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6월 청계광장에 들어설 높이 21m의 스프링 공공조형물을 둘러싼 논란
일부 미술인들 “일방적인 작가 선정과 작품의 상징성에 문제있다” 반발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경기도 양주군 송파유원지 인근에 있는 조형작가 배진환(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씨의 작업장은 첨단기계 설비들이 빼곡하다. 스웨덴 출신의 미술작가 클라에스 올덴버그와 부인 쿠제 브루겐이 공동으로 시안을 내놓은 작품 <스프링>(Spring)을 제작할 장비들이다. 이 작품은 청계천의 상징 조형물로 오는 6월 말 청계광장에 세워질 예정이다. 애당초 국내 설치를 맡으려 했던 배씨는 올덴버그 부부가 비용 문제로 미국 제작에 난색을 표명해 국내 제작자로 ‘낙점’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올덴버그 쪽에서 파견한 전문가 3명이 작업실을 방문하고 직접 올덴버그와 쿠제 부부를 면담한 뒤에 이뤄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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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34억원, KT가 전액 부담
“만일 미국에서 제작하려면 운송비 10억원을 포함해 70억원이 소요된다. 게다가 국내에서처럼 빠르게 일을 진행하기도 어렵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해머링맨> 같은 대형 구조물 작업 경험이 있는 우리 팀을 주목한 것으로 안다.” 배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인 스프링 제작에 나서면서 기술력을 테스트받기도 했다. 무려 무게가 28t(높이 21m, 지름 6m)이나 되는 대형 구조물에는 1㎡의 알루미늄 주물이 200여 장 들어간다. 올덴버그와 쿠제 부부의 시안에 따라 마이스(MICE)사가 작성한 스프링 설계도를 바탕으로 시제품을 만들어 보낸 뒤 배씨를 비롯한 제작팀은 컴퓨터수치제어시스템(CNC) 활용 등에 관련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렇게 청계광장에서 서울의 ‘랜드마크’ 구실을 할 것이라는 스프링 제작은 순조롭게 이뤄지는 듯하다. 아직 마이스사가 설계도를 모두 보내온 것은 아니다. 이들은 배씨 팀이 질의를 해도 느긋하게 답변을 보내 배씨 팀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선형의 다슬기(인도양 조개라고 함) 형상의 구조물이 오는 6월 청계광장에 들어서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배씨의 작업장에서 두께가 4cm를 자유자재로 휠 수 있는 기계 제작도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CNC를 이용한 알루미늄 정밀 주조로 외피를 만들면 골조를 세우고 색깔을 입힌 뒤 조명을 설치하면 된다. 그야말로 ‘화룡정점’만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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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올덴버그와 쿠제 부부의 스프링은 청계광장에서 서울의 랜드마크 구실을 할 것인가. 적어도 서울시에서 청계천 상징 조형물 선정과 제작 등의 업무를 위임받은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유인촌)은 6월 말 완성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이미 작품을 제작하는 단계에 들어간 상황에서 이를 뒤엎을 만한 절차상의 하자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해 12월22일 올덴버그와 쿠제 부부의 시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인촌 대표이사는 “작품 선정 과정에 논란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고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예술작품을 세우는 데 꼭 그런(공론화) 과정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올덴버그와 쿠제 부부의 청계천 상징 조형물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KT가 작품 제작비 일체를 부담하기로 했다지만 340만달러(약 34억원)라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공공 조형물을 설치하면서 ‘시민 합의’라는 기본적인 절차조차 무시한 때문이다. 박삼철 미술인회의 공공미술위원장은 “청계천의 문화생태적 공공성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미술계 인사들이 지난해 3월 서울시에 공론화 과정을 거쳐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서울시는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검토하겠다(재단 쪽은 ‘할 수도’라고 밝힘)고 했는데 느닷없이 지난해 11월 작품 선정을 기정사실화했다.”
