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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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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여럿인 여자를 만나다

등록 2006-05-18 00:00 수정 2020-05-03 04:24

여성 중심의 대안가족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가족의 탄생>… 연애와 결혼이라는 배타적 관계에 묶이지 않고 흘러넘치듯 사랑하리

▣ 황진미 영화평론가

‘가족’을 내세우는 드라마와 영화는 많다. 텔레비전의 일일 ‘홈드라마’와 명절 특집극의 대부분은 결혼을 둘러싼 양가의 갈등, 부부의 권태기,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부족, 형제간의 옥신각신, 노부모 모시기 등 ‘안 봐도 비디오’다. 수십 년간 갈등의 양상이 조금씩 변했지만, 결혼은 해야 하고, 자식은 부모가 잘 길러야 하고, 형제간엔 다투지 말아야 하고, 부모는 잘 모셔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에는 좀 다른 이야기들이 나온다. <우리 형> <사랑해 말순씨>처럼 부성 부재의 결손성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도 있고, <바람난 가족>처럼 기존의 가족이 해체되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결손성에 주목하는 것 역시, 결손이 아닌 상태, 즉 ‘정상 가족’에 대한 희구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의 반증이요, 가족의 해체를 의미심장하게 다루는 것도 ‘정상 가족’에 대한 신봉이 전제돼 있다.

피보다 진한 보살핌, ‘정상가족’이 뭔데?

그러나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가족을 이룬다는 정상 가족의 모델은 설명력과 규범력을 급속히 잃고 있다. 저출산·이혼율·단독가구 등의 증가로 정상 가족 모델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단위가 가족이 아닌 개인으로 재편됨으로써, 이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믿는다고 행복해질 것 같지도 않은 ‘허구’가 되어가고 있다. ‘가족의 붕괴’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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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족이라는 비빌 언덕도 없으면 어디서 위안을 얻겠느냐고? 맞다. 여기서 가족의 붕괴란 인간이 모두 혼자 살게 될 거란 뜻이 아니라, ‘현재의 이성애 혈연 중심의 가부장적 가족 개념의 폐기와 새로운 가족 개념의 창안’으로 적극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러면 대체 어떤 가족이 가능하단 말인가? <가족의 탄생>은 그 해답을 어렴풋이 보여준다.

영화는 세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두 편의 에피소드는 각각 두 남녀의 집안 내력에 관한 에피소드로, 세 번째 현재 연인의 에피소드와 만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미라(문소리)는 집 나갔다 돌아온 동생(엄태웅)과 그의 20살 연상녀 무신(고두심)을 가족으로 맞는다. 무신의 전남편의 전처의 어린 딸이 찾아오자 같이 키우자며 큰소리치던 남동생은 집을 나간다. 두 여자는 소녀를 키우며 함께 산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과부가 된 엄마가 여러 남자와 연애를 하자 집을 나온 선경(공효진)이 일본으로 뜨려 할 즈음, 엄마가 병들었단 말을 듣지만 다투기만 한다. 선경은 엄마가 죽자 엄마가 유부남 사이에서 낳은 어린 남동생을 키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채현(정유미)의 이타적인 성격에 경석(봉태규)은 견딜 수 없어한다. 티격태격 다투다가 도달한 그녀의 집에서 그는 그녀의 ‘엄마들’의 환대를 받는다. 위의 줄거리를 통해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추출해볼 수 있다.

첫째, 혈연이 아닌 보살핌이 중심이 된 관계이다. 둘째, 남성이 아닌 여성이 중심이 된 관계이다. 셋째, 배타적 관계가 아니라 확장된 관계이다. 미라, 무신, 채현은 직접적인 혈연 관계 없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 매개가 되었던 남동생과 전남편 등도 사라졌지만, 그녀들은 서로를 보살피며 정을 나눈다. 남자들은 있다가 죄다 사라진다. 허풍만 치던 동생은 상황이 불편해지자 집을 나가고, “너희 엄마를 사랑한다”며 정색하던 유부남도 엄마가 죽자 제 아들을 찾지 않는다. 경석은 오지랖 넓은 채현에게 자신과의 배타적 관계에 집중해달라며 이별을 고하지만, ‘엄마들’은 그를 “밥이나 먹고 가라”며 붙잡는다. 이 영화의 여자들은 연애와 결혼 같은 배타적인 이성관계를 상위에 두지 않는다. 미라는 동생과 다툰 김 사장과 더 만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웬 아줌마와 남의 아이를 키우며 산다. 선경의 엄마도 유부남에게 결혼이나 아이의 입적을 요구하지 않는다. 선경도 남자친구(류승범)가 있었지만, 그와의 헤어짐은 엄마와의 애증관계 속에 묻혀버리고, 엄마가 죽고 난 뒤 의붓동생을 키우며 결혼하지 않고 산다. 채현도 남자친구보다 주위 사람들을 더 챙기며, 화를 내는 남자친구에게 “헤픈 것이 나쁘냐?”고 묻는다. 남자친구와 틀어지자 선선히 엄마들을 찾는다. 미혼모가 되겠다던 영화 <싱글즈>에서 더 나아가, 내 자식도 아닌 아이들을 키워가며 결혼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들의 삶은 남성 중심적 시각으로 보기에 얼마나 위협적인가? <가족의 탄생>은 일찍이 영화 <다섯은 너무 많아>가 보여줬던 여성(대모)을 중심으로 한 대안가족의 개념을 더욱 현실적으로 제시하는 영화이다.

어제와 오늘이, 남과 내가 다르지 않던가

이 영화의 또 하나 놀라운 인식은 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영화 속 과거와 현재는 시계열적인 흐름을 지니지 않는다. 두 개의 에피소드와 세 번째 에피소드 사이에는 무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보는 동안 눈치를 챌 수 없을 만큼 동시대의 다른 사건들로 보인다. 영화 <사랑니>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간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도 있는 ‘잠재성의 시간’이요, 어떤 이의 과거는 다른 이의 현재일 수도 있는 ‘비인칭적’ 시간이다. 채현이 찾던 미아(迷兒)는 크레딧이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바로 어린 경석일 수도 있음이 드러난다. (어린) 경석은 사실 그녀의 (혹은 그녀로 대별되는) 넘치는 모성의 수혜자이다. 과거와 현재가,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강팔지고 성마른 ‘나의 삶’ ‘너의 삶’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흘러넘치듯 사랑하라.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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