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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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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한 녀석들, 청춘을 탕진하라

등록 2006-03-24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청춘영화 <스윙걸즈> <워터보이즈>무모한 모험을 어쩌다 치른 그 여름의 발랄함은 영원하리</font>

▣ 이다혜 <씨네21> 기자

청춘은,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영원한 이상향으로 존재한다. 신비롭고 성스러운, 이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영원히 변치 않는 시간으로. 그런데, 과연 그러했던가? 천만의 말씀. 청춘이 불타오르건 말건, 무더위에 온몸이 녹아내리건 말건 학기는 언제나 길었다. 보충수업은 영원히 지속될 것같이 지루했다. 이것이야말로 당신이 경험한 십대의 본질, 청춘의 정수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그립다. 되돌아가도, 그때와 똑같은 지리멸렬한 짓으로 청춘을 낭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왜 청춘의 시간이 영원한 그리움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두 편의 영화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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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보이즈>와 <스윙걸즈>로. 그는 엉거주춤한 청춘의 빛나는 한때를 절묘하게 포착해, 미화하는 대신 희화화했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이 아닌 무모함, 발랄함, 모험심이라는 청춘의 트라이앵글이, 야구치 시노부가 가진 무기이다.

낙제 소녀 빅밴드, 오합지졸 수중발레

낙제 소녀들이 빅밴드 재즈에 도전한다. <스윙걸즈>는 색소폰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끌어내는 건 고사하고, 불어서 소리를 내는 것조차 요령부득인 막무가내 소녀들이 최신 댄스곡 안무 연습도 아닌, 조부모 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빅밴드 재즈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다룬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젊음의 패기로? 음악에의 열정 때문에? 오로지 여름 보충학습을 피하기 위해서다. 소녀들이 합주부가 놓고 간 도시락을 전해준답시고 무더위 속에 도시락들을 들고 마냥 헤매지만 않았어도, 합주부가 그 도시락을 먹고 집단 식중독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합주부의 천덕꾸러기였던 소년과 열세 명의 낙제소녀들은 특별한 의지나 야망 없이 음악에 발을 들이지만, 공교롭게도 합주부는 너무 빨리 학교로 돌아온다. 낙동강 오리알 처지가 된 소녀들은 어느새 자신들이 음악을 정말 즐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의 힘으로 빅밴드 재즈를 연습한다.

<워터보이즈>의 소년들도 우왕좌왕 오합지졸이기는 마찬가지다. 인원 부족으로 해체 위기에 처한 수영부에 미모의 여교사 사쿠마가 부임한다. 남학생들은 미모의 여교사에게 수영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벌떼처럼 모여들지만, 선생의 주력 종목은 알고 보니 수중발레. 얼결에 남은 소년 몇 명은 친구들에게 멍청이 군단이라는 놀림만 받는다. 그나마 위안이 되어준 미모의 교사가 출산 휴가를 떠나고 학교 풀장 사용마저 불가능해지자, 소년들은 돌고래 조련사를 찾아가 수중발레를 배운다.

“영화에서 보면 재즈도 그렇고 수중발레도 그렇고 아이들이 찾으려고 찾은 게 아니다. 그냥 나타나서 ‘뭐야? 뭐야?’ 하고 시작하게 되는 거다. 얼떨결에 끌려갔다가 점점 즐기게 되는 그 과정이 재밌지 않은가”라는 야구치 시노부의 말이 아니어도, 그의 두 청춘물에서 그린 소년, 소녀들은 욕망 없음, 야망 없음의 현현과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연애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젊음을 누리고 탕진하는 것 이상의 목표는 없는 것처럼 무료하고 무력한 모습의 아이들은, 여타 청춘영화의 주인공들보다 훨씬 우유부단하고 대책 없이 방황한다. 하찮은 인물들이 기이한 동기로 일탈을 시도한다는 설정은 두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다. 다만 그들은 정말 ‘해낸다’. 수중발레 공연을 신나게 해 보이고, 스윙 연주로 기립박수를 받는다. 천재적인 재능의 발로가 아니라 즐거움이 낳은 열정이 비범함으로 이어진다.

“나는 아다치 미쓰루의 것과 같은, 완벽하고 재능 있는 캐릭터들을 만들어낼 수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폐를 끼치는 인물을 만드는 게 내 특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한 인물보다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좋다. 그런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야말로 정말 멋있는 거라 생각한다”라는 야구치 시노부의 설명은, 그가 영웅이 필요하지 않은, 다 함께 웃으며 즐기는 청춘군상의 앙상블에 애정을 갖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능숙하지 못한 일에 덤벼든 결과로 겪는 당황스러움과 짜증을 포함한 모든 것이 즐거움이다. 반짝거리는 모든 순간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고, 일견 소모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순간들에 있다. 비생산적인 도전이란 얼마나 멋진 것인가. 즐거움만을 위해 오롯이 바친 시간은 얼마나 기적적인 추억으로 남게 되는가를 야구치 시노부는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엉뚱하고 공상만화적으로 보이는 두 영화의 설정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취재로 얻은 결과이다. <워터보이즈>는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14년째 축제 프로그램으로 남성 수중발레를 선보여왔다는 실화에서, <스윙걸즈>는 20명도 넘는 여고생 빅밴드가 스윙을 연주하는 모습을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다.

초짜 배우 발탁한 감독도 무모하네~

한두 명도 아닌 열 명도 넘는 어린 배우들이 각자의 성격과 방식으로 좌충우돌하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진 데는 야구치 시노부 자신의 무모함도 한몫했다. <워터보이즈>를 찍을 때, 야구치 시노부는 200명 정도의 소년들을 오디션해서 28명의 수중발레단원을 선발한 뒤 1개월 동안 합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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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은 다들 잘했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소년들은 수중발레가 처음이었고, 고생을 많이 했다. 어찌나 매일같이 부상자가 생기던지, 감독이 매일 병원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제작비의 대부분을 병원비에 썼다는 말이 농담이 아닐 정도였다. <스윙걸즈> 때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는 1천 명이 넘는 소녀들을 오디션했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는 말을 하는 게 당연해 보일 정도다. 그는 머릿속에 다섯 주인공의 캐릭터를 분명히 정해두었기 때문에 이미지에 맞는 소녀를 찾아야 했고, 요행히 걸맞은 소녀를 찾았다 해도 그녀들이 악기까지 다루는 행운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야구치 시노부는 캐릭터를 살리고 악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영화를 찍는 동안, 야구치 시노부는 색소폰이나 트럼펫을 잡아본 적도 없는 아이들을 진짜 스윙 재즈 연주자로 만들었고, 수영 실력과 각선미를 보고 뽑은 소년들을 진짜 수중발레쇼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두 영화에서 아이들을 이끄는 대머리 아저씨 다케나카 나오토는 어쩌면 야구치 시노부 자신을 대변하는 인물일지 모른다. 돌고래 조련사면서 소년들에게 수중발레를 가르치고, 악기를 다룰 줄 모르면서 급하게 레슨 받은 지식으로 소녀들에게 재즈를 가르치는 인물. 아이들보다 더 천진하고 대책 없지만, 청춘의 열망을 느낄 줄 아는 순수함이 남아 있는. 운명은 인육의 맛을 아는 호랑이처럼 주인을 노리지만,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교실 밖에 즐거움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차고 차여도,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소년, 소녀들에게는 몇 번이고 여름이 올 것이다. 탕진해도 쇠할 줄 모르는 뜨거운 계절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그 계절을 반짝이게 묘사하는 것은, 야구치 시노부가 그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고, 여전히 그 계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는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여름으로 나 있는 문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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