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을 두드리는 천연의 넌버벌 퍼포먼스 … 대안문화센터 ‘하자’에 뿌리둔 생태주의 음악집단의 재활용 놀이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판타지 퍼포먼스 를 기획한 김종휘씨가 “작품을 통해 얻은 감동이 자기 생활로 전이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한판 ‘쇼’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운 공연일 것이란 선입견이 작용한 때문이었다.
공연장 입구에 설치된 ‘재활용 악기’를 보았을 때도 ‘전시용’이겠거니 했다. 실제로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랬다. 그런데 70분의 공연이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경이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 아이 구별 없이 구경거리쯤으로 여겼던 재활용 악기의 ‘연주자’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를 통한 일상의 작은 변화를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노리단은 학교이면서 벤처기업”
대체로 공연이 주목받으려면 스타 배우가 출연하거나 화려한 스펙터클을 준비해야 한다. 좀처럼 새로운 얼굴이나 무대로 승부하지 않고 한결같이 정형화된 성공법칙을 따른다. 그래야만 관객에게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견줘 스타 배우와 자본의 힘이 끼어들 여지를 찾기 어려운 . 오로지 새로움만을 내뿜으며 ‘소통’을 추구한다. 넌버벌 퍼포먼스 와 점프>를 연출한 최철기 프로듀서의 말대로 는 “어떤 장르나 특성으로 규정하기 힘든 흐름 속에서, 관객이 보고 느끼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게 하는 뭔가”가 있을 뿐이다. ‘위트’와 ‘비트’를 극적으로 엮어내는 새로운 공연 양식이라 하겠다.
이미 넌버벌 퍼포먼스의 효시로 꼽히는 의 양식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넌버벌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요리를 들려주고, 깨달음을 풀어내면서 관객몰이에 성공한 공연이 적지 않았다. 여전히 신선한 기획과 강렬한 자극을 준비하기도 한다. 쇼를 상품화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여기에서 극장 안과 밖의 괴리는 깊어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는 새롭게 다가온다. 재활용 악기를 재배치한 무대에 드러나지 않는 뭔가로 관객과의 소통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눈요깃거리나 자극적인 음향을 대신하는 색다른 에너지가 공연 내내 무대에 흐른다. 에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배우와 관객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의 시작과 끝은 생태주의 뮤직 퍼포먼스 그룹 ‘노리단’(Noridan)을 향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 저성장과 고실업의 그늘에 있던 청소년들의 미래 탐색을 도우려는 취지로 탄생한 대안문화센터 ‘하자’(Haja)에 뿌리를 둔 노리단은 사회적 활력과 지속 가능한 즐거움을 디자인하는 공연단이다. 지난 2004년 6월 ‘재활용상상놀이단 어제 생긴 예술’로 출발해 ‘재활용+상상놀이단’을 거쳐 노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소통하는 퍼포먼스로서의 음악을 추구하는 것은 여전하다. 산업 폐자재를 재해석해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며 날것 그대로의 소리와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동안 노리단은 리듬과 그루브가 있는 ‘비트’를 위주로 공연했다. 노리단에 속한 30여 명의 단원들은 멀티 플레이형 문화작업자로서 아침에는 악기를 만드는 장인으로, 낮에는 생태주의 놀이 교사로, 밤에는 공연하는 배우로 지낸다. 의 무대를 장식한 자동차 휠과 주름 잡힌 파이프, 화공약품통 등의 재활용 악기도 노리단원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노리단 창단 멤버로 에서 피트비트로 출연하는 배우 김희영씨는 “노리단은 학교이면서 벤처기업이고 공동체”라며 이렇게 말한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직업을 체험하고 삶을 설계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서 통합적 인생의 주춧돌을 쌓는 셈이다.”
노리단원과 전문배우를 구별하지 말라
그야말로 일과 삶, 꿈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가는 노리단. 여기에서 더불어 꿈을 일구는 사람들의 세대 구분이 있을 리 없다. 에서 드라마 속의 소년 힘찬으로 분한 주힘찬(10)군은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초등과정에 다니고,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엄마와 함께 노리단 오디션을 통과한 모녀 단원도 있다. 김희영씨는 “노리단에선 초보 단원이라 해서 공연장 뒤편을 서성대지 않는다. 설령 악기 연주를 배우지 않았다 해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주를 하면 된다”고 말한다. 누구나 음악성이 있기에 즉흥 연주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리단의 강렬한 비트를 체험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직한’ 기대도 있다.
이렇게 노리단은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대안의 공연예술을 실현하려고 한다. 노리단이 를 통해 실내 공연장에 들어온 것도 ‘뜻밖의 행로’는 아니다. 노리단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안석희씨는 “또 다른 길이 하나 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노리단원으로 함께하는 사람들도 저마다 관심과 소질이 다르게 마련이다. 를 통해 배우로서 집중점을 살릴 수 있고, 전문적인 무대 스태프의 길을 엿볼 수도 있다. 실내 공연을 통해 관객을 만나는 폭넓은 방식을 배울 수도 있다.” 이것은 노리단의 가능성이면서 고민이기도 했다. 재활용 악기 연주가 강력한 스토리라인과 만나 드라마 속에 스며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모든 음악은 소통의 퍼포먼스’라는 노리단의 슬로건에서 나왔다. 넌버벌 퍼포먼스계에서 주목받는 최철기씨와 백원길씨가 객원 단원으로 들어와 이색적인 관객과의 소통을 꾀할 때 “자기 몸을 깨우는 과정”(김희영)을 거쳤을 뿐이다. 노리단에서 연기의 길을 모색한 ‘준비된 배우’들이 있었고 재활용 악기는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비주얼이 훌륭한 무대도구로 거듭났다. 무대 음향기기를 거친 악기 소리도 생태주의 놀이 특유의 강렬함이 거세되지 않았다. 자연스러움에 바탕한 생태주의 놀이 속에서 노리단원과 전문배우를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이들은 어디에 있든 소통하려는 욕구가 남다른 배우들이었다.
“노리단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놀이를 하려고 한다. 본성에 가로막혀 있는 것을 풀어내려는 것이다. 의 리듬은 말을 걸기 쉬운 음악적 구조다. 공연을 이어가면서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다”는 안석희씨의 말은 노리단의 미래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시각장애 소년의 바람을 소리와 몸짓 등에 담아낸 의 진화는 지속되리라. 오는 9월24일 마지막 공연을 할 때는 다른 색깔의 무대가 관객을 맞이할 것이다. 재활용 악기 공연과 워크숍을 하면서 서울 잠실 삼전복지관, 경기도 일산 감자꽃스튜디오 등지에 작은 노리단이 둥지를 틀었듯, 가 영국 에든버러 등지를 오가며 노리단의 생태지도를 지구촌 전역에 확장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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