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강준만식 ‘전체 대 왕따’의 폭력성

등록 2005-11-02 00:00 수정 2020-05-03 04:24

[논쟁]

분당·탄핵·대연정 등을 노무현 줄에 서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로 봐야 하나…일련의 과정 무시하고 무우 자르듯 하는 논리, 소통의 문제에서 언론 책임은 무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 교수가 <u> <한겨레21> 제581호(10월25일)</u> 에 편지 형식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민심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비판했다. ‘노무현 리더십의 폭력성’이란 제목으로 나간 이 글에 대해 이철 동양대 교수가 반박하는 글을 <한겨레21>에 보내왔다. <한겨레21>은 노 대통령의 리더십과 참여정부의 개혁에 대한 논쟁을 이어간다는 차원에서 이 교수의 글을 그대로 싣는다.

▣ 이철/ 동양대학교 행정경찰복지학부 교수

나는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가 <한겨레21>에서 개진했던 “노무현 리더십의 폭력성” 주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이 글에서 강 교수는 자신은 소수를 괴롭히는 전체에 맞서는 심정으로 글쓰기를 해왔으며, 이 태도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을 때나 지금 비판하고 있을 때나 변함이 없다고 강변했다.

대통령이 오히려 왕따 아닌가

“전 당시 개혁세력 내부에서조차 노무현을 왕따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분노해 그 책(<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썼고, 몇 년 뒤 그때의 심정으로 다시 대통령님의 줄에 서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에 분노해 대통령님을 비판하게 된 겁니다.” 나는 강 교수가 이토록 천진난만한 동기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해왔던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추적하는 글쓰기를 해왔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전체와 왕따’의 구도는 맥락을 무시하면서 드러난 부분에만 주목한다. 문제가 되는 시점에 이르게 된 과정을 고려하지 않는 대단히 협소한 분석틀인 것이다. 따라서 이 구도에서는 감정에 치우친 편파적인 주장을 하기 쉬우며, 바로 강 교수가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강 교수의 말처럼, ‘민주당 분당’이 과연 노무현 대통령과 그 지지 세력들이 민주당 세력들을 일방적으로 따돌린 사건이었을까? 강 교수는 어떤 근거에서 이토록 무 자르듯 속단할 수 있는가? 사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2002년 대선 결과부터 단선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민주당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국민적 추인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구질서를 거부하고 ‘원칙과 상식이 있는 세상’을 바라는 국민의 승리라 보는 시각도 있다. 둘 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그 뒤 김대중 대통령의 ‘졸업’ 이후 공천권을 접수했다고 생각한 당권파들과, 유권자들의 참여를 당내에 제도화하려던 세력들 간의 대립이 있었다. 이 대립을 굳이 강 교수의 구도에 근거해 판단한다면, 기왕의 기득권 세력과 질서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세력 중 과연 어느 쪽이 ‘왕따’가 될 가능성이 높았을까?

강 교수가 분당 직후 “대통령의 줄에 서지 않는 사람들에 가해지는 박해”의 책임이 노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는 것은 또 무슨 궤변인가? 당시의 ‘왕따’ 폭력은 경위들의 호위하에 입장한 193인의 ‘탄핵점령군’이, 강 교수가 주장하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행사하지 않았던가? 탄핵이 없었어도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획득할 수 있었으며, 민주당이 몰락했을까? 탄핵 세력들이 비상식적인 집단행동으로 국민들의 분노와 심판을 받은 것이 그들 스스로 자초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이 “전체 중심의 사고”에 기초해 개개 의원들에게 가했던 박해라고?

여러 사회적 행위자들이 다양한 동기에서 대결했으며, 연쇄사건들로 나타난 일련의 과정을 거두절미해서 ‘전체 대 왕따’의 구도로 판단해버리는 것은 경솔하다 못해 매우 위험하기까지 하다. 당시와 현재 한국 사회의 질서는 강 교수가 판단하듯 노무현 대통령이 대세를 장악하는 것으로 간단히 진단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와신상담하며 잠복하고 있는 세력들의 날 선 힘을 우리는 ‘행정수도법 위헌 판결’이나 ‘개혁법안 처리 대치’ 상황이나 최근의 ‘강정구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등에서 섬뜩하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열린우리당 내에도, 시민의 정당 참여를 꺼리며 구질서를 선호하는 의원들이 ‘잠입’해 있지 않은가? 강 교수도 지적했듯이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한 500대 고위직 인사들” 가운데 “대통령의 개혁 비전과 열망을 공유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 대통령이 오히려 ‘왕따’에 속하는 편임을 암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최대한 양보하더라도, 힘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정도로 평가될 것이다.

