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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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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속의 여성 연예인들

등록 2007-02-03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외모와 사생활 공격받으며 한국에서 여성 연예인으로 살아간다는 것…마약·이혼·폭력 등에 연루되면 여성에게만 쏟아지는 비난의 가혹함이여 </font>

▣ 장서윤 기자 ciel@mydaily.co.kr

‘눈 작아서… 정말 작네요. 여러분 죄송해요!’(2005. 4.24) 얼마 전 교통사고로 고인이 된 ‘미녀삼총사’의 멤버 개그우먼 고 김형은(26)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생전 그녀가 남긴 짤막한 글귀다. 얼굴 한번 실제로 마주한 적 없는 그녀지만 짧은 한 줄 글에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던 건 외모에 대한 비판에 남몰래 눈물 훔쳤을 생전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선 ‘미녀삼총사’의 강하고 발랄한 캐릭터로 입지를 굳혔지만, 그녀 또한 여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혹독한 외모 평가’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0여 일 뒤 그녀를 뒤따라간 동갑내기 가수 유니(본명 허윤·26)의 사연은 마음을 더 싸하게 했다. 3집 앨범 발표 하루 전날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그녀는 이전에 우울증 치료약을 복용한 적이 있다. 겉으로 표현하기보다 안으로 삭이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녀가 대중 앞에선 늘 과감한 노출과 섹시 콘셉트로 나서는 일이 얼마나 큰 부담이었을지, 또 그로 인해 ‘천박하다’거나 ‘몸으로 먹고 산다’ 등의 비난을 받을 때 어떤 종류의 외로움을 느꼈을지 영정 속 슬픈 웃음을 보고서야 비로소 조금 이해가 갔다.

못생겼다? 성형 의혹? 난잡하다?

여성 연예인들을 곁에서 취재하다 보면 어느새 부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말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예쁘장하게 타고난 외모와 출중한 재능에는 찬사를 보내지만 건드리면 깨질 듯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하는 그네들을 보면 애처로운 마음이 앞선다. 얼굴이 전형적 미인 기준에 못 미치면 못생겼다고, 예쁘지만 덜 자연스러우면 곧바로 ‘성형 의혹’이, 스캔들이라도 나면 ‘난삽하다’고, 나이가 좀 들면 ‘성숙함’을 인정하기보다 ‘퇴물’ 취급하는 등 온갖 편견과 인권침해 속에서 그들은 때론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갇힌 듯하다.

상대적으로 행동반경이 넓은 남자 연예인들이나 해외 여성 스타들에 비해 한국의 여성 연예인들은 거의 소속사의 과보호 속에 ‘온실 속 화초’가 되지 않으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예를 들어 수년 전 동거설이 알려져 피해를 본 한 여성 연예인은 아직도 작품활동 등에 어려움을 겪는 반면, 여성과 함께 있는 나체사진으로 협박을 당한 사건을 겪은 남성 연예인은 이후 별다른 공백 없이 현재까지 왕성히 활동 중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두 사람 모두 사생활이 노출돼 피해를 봤음에도 여성 연예인의 경우만 지상파 TV에서는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을 정도로 이후 연예계 생활에 타격을 입었다.

또 각종 사건사고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이 복귀할 때도 여성일 경우 더욱 무시무시한 비난이 기다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2002년 마약 사건 이후 5년여 만에 SBS 금요 드라마 에 출연 중인 탤런트 황수정(35)의 경우, 아직도 ‘최음제 발언’이 그녀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2002년 당시 수원지검에서 황씨의 최음제 복용 사실이 없음을 공식 발표하고 문제의 “최음제인 줄 알고 마셨다”는 발언도 미확인 추측 보도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5년이 흐른 뒤에도 그녀는 ‘최음제를 마신 부도덕한 여자’란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디까지나 ‘만일’을 염두에 둔 가정이지만, 같은 사건으로 연루된 남성 연예인이 “비아그라인 줄 알고 복용했다”고 발언했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적어도 5년 뒤 ‘마약은 용서해도 비아그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의견이 네티즌 댓글로 줄줄이 달리진 않았을 것 같다. 또 대마초·마약 사건 뒤에도 구김없이 자신의 끼와 재능을 발산하고 있는 몇몇 남성 연예인들을 떠올린다면 황씨를 비롯해 비슷한 사건을 겪은 여성 연예인들에 대한 비판이 가혹했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다.

“한국 여배우로 10년 버티기 힘들어”

이에 “어차피 자신들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 직업의 특성상 여성 연예인들 스스로 감내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 아닌가”란 반문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여성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를 은연중에 ‘청순함’과 ‘섹시함’, 혹은 ‘성녀’와 ‘악녀’ 구도로 이분법화해 기존의 가부장제에 의거한 남녀차별 구조를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의제다. 여성학자 정희진 교수의 의견을 빌리자면, 가부장제 구조를 위협하는 모든 요소는 사회 지배집단에 의해 ‘악’으로 분류되곤 한다. 이는 대중문화 코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결혼한 개그우먼 이경실(41)이 4년 전 가정폭력과 이혼을 겪으면서 세간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경우도 이에 속한다. 그녀는 최근 결혼 발표 기자회견이라는 기쁜 자리에서 “나에게는 아직도 누군가 툭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지는 부분이 있다”며 울먹였다. 이에 앞서 지난해 말 한 아침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는 “지난 3년간 땅으로 푹 꺼지고픈 순간도 있었다”고도 했다. 힘들었을 그녀의 팔다리를 꺾은 건 이혼이라기보다 그것을 ‘여자 탓’으로 돌리며 매서운 시선을 보낸 대중의 눈초리였을 것이다.

연기생활 10년을 맞은 배우 박진희(29)는 드라마 출연을 앞두고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여배우가 10년을 버티며 활동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연기를 잘 모르는 데뷔 초기에는 주연 제의가 많지만, 정작 연기에 탄력이 붙을 만한 7~8년차 때부터는 오히려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배우를 키워주는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데다 온갖 루머에 취약한 환경에서 여배우가 설자리는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UPN에서 인기리에 방송 중인 (원제: America’s Next Top Model)에서 독설을 퍼붓는 심사위원으로 유명한 모델 출신 제니스 디킨슨(52)은 자신의 화려한 과거 행적과 자신만만한 현재에 대해 떠들기를 즐긴다. 유명 영화배우들과의 동거에 이어 아버지가 각기 다른 두 아이를 홀로 키운 얘기, 알코올 중독 극복기, 성형수술 경험담 등…. 얼핏 보면 자유분방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는 듯하지만 그녀의 얘기를 5분 이상 듣다 보면 진지한 삶의 원칙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모델이 되려면 고등학교를 꼭 졸업하라”거나 “항상 솔직함이 최고의 덕목”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카랑카랑하게 떠드는 그녀를 보면 한국의 여자 연예인들에게 찾기 힘든(가끔 방송인 박경림을 볼 때 그녀와 비슷한 ‘포스’가 엿보이긴 한다) 통쾌함과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이제는 새장에서 풀어줄 때

이제는 여성 연예인들을 새장 속에서 풀어줄 때도 된 것 같다. 박제된 아름다움과 지배적 이미지의 환상 속에 그들을 가둬놓을 것이 아니라 여성 연예인들이 좀더 당당해지고 자기표현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줄 때다. 이미 21세기 ‘대중의 우상’으로 자리한 연예인들은 결국 현실 속에서 닮고 싶은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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