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진지한 감정은 사라지고 표피적인 사랑 놀음만 난무하는 <하늘이시여>
‘뭐 먹을까’ 스토리로 얻은 시청률을 ‘참’으로 보긴 어렵네</font>
▣ 강명석/ 대중문화 평론가
SBS <하늘이시여>의 젊은 여자들은 어딘가 이상하다. 예리(왕빛나)는 사촌언니 자경(윤정희)을 좋아하는 왕모(이태곤)와 사귀려고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황당하다. 그는 왕모의 동생 슬아(이수경)와 짜고 왕모와 식사를 하고, 구두를 잃어버렸다는 핑계로 왕모에게 업히려 하고, 그 상상을 하며 즐거워한다. 20대 중반의 방송사 아나운서가 말이다. 예리의 사촌오빠 청하(조연우)를 좋아하는 슬아 역시 예리의 집에서 자며 도둑이 들어와 청하가 겁에 질린 자신을 안아주는 상상을 한다. 자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친구 오피스텔을 빌려 왕모와 더 깊은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 조금 더 ‘알 거 아는’ 여자지만, 그 역시 노래방에서 나나 무스쿠리가 쓴 것과 똑같은 안경을 쓰고 노래를 부르며 왕모에게 잘 보이려 한다. 심지어 왕모는 이런 자경을 멋있다고 칭찬한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 늘 ‘작전’을 짠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작전으로 얻는 사랑이란 요즘 10대 중학생들도 유치하다고 할 법한 것들이다. 만나서 맛있는 거 먹고 서로 스킨십을 하면 그게 데이트고 사랑이다. 그건 그들에게 ‘관계’가 감정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숨겨진 어머니이니 친딸을 사랑하고, 연적이니 못되게 군다. 감정을 가지려면 어떤 관계가 필요하고, 의도된 작전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예리는 자경을 이길 수 없다. 예리보다 몇 수 위인 자경의 친어머니이자 왕모의 법적 어머니인 영선(한혜숙)이 자경을 왕모와 맺어주려 작전을 짰기 때문이다.
단순한 이야기 쇼, 마당놀이런가
작전이 성공해도 거기엔 진지한 사랑의 감정은 없다. <하늘이시여>에선 동춘(현석)처럼 아내에게 매운탕에 수제비가 없다고 길길이 날뛸 수는 있어도, 표피적인 것 이상의 진지한 감정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라(강지섭)처럼 여자에게 외투를 걸쳐주고, 어려운 음식 메뉴를 줄줄 읽으면 여자를 반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간의 감정에 관해 유치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여자는 이런 행동만으로 이라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건 <하늘이시여>가 이상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별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삶을 반복하는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오늘 뭘 먹을지, 어떻게 자식을 좋은 집에 결혼시킬지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는 주제다. 그들에게 사랑은 ‘어떤 집의 누구’와 만나는 관계 뒤에 따라오는 단순한 감정이고, 영선처럼 수단 좋은 어른이 나서면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대신 그들은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어디서 뭘 먹고, 어떤 주제를 얘기하느냐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대화는 서로의 감정을 배제한 지극히 ‘예의 바른’ 이야기만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하늘이시여>는 기성세대 시청자들의 정서에 맞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편하게 볼 수 있을 만큼 쉽고 느리다. 심지어 시청자들을 위해 인물의 감정을 ‘속마음’을 통해 직접 설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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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과 영선이 대화할 때는 대화와 상관없이 영선이 딸에 대한 애틋함을 계속 속마음으로 말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하늘이시여>는 관계도를 그려야 할 만큼 복잡한 인물 관계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느 때 봐도 상황이 쉽게 이해된다. 또한 형식적인 대화이기에 단순하고 덤덤해지는 캐릭터의 감정선은 극단적인 에피소드 전개로 메워진다. 상상이나 꿈이라는 핑계로 갑자기 남자가 훌라춤을 추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나오기도 하고, 자경과 예리가 싸우면서 자경이 예리의 차를 들이받는 ‘화끈한 액션’도 나온다. 스토리의 전개와 별개로 기성세대 시청자들이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을 쉴 새 없이 집어넣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이시여>는 무려 30여 회가 방영되는 동안 쉴 새 없이 뭘 먹을까 고민하는 스토리로도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다. 실제 기성세대의 삶이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그들은 드라마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대신 자신들이 쉽게 즐길 수 있고, 심심하지 않게 가끔씩 자극적인 ‘쇼’를 해주는 작품을 선택한 셈이다. 그들에게 드라마란 영화보다는 오히려 과거의 마당놀이와 비슷하다. 중요한 건 내러티브의 맥락이 아니라 쉬운 이야기와 재미있는 ‘쇼’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이시여>는 그런 중산층의 삶을 파고드는 대신 그 표피만을 훑으며 그게 기성세대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래서 <하늘이시여>는 현대적인 시나리오 구성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냥 보는’ 드라마에 충실하다.
<인어아가씨> 아리영만큼이라도…
하지만 그건 <하늘이시여>의 한계다. 임성한 작가의 작품 중 그나마 캐릭터에게 깊이가 있었던 <인어아가씨>의 아리영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기반으로 자신과 타인의 갈등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그러나 <하늘이시여>에는 그런 인물조차 없다. 남는 건 형식적인 대화와 헤프닝 같은 사건들뿐이고, 캐릭터들은 인형처럼 중산층의 삶의 거죽만을 덮어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자기 삶을 보는 대신 오직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있었는가’만을 보고, 드라마는 삶을 반영하지 못한 채 ‘그냥 보는’ 존재로 전락한다. 또한 이런 표피적인 기성세대의 묘사는 그들을 권태로운 존재로 다루고, 결혼은 무조건 좋은 집안 사람하고 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까지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그대로 묘사한다. 대중적이란 이유만으로 이 모든 것들이 용인될 수 있을까. <하늘이시여>는 임성한 작가의 대중적인 역량을 인정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는 곧 대중성이 무조건 ‘참’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가장 분명한 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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