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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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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도 배우도 모두 타짜!

등록 2006-09-30 00:00 수정 2020-05-03 04:24

연출과 연기마저 화투장 뒤집는 묘미를 보여주는 도박 범죄 영화 …조승우는 예상대로, 김혜수는 예상외로 호연… 아찔한 현기증 없는 웰메이드 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역시 최동훈 감독은 기술자다. 영화의 타짜다. 그의 영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영화에 대해 ‘빠꼼이’인지 보인다. 데뷔작 으로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범죄영화(라는 장르영화)의 기술자임을 확인시켰던 최동훈 감독은 두 번째 영화 에서도 장르 세공자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는 “파도를 그리듯” 긴장을 올렸다 늦췄다 하면서 흘러간다. 그리고 파도의 곡선은 포물선을 그리듯 서서히 상승해 정점에 닫는다. 관객은 정점에 도달해 영화의 깊이를 내려다보지만, 아찔한 높이는 아니다. 최동훈의 파도타기는 관객에게 은근한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아찔한 현기증을 안기지는 못한다. 는 욕망의 지옥을 그리지만, 처절한 지옥도를 보고 나면 기어오르는 처연한 울렁거림은 없다. 세련된 연출가가 만들고 능숙한 출연진이 나오는 쇼를 보고 나면 남는 즐거움과 허무함, 그것이 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처럼 원작만화를 재구성

는 허영만의 만화 중 1부 ‘지리산의 작두’를 원작으로 삼았다. 영화 는 만화 의 재구성이다. 먼저 시대를 원작의 1960년대에서 90년대로 옮겨온다. 배경을 바꾸면서 캐릭터는 살리고 이야기는 변주했다. 공장에서 일하던 청년 고니(조승우)는 우연히 노름판에 끼면서 누나의 위자료까지 날린다. 그는 자신을 속인 타짜들을 찾아나섰다가 진정한 고수인 평 경장(백윤식)을 만난다. 고수는 고수를 만들고, 고니는 타짜로 거듭난다. 고니는 잃어버린 돈의 다섯 배만 벌면 도박을 끊겠다고 다짐하지만, 다섯 배를 벌고도 도저히 자신의 손가락을 끊지 못한다. 평 경장이 고니를 떠나자 정 마담이 다가온다. 김혜수가 연기하는 정 마담은 매력적인 도박판의 설계자다. 정 마담은 고니를 가지고 싶어하지만 가지지 못한다. 고니는 평 경장이 기차에서 살해당했음을 알고 스승을 죽인 놈을 찾아 복수에 나선다. 고니의 복수극에는 서민형 타짜인 고광렬(유해진)이 동행한다. 고니는 길에서 사랑도 만난다. 화란(이수경)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고니는 마침내 스승의 살해범으로 생각되는 죽음의 타짜, 아귀(김윤석)를 만나 죽음의 도박을 벌인다. 그리고 인생길을 빗댄 도박판의 마지막에 남는 한마디, “이 바닥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최동훈 감독은 영상의 기술자이자 이야기의 재주꾼일 뿐 아니라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는 능력을 가진 연출자다. 에서 박신양의 연기가 한 단계 도약했다면, 에서 조승우의 연기는 두 단계 비약한다. 조승우는 표정과 몸짓뿐 아니라 목소리의 색깔로도 캐릭터를 표현하는 영민함을 보여준다. 조승우는 원래의 목소리에 슬쩍 비음을 섞어서 고니의 목소리를 만들었다. 가벼움 속에 영민함이 깃든 고니의 목소리는 고니의 캐릭터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또 조승우는 자신의 매력을 고니의 표정으로 적절히 변주한다. 영리함은 영악함으로, 순수함은 용감함으로, 가벼움은 평범함으로, 천진함은 포용력으로, 자신의 카드를 적절히 활용해 고니의 매력을 최대로 만든다. 그의 연기는 손에 든 광은 없어도, 손에 쥔 패를 적절히 활용해 최고의 점수를 만드는 타짜의 솜씨 같다(오광을 들고도 점수를 못 내는 배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누구보다 로 점수를 많이 딸 사람은 김혜수다. 조승우가 의 전작들에서도 차근차근 점수를 쌓아왔다면, 의 전작들에서 점수를 잃어온 김혜수는 로 단번에 판을 뒤집을 기세다. 김혜수가 ‘심지어’ 코맹맹이 소리까지 섞어가면서 정 마담을 연기하지만, 뜻밖에 김혜수의 캐릭터를 짓눌러오던 자연인 김혜수의 무게는 지워진다. 김혜수는 가벼운 몸으로 스크린을 마음껏 유영한다. 최동훈 감독은 김혜수의 매력에 대해 “여우의 탈을 쓴 양” “아주 차가운 듯하지만 저 밑은 아주 따뜻하다”고 표현했다.

최동훈이 읽어낸 김혜수의 매력은, 물욕을 버리지 못하지만 애정도 떨치지 못하는 가련한 팜므파탈, 정 마담을 만나서 마침내 만개한다. 지금껏 김혜수에게는 (장르를 불문하고) 하나의 얼굴밖에 없었지만, 의 정 마담에게는 최소한 두 개의 얼굴이 보인다. 정 마담은 아니 김혜수는 천박한 대사로 연민의 감정을 불러내고, 차가운 표정으로 가린 아픈 내면을 드러낸다. 고광렬을 연기하는 유해진은 예의 그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예의 그 화들짝 웃음을 선사한다. 이토록 뻔한데 역시나 웃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백윤식은 백윤식다운 연기를 보여준다.

“상상력이 많으면 고달퍼져”

어쨌든 는 인생에 대한 영화다. 화투장 뒤집듯 인생의 의미를 뒤집어 보이는 의 대사는 관객의 뒤통수를 아프지 않게 때린다. “지독한 우연” 운운하는 정 마담의 사설도 귓전에 박히고, 그의 “화투는 꽃을 가지고 하는 싸움”이라는 풀이도 듣고 보면 새삼스럽다. “타짜의 첫 자세는 야수성”이라는 평 경장의 가르침도 인생의 단면을 드러내고, 악귀 같은 아귀가 내뱉는 “상상력이 많으면 고달파져”라는 충고도 절묘하다. 이렇게 어떤 대사는 기억나고, 화면의 박진감은 떠오르는데, 영화를 아우르는 하나의 느낌은 남지 않는다. 그냥 잘 봤다, 그것만 남는다. ‘웰 메이드’ 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어쨌든 2006년 한가위는 풍성하다. 에 까지, 을 보장한다. 는 9월28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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