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형사 나도열> <달콤, 살벌한 연인>, 스타급 없는 영화의 흥행… 조연배우 이미지를 제대로 차용한 기획력과 캐릭터가 성공을 이끌어
▣ 정재혁 <씨네21> 기자
<흡혈형사 나도열>의 김수로, <구세주>의 최성국, 신이, <손님은 왕이다>의 성지루, 명계남, <달콤, 살벌한 연인>의 최강희, 박용우, 그리고 <공필두>의 이문식. 올 상반기 개봉한 한국 영화들에는 조연으로만 출연하던 배우들의 주연 캐스팅 현상이 눈에 띈다. 스타급 배우들이 주연을 독식하던 것에 비하면 매우 이채롭다. 흥행이 목적인 상업영화에서 스타 배우 캐스팅이란 중요한 요소인데 캐스팅 패러다임에 전환이라도 온 것일까?
흥행에서 중요한 건 배우의 특징
캐스팅, 이는 충무로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다. “모두 장동건 같은 배우와 작업하려고 한다. 하지만 장동건이 그 많은 영화를 다 찍을 순 없지 않은가.” <달콤, 살벌한 연인>의 마케팅을 담당했던 싸이더스FNH의 박아람씨는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으로 원래 조승우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영화들의 주연 캐스팅이 모두 차선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영화의 기획 의도가 주변부 사람들에 대한 얘기였다. 캐스팅도 A급 배우로 할 생각은 없었다.
조연배우 중에서 연기력이 좋은 사람을 찾았다. 성지루라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코믹한 이미지가 아닌 색다른 느낌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손님은 왕이다>의 마케팅을 담당했던 서은정 팀장은 캐스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영화의 특성이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스타급 배우들을 캐스팅해도 영화의 특성과 맞지 않는다면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코미디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마케팅을 했던 <흡혈형사 나도열>과 <구세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구세주>의 마케팅을 담당했던 AM시네마 정수미 실장은 <구세주>의 경우, 최성국과 신이의 코믹한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 그대로 사용됐기 때문에 처음부터 흥행을 기대했다고 한다. “최근 영화의 흥행 상황을 살펴보면, 흥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우의 티켓 파워가 아니라 배우의 특징이다. 최성국과 신이의 경우, 티켓 파워가 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코믹한 캐릭터가 영화와 잘 맞물리면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즉, 티켓 파워가 없는 배우는 영화의 특성으로, 캐릭터의 특징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징 있는 영화, 배우와 캐릭터 간의 조화. 대부분의 영화들은 이 두 가지 기준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배우를 캐스팅해왔다. 하지만 이것은 주연급 배우에만 해당된다. 조연급 배우까지는 아니었다. 박아람씨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배우다. 두 번째가 스토리, 마지막이 감독. 그러니 주연배우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제작사는 영화의 콘셉트로 배우를 캐스팅하려는 마인드가 있지만, 투자사의 경우는 스타급 배우들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연급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력, 특징과는 상관없이 만년 조연으로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영화들이 조연급 배우들을 주연으로 기용한 이유는 뭘까. 이는 최근 스타 배우들을 내세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사례와도 관련이 있다. 전지현, 임수정, 차태현 등 스타급 배우들이 총출동한 <새드무비>, 전지현, 정우성이 주연한 <데이지>, 강혜정, 조승우가 출연한 <도마뱀>, 차승원 주연의 <국경의 남쪽> 등은 스타급 배우를 주연으로 기용했음에도 흥행엔 실패한 작품들. 이제는 영화의 흥행이 스타 의존도가 아닌 영화 자체의 기획력과 더 큰 함수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은 최강희 아닌 미나를 본다
스타 배우의 티켓 파워에 대한 회의, 기획력의 상승. 최근 조연배우들의 주연 캐스팅 경향에는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 즉, 스타들의 흥행성 여부가 불투명하다면, 영화의 기획력을 잘 살려줄 조연배우들를 기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조연배우들이 그동안 많은 영화를 통해 탄탄한 연기력을 다져왔다는 사실과 맞물린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경우도 그러하다. 최강희, 박용우 주연의 이 영화는 개봉 11일 만에 전국 관객 120만 명을 기록했다. 영화의 순제작비가 10억원가량, 주연을 맡은 두 배우가 스타급 배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는 예상 밖의 결과다. 당시 마케팅을 담당했던 박아람씨는 이 영화의 성공은 배우와 영화의 절묘한 궁합에 있다고 설명한다. “최강희는 처음부터 주연으로 고려했던 배우다. 감독님 말씀에 따르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사람들이 욕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라고 했다. 박용우도 대사 전달력이나 기본 연기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캐스팅했다. 조연배우를 캐스팅할 때는 기존의 그 배우들이 가진 이미지와 영화를 통해 새롭게 부여할 이미지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이에 대해 서은정 팀장은 관객의 성향 변화를 언급한다. “예전과 달리 관객들은 이제 캐릭터를 본다. 사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경우, 관객들이 최강희와 박용우를 보러 갔다고 말할 순 없다. 그들은 영화 속 주인공인 미나와 대우를 보러 극장을 찾은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캐릭터로 승부하는 영화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2월 둘쨋주와 셋쨋주 박스오피스에선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흡혈형사 나도열>과 <구세주>가 1주씩 번갈아가며 1위를 차지한 것. 김수로가 원톱 주연으로 나선 <흡혈형사 나도열>은 개봉 1주일 만에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최성국과 신이가 주연 신고식을 치른 <구세주>는 개봉 11일 만에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넘었다. 두 영화는 모두 코믹 이미지가 강한 조연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워, 코미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으는 데 성공한 케이스. 정수미 팀장은 “김수로와 최성국, 신이의 특기가 영화 속에서 잘 살아나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즉, 영화 자체의 특성이 중요해지면서 이를 표현해줄 배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이를 조연배우들이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문식이 주연한 영화 <공필두>는 그의 코믹적인 요소를 그대로 차용했음에도 흥행에선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5월11일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첫 주 전국 관객 8만 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6위를 차지했다. 이는 코미디 영화에 대한 관객의 수요는 분명 배우의 이름과 상관없이 존재하지만, 이 수요가 꼭 조연배우들의 특징 있는 연기만으로 채워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어떤 배우의 어떤 연기든 그것이 식상하다면 관객은 언제든 그 영화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여자 캐릭터는 여전히 약해
만년 조연배우들이 주연배우 자리를 꿰차게 되면서 영화의 스펙트럼도 넓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최근 사례들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흡혈형사 나도열>이나 <구세주>, <공필두> 등은 흥행이 보장된 배우를 포기하는 대신, 흥행이 보장된 장르와 요소들을 사용했다. 코미디 장르와 조연배우들의 코믹적 캐릭터가 그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스타 중심의 캐스팅 전략을 취하는 영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은 또 다른 흥행성 위주의 편중 현상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 배우의 집중 현상도 마찬가지다. 위에 언급한 다섯 편의 영화에서 여자 배우는 최강희와 신이 정도가 고작이다. 특히 여자 캐릭터가 빈약한 충무로에서 눈에 띄는 조연 여배우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 결국 여자 배우 캐스팅에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캐스팅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충무로의 뜨거운 감자다. 톱스타를 캐스팅하기 위한 구애도 여전하다. 최근 조연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가 많이 개봉했다지만, 이를 충무로의 배우층이 두터워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제 영화는 배우 이외의 요소를 통해 다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고, 이러한 요소들은 실제 영화의 흥행과 캐스팅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영화들은 조연배우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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