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웨스트엔드산 에 흥분해보시라… 셰익스피어의 전통을 이어받은 명작들, 브로드웨이 쇼와 다른 맛 </font>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2004년은 줌마씨가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져든 해였다. 당시 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뮤지컬 (‘어머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의 대박 행진에 뒤늦게 합류해 엉덩이를 들썩일 때 열아홉 청춘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리고 40대 끄트머리에 뮤지컬 마니아가 되어 크고 작은 무대를 섭렵했다.
뮤지컬 극장가의 빅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투어 뮤지컬과 번안 뮤지컬 사이를 비집고 쑥쑥 자라는 창작 뮤지컬의 감동도 잊을 수 없다. 줌마씨는 때묻은 일상을 개운하게 빨래할 것을 권유하는 뮤지컬 의 ‘입소문꾼’ 노릇까지 했다. 2년여 동안의 무대 경험을 ‘빨래’에 쏟고 싶은 마음이었다.
등 22곡, 추억의 무늬
이제 줌마씨는 뮤지컬이라면 어디에서든 한마디쯤 거들 수 있다. 열혈 팬을 거느리고 있는 뮤지컬 배우의 연기에서 ‘옥에 티’를 찾아내 수다를 떨 정도가 되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어김없이 ‘쇼’적인 요소로 흥행 공식을 만든다는 것도 충분히 짐작하고, 프랑스 뮤지컬이라고 해서 철학적 무대와 탐미적 선율로만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를 통해 깨달았다. 아무리 영국 웨스트엔드 작품에 브로드웨이의 정서를 덧입혀도 특유의 드라마적 요소를 주무를 수는 없다. 그것이 줌마씨가 웨스트엔드산을 기다리는 이유였다. 셰익스피어의 전통을 이어받은 영국의 뮤지컬에는 미국적 쇼를 압도하는 드라마가 있었던 것이다.
요즘 줌마씨는 불볕 더위를 기다린다. 한여름 폭염을 잠재우고도 남을 웨스트엔드의 명작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올여름 공연가의 돌풍을 예고하는 웨스트엔드의 첫 작품은 2년 전의 감동을 재현할 뮤지컬 (6월18일~7월1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77-1987). 1999년 4월 영국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초연된 뒤 미국 브로드웨이를 강타하고 전세계로 열풍을 확산시킨 는 프로듀서 주디 크레이머의 이색적 발상으로 신화를 탄생시켰다. 만일 극작가 캐서린 존슨의 드라마가 없었다면 전설적 그룹 아바(ABBA)의 명곡도 장식적 요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줌마씨는 기억 저편에 있던 ‘7080의 추억’을 들춰낼 수 있었다. 가 총천연색 사진이라면 ‘7080 콘서트’는 흑백 사진에 가까웠다. 줌마씨는 창작 뮤지컬 를 통해서도 빛바랜 사진을 꺼내봤다. 하지만 풋풋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중년의 아쉬움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등 22곡에 담겨 있던 추억의 무늬가 그리웠다. “처음으로 뮤지컬의 맛을 알게 된 작품이라서 그런지 장면들이 잊히지 않아요. 3인조 여성밴드의 숨결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지난 3월 말 줌마씨는 서둘러 표를 예매했다. 올드팝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의 진화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해 는 ‘허니허니’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오르지만 변한 것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박해미, 이경미, 전수경의 3인조 밴드가 그대로 등장한다. 다만 의 주연을 맡았던 이태원이 박해미와 함께 도나 역을 맡아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도나의 딸 소피 역은 이정미가 맡았다. 소피가 결혼식에 초대하는 아빠 후보 역으로는 성기윤, 박지일, 이정열 등이 나온다. 이들은 줌마씨의 몰라보게 달라진 눈높이에 맞춰 추억의 강도를 높이려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첨단 3차원영상으로 헬리콥터 장면
월드컵의 밤을 의 원초적 환호로 준비할 줌마씨. 다시 (6월28일~8월20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02-518-7343)의 강렬한 감동에 빠져들어야만 한다. 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의 국내 초연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해마다 공연설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번안과 투어로 관객을 사로잡을 때에도 ‘미스 사이공’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번 움직이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만일 헬리콥터를 등장시키려면 적어도 1년 반 이상의 장기 공연을 해야 했다.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과 등으로 다섯 차례나 토니상을 받은 존 네이피어의 매혹적인 무대를 재현하는 데 따르는 ‘로열티’를 국내 제작팀이 감당할 수 없었다. 이런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 원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는 기획과 제작에 8년여를 투자한 끝에 ‘새로운 미스 사이공’(New Production)을 완성했다. 이번에 국내에 선보이는 작품은 2004년판 투어 버전. 기존의 음악과 스토리, 캐릭터 등을 그대로 하면서 무대세트를 새롭게 만들었다. 첨단 3차원(3D) 영상이 실물 크기의 헬리콥터 탈출 장면을 대신한다. 원작 못지않은 스펙터클을 보여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동안 줌마씨도 뮤지컬 마니아로부터 “ 제작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주판알을 튀기다 접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때마다 23개국 240개 도시가 부럽기만 했다. 헬리콥터를 3차원 영상으로, 캐딜락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해도 줌마씨에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푸치니의 오페라 의 현대 버전이 손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번 국내 공연에는 100억원가량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에 걸친 오디션 끝에 40여 명의 출연자를 뽑았다. 남자 주인공 크리스 역은 재미동포 마이클 리가, 여자 주인공 킴 역은 김보경과 김아선이 함께 맡는다.
팀 버튼과 매튜본의 만남이 궁금하다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에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줌마씨도 알고 있다. 작품별로 관객층이 따로 있다는 말을 귀동냥으로 들었던 것이다. 가 평범한 사람을 극장으로 부른다면 은 선별된 관객을 자극하는 식이다. 때로는 색다른 스타일로 새로운 관객을 부르기도 한다. 그런 느낌에 빠지고 싶은 줌마씨에게 댄스 뮤지컬 (7월19~30일, LG아트센터, 02-2005-0114)은 맞춤한 작품이었다. 웨스트엔드를 대표하는 남성 무용수에 의한 의 안무가 매튜 본의 작품이 아닌가. 파격이 돋보이는 천재 안무가 매튜 본과 할리우드의 악동 감독 팀 버튼의 만남에 매혹되는 게 당연했다.
실제로 매튜 본의 은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그냥 영화를 무대에 옮긴 게 아니었다. 영화 속 판타지가 무대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영화보다 신비로운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매튜 본 특유의 파격을 기대한 사람들에겐 모자란 게 적지 않았지만 새로운 지지자를 모으는 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 줌마씨처럼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일지라도 객석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 매튜 본의 위트 넘치는 상상력이 영화의 특수효과를 대신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이 명확한 때문이다. 대사 없이 음악과 움직임으로 가위손 에드워드를 만나는 것은 신비로운 경험일 것이다.
지금 월드컵보다 진한 감동이 무대에서 무르익어가고 있다. 웨스트엔드산 뮤지컬들은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지만 연극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다. 에서 아바의 음악이 감동으로 피어나고, 에서 3차원 영상이 심금을 울리는 이유도 드라마의 완성도에 있다. 도 몸짓 하나하나에 스토리를 담아 영화보다 더한 드라마를 느끼게 한다.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는 셰익스피어의 후예들의 작품임을 실감하게 한다. 또한 줌마씨가 반했던 의 매혹적 선율을 웨스트엔드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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