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가요 시상식도 못할 상황이라는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의 위기…변화에 귀막고 ‘쉬운 쇼’ 만들어온 각 주체가 자성의 목소리 내야
▣ 이문혁 Mnet Media 컨텐츠기획팀 프로듀서
성공의 요인을 찾을 때는 ‘저요 저요’ 하던 사람들이 실패의 원인을 물으면 ‘쟤요 쟤요’ 하기 마련이다. 에 누가 나왔었나를 모르면 대화에서 왕따를 당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지만, ‘잔치를 벌이기에는 상황이 너무 안 좋다’며 연말 시상식을 거부하는 제작자의 일갈에 딱히 반박할 말조차 찾기 겸연쩍은 것이 지금이다. 한때 손님으로 바글대던 백화점이 텅 비어 있다면 원인은 있을 터. 상품이 문제인지, 아니면 너무 배짱 장사를 했는지, 정말 소비자의 취향이 바뀐 건지, 이도저도 아니면 결국 환경의 변화라는 운명의 소용돌이가 너무 강력했는지, 시청률 바닥을 맴도는 공중파의 음악 프로그램을 보는 마음이 애틋한 만큼 ‘범인’을 찾아야겠다는 의지도 강해진다. 먼저 백화점 주인의 잘못부터.
백화점과 납품업자, 둘 다 잘못
공중파 쇼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하는 것이 바로 돈이 되던 시절. “한 번 나가고 나니 다음날 주문이 5천 장 들어왔어요”라는 어떤 가수의 증언이 말해주듯, 손님이 몰려오는 상황이니 납품하겠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땅 짚고 헤엄치면 되는 일이었다. “저기 가서 한 번 웃기고 와”라고 얘기해도 출연만 시켜준다면 감지덕지였기에,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가수들을 출연시킬 수 있는 전가의 보도가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가만있어도 장사가 잘되는데 서비스에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손님들 중에 10대가 갑작스레 많아지는 것 같으면 10대들이 좋아하는 물건만 쭉 늘어놓으면 장사 준비 끝. 어느 순간에 20대 이상의 시청자들이 더 이상 음악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납품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대접받을 수 있는 신설 양판점에 눈을 돌리고 있는 징후도, 손님들의 발길이 서서히 줄어들어 가는 것도 별무상관이었고, 호황은 계속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위기란 항상 갑작스레 찾아오기에 황망한 법. 더 이상 배짱 튕기며 장사하기 힘들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다른 쇼핑센터에는 손님들이 버글거렸다. 음악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서로 쏟아내는 수다를 엿보는 재미를 더 쏠쏠해하고, 멋진 무대에서 추는 춤보다는 엉성한 조명에서라도 이마만 계속 쳐대는 골목대장이 더 잘 팔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댐은 터졌고 물은 넘쳐났다. 더욱이, 단골들조차 집에서 클릭 한 번만 하면 배달까지 해주는데 굳이 불친절한 백화점에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뭘 해도 마가 낀다. 상품을 좀 다양하게 해보자 했더니, 생방송 중에 바지를 내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예전에는 전화 한 통만 해도 득달같던 납품업자들마저, 이제는 상품을 달라고 사정을 해도 콘셉트가 안 맞는다며 배짱을 튕긴다. 말이 나온 김에 이제는 납품업자들의 잘못.
음악 방송과 음악 산업은 원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새로 나온 음반을 홍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통로가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이었고, 헐값에 출연자를 섭외해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음악 산업의 창구 역할을 쇼 프로그램이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과 공짜라면 소도 잡아먹는 국민성의 ‘팀스피리트’ 공격이 음반 시장 초토화의 주된 원인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떤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준비 부족의 책임까지 덮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히트 상품이 나오면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보다는, 비슷한 상품을 만들어 2등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으로는 다른 문화 콘텐츠에 대해 비교 우위를 갖기 힘들었다.
노래가 안 되면 사람이라도 띄워?
백화점 담당자와 친하기만 하면 어떤 상품이든지 납품할 수 있었던 구조적인 문제가 핑계는 될 수 있다. 백 번 양보하더라도,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보다는 감에 의존하는 안이함과 더불어, 음악의 질적 성장보다는 어느 순간부터 노래가 안 되면 사람이라도 띄워놓고 보자는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접근 방법으로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면서 안목마저 함께 키워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음악을 소비하는 양태가 달라졌을 때 그것을 도둑 맞았다고 술 먹으면서 한탄하기보다는 이목을 끌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의 기획과 더불어 새로운 접근방법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세상의 변화 속도보다 반발짝 부족했다는 평가를 감히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서비스는 부족하고 상품조차 눈을 끌 수 없으면 손님은 줄기 마련이다. 시장의 논리란 그렇게 비정한 것이기 때문에 무섭고, 반면에 그래서 공평하다. 올해의 가수왕이 누가 되었는지를 보는 것이 보신각종보다도 더 한 해가 가고 옴을 느끼게 해주었던 때가 있었는 지 아득하다. 십 분의 한 도막으로 절단난 공중파 쇼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아직도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의 첫 번째가 음악을 듣는 것이라는 사실에서 희망의 빛을 찾는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고백 한마디. “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지만, 그들에게서 눈물 한 방울을 떨구어내는 것은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다.” 실패의 원인에 대한 ‘내 탓이오’가 하나둘 쌓여갈수록 예전의 음악의 황금시대는 곧 다시 돌아오리라 믿는다.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귀를 빼앗아가지 않는 한 음악은 영원하고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Show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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