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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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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가라사대] <일렉션>(1999) 중에서

등록 2006-05-18 00:00 수정 2020-05-03 04:24

▣ 김도훈 <씨네21> 기자

저에게 투표하세요. 저는 대학도 갈 생각이 없구요. 신경도 안 써요. 학생 대표가 되더라도 아무것도 안 할 거에요. 제가 약속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대표가 되면 학생 조직을 갈가리 찢어서 없애놓을 거라는 거예요. 그러면 누구도 학생 모임에 바보같이 앉아 있을 필요도 없을 거예요. 아니면… 저한테 투표하지 마세요! 누가 신경써요 이런 거. 아예 투표하지 마세요! <일렉션>(1999) 중에서

미국의 대중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2004년 5월호의 표지로 민주당 경선주자인 하워드 딘을 선택했다. 믹 재거, 보노, 브리트니 스피어스 대신 백발의 중년 정치가가 가판대에 앉아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롤링스톤>의 기자들은 조지 부시의 철학이 뭐라고 생각하느냐 물어보았고, 딘은 답했다.

“조지 부시의 철학은 이런 거죠. 당신이 부자라면,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당신이 가난하다면, 그럴 만해서 가난한 것이다.” <씨네21> 551호에 장문의 강금실 인터뷰가 실렸다. 나는 이것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한 잡지의 철학을 자연스레 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겨레>의 자식인 <씨네21>이 정치적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글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영화 잡지가 왜 선거를 앞둔 정치가를 인터뷰하느냐고, 문화를 다루는 매체는 순수하게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들 했다. 강금실을 했으니 오세훈도 하라고들 했다.

폐간된 영화 잡지 <키노>는 예전에 대권주자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고, <키노>를 보는 주 독자층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회창 후보의 대답에 <키노>의 독자들이 바라는 진정성은 없었다. <키노>의 인터뷰는 모든 후보를 대상으로 했기에 객관적인 인터뷰였을까. 물론 우리는 그것을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롤링스톤>은 앨 고어도 표지로 낸 적이 있다. 대권 직전의 일이었다. 그들은 중도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로만 가득한 전화번호부 책자를 만드는 기자가 아니었기에 정치적 취향을 훌륭하게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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