분열주의 극복이 분열주의 전략?

강 교수는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역시 그것이 특정한 사람들을 왕따시키려는 ‘제2의 민주당 분당’처럼 보였기 때문에 반대했노라고 말했다. 대연정 드라이브가 성공할 경우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시 반개혁 세력으로 찍히는 동시에 몰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대연정 구상은 ‘분열주의적 전략’일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라고 지적한다.

나는 강 교수께서 왜 세상을 단선적으로 그리고 대립 구도로만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것도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 교수의 주장은 본질을 외면한 엉뚱한 트집잡기다. 대연정 구상의 본질은 바로 현 질서에 엄존하는 대결성과 폭력성을 완화하려는 데 있다. 대통령은 박근혜 대표가 야당 당수인 것보다 국무총리로 있는 것이 더 설득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기에 대연정을 제안했노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토론을 통해 설득하려 (혹은 설득당하려) 했던 것이다. 다수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대라 하더라도, 그 상대가 지닌 현실적 지위를 인정한 바탕에서 대화로써 견해차를 좁히려 했던 것이다. 지역주의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열주의를 극복하려는 제안을, 강 교수는 지엽적인 문제를 염려·확대하며 분열주의적 전략이라 폄하했다. 강 교수께서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이 공격적인 적대감으로 무장해서 대연정을 외치는 상황을 폭력적이라 비난한다면, 나는 ‘적대적 대결 구도에서 정책적 경쟁 구도로 나가보자’는 대통령의 제안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지지·호소했을 때, 이에 냉담하고 조소하는 전체에게서 반역사적인 ‘폭력성’의 일단을 보았다.

언론학자인 강 교수께서 ‘소통’의 문제를 중요하게 보았던 점은 적절했으나, 소통의 궁극적 책임은 우리 사회의 담론 질서를 악의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훼방하고 있는 메이저 신문들에 물어야 했다. 매일 700만여 부의 ‘설법’을 배포할 권한을 가진 ‘선출되지 않은 권력집단’이, 한국 부자 서열 44위의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개인의 직접 통제와 영향력 아래 있는,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상황을 고발해야 했다. 메이저 신문들은 한나라당과 주파수를 맞추면서, 정부의 합법적 정책 결정을 ‘비판’이란 미명 아래 왜곡·폄하하거나 근거 없는 비방을 일삼음으로써, 우리 사회의 생산적 담론을 거의 질식시켜버렸다. 이들의 소통 방해 공작의 결과 우리 국민들은 예를 들면, 여섯 개의 특검이 엄청난 세수를 투입하고도 ‘태산명동 서일필’로 끝났던 것을 지켜보고 있다.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거부해왔던 정부의 진의를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들어본 적이 없고, 대신 ‘경제위기(!)’라는 악의적인 상황 판단을 전해들어야만 했다. 이런 진단을 했던 이들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며칠 전에도 절대 없다고 했던.

언론기업의 폐해를 보여줬다면…

강 교수께서 ‘언론기업’의 영향력과 폐해가 한국 사회에 끼치는 해악과 그 규모를 구체적으로 국민들에게 보여주려 애썼다면, 리프만이 20세기 초에 지적했던 여론조사의 허구적 본질을 알리려 애썼다면, 그것이 진정 다수의 폭력에 맞서는 태도가 아니었을까?

나는 강 교수의 열정을 존중하며, 참여정부의 역사적 의미를 인지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현재 개혁이 완료돼 우리 사회의 명실상부한 모든 권한을 개혁세력이 독점하고 있다는 착각에서만은 벗어나시기를 바란다. 개혁은 결코 한두 해에 성취되지 않는다.

강 교수께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진정한 공동체 발전을 추동해내며 전개되기를 바라신다면, 부분에 치우친 미시적 시각에서 노무현 리더십의 흠결을 찾아내려 애쓰시기보다는, 거시적인 권력관계 분석을 먼저 하시기를 바란다. 이때 ‘언론권력’은 반드시 주요 변수로 포함시켜야 한다. 강 교수께서 이 토대 위에서 글쓰기를 하신다면, “전체에 맞서 왕따를 대변하려는” 그의 순수한 태도는 많은 이들의 동의와 존경을 이끌어낼 것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