청계천에 와보지도 않고 시안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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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올덴버그와 쿠제 부부가 작가로 선정되기까지의 과정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문화재단의 발표대로 “서울시 정책회의에서 세계적 작가에게 맡기기로 결정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작가를 추천받았다”는 게 전부다. 시립미술관에서는 일부 학예연구사들의 의견을 모아 3명의 작가를 선정하면서 올덴버그를 제1후보로 추천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시립미술관은 작가 선정의 들러리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시립미술관의 한 관계자는 “2004년에 큐레이터로부터 의견을 들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선정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양윤재 부시장이 별도 채널을 이용해 작가 선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에서 서울시 정책회의는 공공미술에 관련된 공론화의 방패막이 구실을 했다. 공론화 대상이 창작 예술품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공개 토론을 거치지 않고, 제1후보의 작품 시안을 받은 뒤 관련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건축물 미술작품을 심의하던 서울시 미술장식품분과위원회가 최초로 공공미술 조형물에 설치 적합 판정을 내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술인회의 성완경 대표(인하대 교수)는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거대한 규모의 한국적 쓰레기를 양산하는 형국이다. 공공의 논의를 배제한 채 기업미술이 시장을 지배하면서 특정 공간에 작품을 풍덩 떨어뜨리는 ‘프로프(prop) 아트’만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청계천 조형물 선정 과정은 공공미술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여기에서 국내외 경쟁을 거치고 장소의 시공간 의미를 반영하며 작품과 예산을 관리하는 큐레이터십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에서 과정이 노출되면 불필요한 논란에 휩싸여 청계천을 장식하는 작업이 더디게 이뤄졌을 것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계천 조형물이 좋은 작품 하나 사서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미 1999년 포항제철이 21억원을 들여 포스코센터에 설치한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이 겪은 순탄치 않은 운명을 떠올린다면 청계천 조형물 설치는 공공미술의 뿌리를 세우는 작업으로 자리매김되는 게 옳았다.
더욱이 올덴버그와 쿠제 부부는 스프링 시안을 내놓기까지 한 번도 청계천을 방문하지 않았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제공한 사진과 동영상, 문건 등의 자료를 참고하고, 1997년 서울을 방문해 박물관 등지를 살핀 경험을 반영했다고 알려졌다. 올덴버그는 작품 제작을 맡은 배진환씨를 만나 “인도양 조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그것을 창조적으로 서울의 이미지에 연결했다”고 작품 배경을 설명했다. 예컨대 스프링의 내부 꼭대기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붉고 푸른 리본은 한복의 옷고름에서 떠올린 것으로, 한국 생명공학의 발전을 연상해 DNA 사슬처럼 엮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스프링에서 역사·문화적 성찰을 엿보기는 어렵다. 대신 소통이 없고 관계를 도외시한 국적 불명의 작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성완경 대표는 “이명박표 코포레이트 다이너미즘(기업경영식 역동적 행정)이 우리 공공미술을 영원히 이류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설익은 국제주의에서 비롯된 아류 문화의 대명사로 여길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미술재단에서 청계천 조형물 작업을 진행한 김홍남 홍보팀장은 “애당초 올덴버그에게 맡기는 것을 전제로 절차를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초만 해도 청계천 조형물을 둘러싼 논란이 심각하지 않아 실무적인 작업을 진행했다. 지금에 와서 모든 것을 뒤집을 수도 없지 않은가”라고 밝혔다.
정말로 청계천 조형물 제작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일까.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을 찾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미 올덴버그와 쿠제 부부에 작가료로 60만달러, 설계사인 마이스사에 78만달러, 국내 제작팀에 202만달러의 계약이 집행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작품을 만들어 제작비를 부담하는 KT에 넘기는 방안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4일 민주화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청계천 복원과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위한 연속 심포지엄’에서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황평우 위원장은 “청계천의 진짜 복원을 위해 삼청천과 중학천이 태평로로 이어지는 청계광장을 상류 복원의 시발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술인 회의’ 반발, 돌이킬 수 없는가
이 제안은 청계천 프로젝트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해 10월1일 화려하게 등장한 청계천은 수평으로 누운 ‘인공분수’라는 오명 속에서 분리와 단절을 위한 장치만 늘어서 있다. 여기에다 시민의 문화적 권리마저 인정하지 않고 조형물이 들어선다면 도시생태적 청계천의 물줄기는 영원히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라도 문화적 공론의 장을 마련하라”는 미술계 안팎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설령 올덴버그와 쿠제 부부의 스프링이 청계광장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해도 시민 합의는 필요하다. 그래야만 ‘이명박표 스프링’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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