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광주항쟁을 기록한 신복진씨의 사진집 <광주는 말한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신복진씨의 사진집 <광주는 말한다>(눈빛 펴냄)의 표지는 1980년 5월19일 광주의 어느 거리 풍경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도망가고 곤봉을 든 두 명의 군인이 쫓아가고 있다. 고함을 치는 한 군인의 겨드랑이에는 착검까지 된 M16 소총이 끼워져 있다. 이 사진은 국회 청문회에서 가해자들이 “5월19일에는 착검한 사실이 없다”고 한 증언을 반박하는 증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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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해준다. 이 사진은 추적자와 도망자의 머리 위에서 찍었다. 초점은 총을 둔 군인에 맞춰져 있다. 그러니까 맞은편 옥상 위로 숨어들어가 군인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망원렌즈로 찍었을 것이다. 촬영자가 거리에 내려올 수 없는 현실. 사진은 도망가는 학생뿐 아니라 사진기자조차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신복진씨는 광주항쟁 당시 <전남일보> 사진부장이었다. 그는 사선을 넘나들며 광주의 5월을 기록하고 필름을 항아리에 숨겼다. 검열에서 살아남은 필름들은 간헐적으로 매체에 보도되고, 마침내 광주의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2006년 5월 사진집으로 빛을 보았다. 그는 어떤 기억을 털어놓을까.
“몰래 찍다가 군인들이 쫓아오면 몇 집 담장을 넘어다녔지. 특수훈련한 사람들이라 도망가는 길이 보이면 그대로 잡히니까.” 그는 차분히 기억을 더듬어갔다. “군사정권 때 계엄들이 많이 있었지만 광주 관내 사단을 나와서 정문에 서 있는 정도였지. 그런데 공수부대가 와가지고 말도 못하게 막 쳐분디… 이야기가 안 돼, 이야기가 안 된다고.” 그제야 신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을 느낀다. “19일 아침에
1980년 5월22일 당시 국무총리가 “치안 부재 상태”라고 표현한 광주의 거리에도 그가 있었다. 단 한 번의 절도나 약탈도 없는 ‘치안 부재’의 감동을 기록했다. “시위에 쓰던 차량을 반납한다고 해서 자동차 공장에 갔더니 깔끔하게 정돈돼 있어. 정말정말 연출하라 그래도 그렇게 안 돼.”
신씨는 신문사에서 쫓겨난 뒤 1987년 광주의 6월 항쟁 때에도 현장에 있었다. 동료 사진기자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언젠가는 빛을 볼 자신의 사진을 위해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다. <광주는 말한다>는 참담한 비극의 기록이자 승리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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