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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행제로, 슛돌이보다 대략난감

등록 2006-03-03 00:00 수정 2020-05-03 04:24

<해피 선데이> 최민수의 불량학생 길들이기 쇼에 넘치는 긴장감의 실체는?
금방 착해질 수도 없고, 막나갈 수도 없고, 사부 최민수는 독특하고…

▣ 강명석 대중문화 평론가

한국방송 <해피 선데이>의 ‘날아라 슛돌이’는 참 신기한 프로그램이다. ‘날아라 슛돌이’의 제작진은 아이들에게 텔레비전 촬영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축구 시합과 시합 뒤의 놀이 시간을 제외하면 아이들 각각을 쫓아다니며 그들의 사생활을 보여준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제작진은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축구 교육도 잘 시키지 않고, 한 팀으로 뭉쳐 이기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조차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정신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아이들은 축구 시합 도중 서로 스로잉을 하겠다고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FC 슛돌이’의 가장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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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돌이의 첫승, 시청자도 감격하다

‘날아라 슛돌이’는 캐릭터의 자유도를 극대화한 리얼리티 쇼다. 아이들은 자신이 방송에 출연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니 평소 모습대로 행동하고, 그것은 어떤 인위적 가공 없이 아이들의 캐릭터를 만든다. 그중엔 얼짱도 있고, 응석받이도 있고, 아이답지 않게 ‘누나 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카리스마 캐릭터도 있다. 캐릭터가 뚜렷해지니 시청자들은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캐릭터들은 그 기대에 부응하듯 수많은 사건들을 벌인다. 때론 싸울 수도 있고, 유일한 여자 멤버 지우가 남자 멤버 중 한 명을 좋아하기도 한다. ‘날아라 슛돌이’는 다양한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하나의 드라마이고, 아이들 역시 서로의 캐릭터를 알게 되면서 친해질수록 축구를 구심점으로 한 공동체가 된다. 공동체 의식이 생기자 공동체가 합심해 만들어내는 결과(승리)를 원하게 되고, 자연스레 점점 축구팀의 모습을 갖춘다. 승리를 위해 아이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모이면서 승리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들은 한 팀이지만 모두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그들이 승리를 위해 하나가 되는 모습은 아이들의 축구 경기를 월드컵 못지않은 긴장감 가득한 무대로 만든다. FC 슛돌이가 첫승을 거두기 위해 늘 믿음직한 플레이를 보여주는 ‘미드필더’ 민호의 ‘킬 패스’가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뚫고 질주하는 ‘스트라이커’ 태훈이에게 가고, 그것이 골이 연결되는 순간의 희열은 마치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서태웅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는 그 순간처럼 짜릿하다. 그만큼 캐릭터의 이야기가 시청자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날아라 슛돌이’는 리얼리티 쇼가 출연자의 ‘진짜’ 캐릭터를 보여줄 때 재미도 극대화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반면 같은 프로그램의 ‘품행제로’는 제작진이 최대한 출연진들에게 영향을 끼치려 한다. 아이들의 캐릭터를 싸움 잘하는 애, 모든 게 귀찮은 애, 공부 못하는 애 등으로 나눠주고, 최민수가 이들을 바로잡아준다는 설정으로 프로그램을 끌고 간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수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작진들은 의도대로 아이들이 최민수를 통해 조금씩 달라지길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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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들의 성품이 몇 번의 이벤트로 쉽게 바뀌긴 어렵다. 게다가 최민수는 돌출 발언으로도 유명한 배우다. 그만큼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최민수가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설정은 이 프로그램의 키포인트다. 최민수가 이 아이들을 교화하는 방법은 특유의 카리스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벌써부터 아이들에게 얼음물에 뛰어들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는 지나친 남성성과 최민수의 독특한 화법 때문에 여러 오락 프로그램에서 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최민수와 아이들이 한없이 심각하다 해도, 정작 시청자들은 최민수가 얼마나 ‘독특한 세계’를 가진 캐릭터인지 확인하며 키득거릴 수도 있고, 때론 최민수가 ‘무너지는’ 모습에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해피엔딩을?’ 리얼리티 쇼의 한국화

‘품행제로’는 기존의 리얼리티 쇼보다 훨씬 긴장감 넘치는 캐릭터와의 관계 위에서 출발한다. 축구 경기의 그 순간마저 즐겁게 볼 수 있는 ‘날아라 슛돌이’와 달리 처음부터 리얼리티 쇼만의 긴장감이 프로그램을 지배한다. 이는 ‘품행제로’의 장점이자 딜레마다. 미국의 리얼리티 쇼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캐릭터의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리얼리티 쇼는 늘 어떤 선을 지켜야 한다. 캐릭터가 정말 인간 말종이라든가, 캐릭터 간의 경쟁 때문에 일어나서는 안 될 어떤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한국 시청자는 갈등이 극단적으로 폭발하는 것을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리얼리티 쇼는 어떤 설정을 도입하건 캐릭터를 결국 ‘착하게’ 만들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출연자들끼리 늘 우정을 과시하고, 어느 선까지 통과한 출연자들은 모두 연예인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착해지느냐 마느냐가 과제인 ‘품행제로’는 그럴 수 없다. 아이들이 착해지는 순간 프로그램은 진행할 목적을 상실한다. 그렇다고 막나갈 수도 없다. 아이들을 착한 캐릭터로 만들지 않고, 해피엔딩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게다가 시청자의 반감까지 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날아라 슛돌이’는 아이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어른들이었다면 심각할 수도 있던 경쟁의 이야기가 아이들로 인해 가볍게 볼 수 있는 쇼가 됐다. ‘품행제로’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프로그램의 특징을 한국인의 감성에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해피 선데이>의 두 프로그램은 어쩌면 리얼리티 쇼가 어떤 방식으로 한국화되는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또 다른 리얼리티 쇼일지도 모른다. 재미도 있고 유익하면서도 ‘리얼’을 놓치지 않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을 달성하는 리얼리티 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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