 외국인 여성을 미녀로 받아들인다는 측면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아파트 광고를 찍은 에바, 씩씩한 말투로 ‘루반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루베이다는 한국에서 스타가 되었다.
성애화된 ‘외국 여성’ 이미지를 넘어
잠시만 샛길로 빠지자. 최근에 배우로 성공한 혼혈인은 왜 한결같이 남자였을까. 왜 방송광고에는 외국인 남성 모델이 여성 모델보다 자주 등장한 것일까. 죄송하지만, 한국 남성의 이중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한국 남성은 외국인, 특히 백인 여성에 대해서 성적인 환상이 강하다”며 “남자들끼리 모이면 성적 농담의 대상으로 삼지만 막상 연애나 결혼 상대로 외국인 여성을 받아들이기는 (한국인 여성이 외국인 남성을 받아들이기보다) 어려워한다”고 지적했다. 사적인 영역에서 은밀한 환상을 품는 만큼 공개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동경과 비하의 이중적 잣대가 은연중에 반영된 결과, 외국인 혹은 혼혈인 여성 스타가 나오기 어려웠다. 여기에 견줘, 잘생긴 남자 연예인에 대한 여성들의 표현은 표리부동하지 않고 솔직하다. 이러한 차이는 대니얼 헤니 같은 남성 스타가 나오는 정서적 기반이 되었다. 외국인 여성이 나와서 수다를 떠는 의 인기는 이러한 정서의 변화를 반영한다. 의 인기는 이렇게 성애화된 외국인 여성의 이미지를 넘어서, 외국인 여성이 ‘대화 가능한’ 상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한국인은 브라운관에서 최초로 그들과 대화하고 있다.
의 재미는 8할을 시대가 만든다. 는 외국인 16명이 나와서 한국 문화와 자국 문화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프로그램 존재 자체로 한국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준다. 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이렇게 다양한 외국인이, 더구나 아리따운 여성들이 이토록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심지어 동화됐다.” 역으로 말하면, “이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질 만큼 우리가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것이 전제돼 있어서 그들을 보는 재미가 생긴다. 이렇게 를 즐기는 한국인의 심리에는 문화적 자신감이 깔려 있다. 강명석씨는 “예전에는 외국인이 한국 문화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싫어했다”고 지적했다. 는 외국인이 한국 문화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도 시청자는 그들의 말에 거부감을 느끼기는커녕 그들의 수다를 즐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제는 들을 수 있다’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에 ‘움찔했던’ 옛날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넘기는 오늘이 되었다. 평론가 강명석씨는 “예컨대 개고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이제는 개고기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뭐라고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는 콤플렉스 없는 시대의 토크쇼다.
“한국 개고기 국물이 너무 시원해요”
그리고 상식으로 매김된 문화적 다양성을 증명한다. 는 ‘포맷’이 좋다. 미모를 다양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10개국 이상에서 온 16명의 미녀들을 출연자로 ‘모셨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여성들이 모여서 떠는 ‘수다’는 예상을 뛰어넘는 효과를 낳는다. 먼저 동서양이 뒤섞인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백화제방으로 수다를 떨면서 저절로 보편적이라 여겨온 서구적 기준이 상대화된다. 문화적 다양성은 상식으로 증명된다. 더구나 에는 캐나다, 일본, 베트남, 중국에서 온 여성이 두 명씩 출연하는데, 이들이 말하는 자국의 문화도 때때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렇게 국경을 경계로 나뉜 문화적 구분도 상대화되면서 ‘한 나라 안의 다른 문화’도 보인다.
