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네 편의 스토리로 가정과 사회에 대해 발언한 만화 …동화 속 잔혹한 장면에 통쾌한 상상력을 더해 ‘가족’의 탐욕을 파고들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영화 는 심씨네 다섯 식구들을 응시하며 한껏 웃음 보따리를 풀게 한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솟구치는 무엇인가를 느끼도록 한다. 영어 제목이 ‘벽장 속의 해골’(Skeletons in the closet)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 풀어놓은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으리라. 짐작대로 명랑가족의 남루한 일상만을 담아내지는 않았다. 일상의 판타지를 통해 부유하는 캐릭터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가족영화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해피 엔딩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냥 벽장의 해골을 그대로 두고 사는 것처럼 서로의 치부를 인정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길 뿐이다.
2% 부족한 생활만화의 상상력
어쩌다가 서로에게 거리를 두길 권하는 세상이 되었냐고 탓할 일은 아니다. 가족의 탄생에서 해체에 이르는 과정이 상상을 초월하는 판타지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과 집단의 광기가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잉태되어 숙성 과정을 거치는 게 현실이다. 이를 외면한 채 가정을 살림살이와 자녀 키우기를 둘러싼 자질구레한 일상의 삽화로 그린다면 최면 효과를 기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날것 그대로의 비릿함을 생생하게 전하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게다. 설령 그것을 바라보는 불편함이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미 길들여진 내성은 해골보다 더한 것도 감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우리가 감당할 가족의 실체는 어디까지일까. 그동안 생활만화는 ‘집으로’ 들어가는 크고 작은 문을 만들었다. 만화가 최정현씨가 1990년 6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는 생활만화의 효시로 작가들을 집으로 끌어들였다. 소박한 일상에 자잘한 재미를 덧입힌 생활만화는 이지현씨의 ‘한 아이의 눈물겨운 체험담’이라는 부제가 딸린 까지 생명을 낳고 키우는 과정을 축복과 행복으로 여기는 드라마를 엮어냈다. 이지현씨의 고백처럼 ‘산다는 게 여전히 힘겹고 서둘러 갈 길을 잃고 비틀거릴 때, 살아라, 걸어라 따뜻이 토닥여주고 세상을 택한 이유를 일깨워주는 천사가 있는 가정’을 엿보게 한 것이다.
누구나 휴식이며 존재의 이유로 생각하는 집. 때로는 그곳이 전장으로 돌변한다 해도 행복이 메아리치는 가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순정만화가 김지윤씨가 펴낸 장편 생활만화 <my funny baby>도 쌍둥이 아이를 키우는 악전고투를 실감나게 그려내며 기발한 반전의 묘미를 담아냈지만 행복의 공식에 상처를 내지는 않았다. 아무리 홍승우씨가 에서 착한 아이에 대한 환상을 깨며 엽기적 행각을 담아내고, 정연식씨가 푸들 강아지 ‘또디’를 내세워 예사롭지 않은 웃음을 버무려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흔히 떠올리는 가정 드라마에 2%의 갈증을 채우는 만화적 상상력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한 셈이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팬옵티콘’에 가둬
이런 의미에서 신예 만화가 김경일씨의 (현실문화연구 펴냄)은 가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만화의 힘을 느끼게 한다. 일상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SF와 판타지, 액션 등의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특유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공동의 삶을 거부하고 돈독이 오른 인간들의 탐욕과 부모들의 광적인 교육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횡포 등을 네 편의 스토리에 저마다의 색깔로 그렸다. 또 이를 익숙한 동화와 만화적 패러디라는 이중의 장치로 매끈하게 담아냈다. 마치 영화 이 아동 학대와 모친 살해라는 잔혹한 텍스트를 그림형제의 동명 동화를 모티브로 삼아 미스터리와 공포로 비튼 것처럼.
실제로 김경일씨도 그림형제의 동화 를 같은 제목의 만화로 담아냈다. 어느 마을에 나타난 피리 부는 사나이가 사례금을 믿고 쥐떼를 몰아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마을 아이들을 이끌고 호수 속으로 사라진다는 동화의 줄거리를 작가는 모든 것이 통제되는 ‘에듀케이션 시티’의 현대판 맹모들에게 적용한다. 여기에서 호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용 카메라로 통제하는 어른들이다. ‘대치동 엄마’로 상징되는 입시 교육에 일침을 가하는 스토리이다. 동화의 섬뜩하고 오싹한 장면에 통쾌한 상상력이 더해져 현실을 파고드는 셈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살피고 싶은 마음은 한이 없겠지요. 언젠가 아이를 맡긴 어린이집에 갔더니 집에서 보던 아이들 모습과는 다르더군요. 치고 박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무실에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어요.” 여기에서 작가는 얄궂은 바람을 만화로 드러내지 않았다. 극한으로 치닫는 부모의 욕망을 유비쿼터스 사회에 적용해 아이들을 원형 감옥인 ‘팬옵티콘’에 가두는 식으로 표현했다. 물론 부모의 과도한 보호 본능과 교육열에 대한 풍자다. ‘심판’을 통해 어른 없는 세상에 다다른 아이들. 그들만의 세상이라 해도 또 다른 욕망의 싹은 자라나게 마련이다.
이런 작가의 묵직한 주제 의식은 그림에도 오롯이 살아 있다. 등장인물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은 물론이고 한순간도 멈춰서 있지 않는 듯하다. 한 신문사에서 미술기자로 일하며 일러스트레이션과 캐리커처 등을 그리기에 인물의 ‘꼬인 심리’까지 파악하는 재주가 남다르다. 게다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해 데생이나 색감, 화면 연출 등의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어쩌면 제가 보고 싶은 만화를 그린 것인지도 몰라요. 나름의 주제 의식에서 나오는 강렬한 표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끔찍한 장면도 더러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만큼 잔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정도 천편일률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그동안 생활만화는 캐릭터를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 식이었다. 이에 견줘 김경일씨의 은 강한 스토리를 중심으로 가정과 사회에 대해 발언한다. 물론 작가가 분명한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예컨대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삼킨 아들의 배를 가르는 아빠는 ‘잔혹 만화’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배를 가르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아빠 아니야”라며 도망치는 아이의 절규에 있으리라. 한순간의 웃음으로 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몰랐던 만화의 감동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만화로 가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김경일씨의 도전은 지속될 예정이다. 이미 동화와 우화 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한 같은 작품이 나왔지만 김씨의 작품은 선명한 주제 의식과 색다른 스타일로 동화 패러디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생활만화의 지평도 넓어질 게 틀림없다. “교육적 효과를 기대하는 만화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만화적인 재미와 선명한 주제 의식으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가정의 모습이 있듯이 만화가 다루는 가정도 천편일률적 시각에서 벗어나야겠지요. 다음 작품에선 욕심을 덜어내고 절제된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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