무엇보다 캐릭터를 만들지 않아도 캐릭터가 생긴다. 강명석씨는 “다른 프로그램은 캐릭터의 차별화를 위해서 애써야 하지만, 에서는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생긴다”고 분석했다. 먼저 캐릭터 차별화의 바탕인 외모의 차이가 뚜렷하다. 게다가 그들이 말하는 문화의 차이는 캐릭터의 차이를 강화한다. 여기에 한국어에 능통하냐에 따라서 나뉜다. 그리하여 루베이다는 반장처럼 나서기 좋아하고 말이 많다고 ‘루반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아가 “루반장과 사오리가 가까이 있으면 시끄럽다” 말처럼 캐릭터 사이의 관계도 생긴다. 시청자는 저마다 골라서 즐긴다. 여성들은 레슬리 벤필드(미국)의 영민함, 남성들은 에바의 청순미에 열광한다. 누군가 엘리자베타의 서구적 우아함을 본다면, 누군가는 일본인 사가와 준코의 동양적 단아함에 매료된다. 이렇게 16명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면서 다양한 화제를 만들어낸다. 베트남 출신 하이옌은 “한국 개고기 국물이 너무 시원해요”라는 한마디로 인터넷 스타가 됐다. 1분을 말해도 한마디만 ‘히트’하면 바로 몇 시간 동안 포털의 검색어 1위에 오른다.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가 보장되는 는 인터넷 시대에 걸맞은 방송이다.
‘미스코리아 대형’은 한국인의 한계?
물론 에는 국적의 한계가 많다. 아무리 섭외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출연진 중에서 흑인은 레슬리 벤필드 한 명에 불과한 것은 인종적 불균형을 보여준다. 아시아인이 서구인과 출연을 양분할 만큼 많아졌지만, 여전히 한국인과 닮은 동북아 출신이 다수를 점한다. 동남아 출신은 말레이시아의 소피아 리자 등 소수에 그친다. 심지어 프로그램 초기에는 ‘미녀들’을 ‘미스코리아’ 대형으로 계단에 한두 명씩 나란히 세우는 과감한 장면을 연출할 만큼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했다. 이런 시선은 점차로 순화돼왔지만, 여전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눈으로 보면 불편한 면이 적지 않다. 하지만 거꾸로 그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무의식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화제의 방송 는 4월 봄철 개편에 맞춰 월요일 밤 11시로 방송 시간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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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부터 섭외까지 몇 년에 걸친 시행착오 겪어
의 책임 프로듀서인 이기원 PD는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을 “해외여행을 예전보다 자주 하게 되고, 국내 체류 외국인이 90만 명에 이르면서 일상에서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를 기획한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콘셉트를 어떻게 잡았나?
=몇 년 전부터 생각은 했는데 무리다 싶었다. 그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외국인 승무원이 80~90명씩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쪽에서 추천만 받아도 되겠다 싶어서 시작했는데, 막상 외국인 승무원들은 출신국에 취항할 때만 탑승하는 사람들이어서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몇 번 접을까 하다가, 온갖 채널을 동원해서 인터뷰를 했다.
여성만 나오는 이유는 뭔가?
=사실 로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해서 그렇다. 그리고 인터뷰를 해보니, 외국인 기혼자들은 외모는 외국인인데 사고는 한국화돼 있다. 문화 비교 토크는 안 되겠다 싶었다.
더구나 출연진의 외모도 출중하다.
=메이크업의 승리다. 메이크업을 하지 않으면, 연예인처럼 보이는 출연진은 20~30%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연예인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외국인은 배제했다. 출연진의 다수가 학생인데, 그냥 한국에서 생긴 추억으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연예인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되도록 순환해서 출연시키려고 노력한다.
프로그램 내용이 초기부터 조금씩 바뀌어왔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락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락을 추구하는 순간 프로그램의 의도가 흔들린다. 그래서 토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국적이 ‘쏠리는’ 현상도 있다.
= 실제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80~90%가 중국 등 아시아에 편중돼 있다. 더구나 출입국 관리 규정이 까다로워서 어학당에 다니거나 교환학생이면 출연이 어렵다. 실제 몇 명은 우리가 비자를 내주기도 했다. 섭외는 하지만 다양한 출연진을 구하기 쉽지는 않다.
그래도 다양한 출연진이 인기를 얻고 있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적응을 못하는 사람까지 고려하면 16명은 돼야지 싶었다. 그렇게 한두 주 지나니까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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