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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구의 시대, 참을 수 없다

등록 2005-10-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일본극단 ‘세이넨 게키죠’의 연극 <총구> 한국순회공연 개막
홋카이도-만주-조선 넘나든 청년 교사 류타가 일본에 던지는 양심의 메시지

▣ 스가이 유키오/ 일본 메이지대 명예교수·연극평론가

지금 일본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2005 한-일 우정의 해를 맞아 한국 공연이 실현된 극단 '세이넨 게키죠'(청년극장)의 연극 <총구: 교사 키타모리 류타의 청춘>(이하 <총구>)은 오늘의 일본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한국에도 소설 <빙점>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미우라 아야코의 문고판 2권, 1천쪽 분량의 소설 <총구>는 ‘시대에 휩쓸려가는 개인의 고뇌를 휴머니즘에 바탕한 문체’로 풀어냈다. 연극 <총구>를 관람한 사람들은 대체로 원작자의 감동적인 문장을 극적인 무대언어로 표현했다고 평가한다.

2002년 일본 초연 때부터 관심 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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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9월 연극 <총구>가 일본에서 초연했을 때부터 언론은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전쟁을 둘러싼 한 인간의 청춘시대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다. 한국 공연이 결정된 지난 8월에는 원작자가 생전에 활약했던 홋카이도의 유력지 <홋카이도신문>은 “지금 <총구>를 읽다”는 제목으로 대형 특집을 실었다. ‘학도들을 다시는 전쟁터로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교사들을 뒤로 하고, 역사 왜곡 교과서를 강요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이는 상황에서 연극 <총구>가 오래전의 기억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연극 <총구>를 연출한 호리구치 하지메는 “60여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인류가 총구에 위협받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작했다”고 밝혔다. 연극은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주인공 기타모리 류타가 홋카이도의 작은 탄광촌 호로시나이의 소학교에 신임 교사로 와 열정적으로 가르치다 특별고등검찰의 올가미에 걸려드는 과정을 면밀히 보여준다. 양심의 귀중함과 인간의 평등을 가슴에 품도록 지도한 은사 사카베 히사야를 우러르던 류타, 그의 혐의는 50여명의 교사를 체포한 ‘홋카이도 쓰즈리호 교육연맹사건’에 관련됐다는 것이다.

당시의 치안유지법은 양심적인 교사를 ‘빨갱이’로 몰아 체포와 고문을 일삼는 것이 전가의 보도였다. 류타는 아사히가와 경찰서의 취조실에서 고문을 받던 사카베를 만나게 된다. 차마 양심의 스승을 감옥에 보낼 수 없었던 류타는 사카베의 석방 조건으로 자신의 퇴직을 내세운 경찰의 요구에 따른다. 교사직을 박탈당한 류타는 만주 출병 명령을 받아들이는데, 이번에는 패잔병 신세가 되어 만주에서 조선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도망치려 한다. 그러다 산중에서 항일독립빨치산 부대에 체포된다. 이때 류타의 아버지 도움으로 일본의 탄광을 탈출했던 부대장 김준명을 만나 목숨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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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연극 <총구>는 시대적인 양심과 바른 교육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전시 중의 교육 실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다’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다시금 되풀이되는 강압의 역사를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 20대 여성은 <총구>를 관람한 뒤 “지금 학교에서 일장기 히노마루, 국가 기미가요 제창 때 기립하지 않는 교원과 이를 제도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교장은 좌천된다고 들었다”면서 “<총구>와 같은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연극 <총구>가 시대적 의미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창단 40년을 넘긴 극단의 연륜에서 나오는 극적 완성도도 뛰어나다. 짓눌리는 듯한 무거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막이 열리면 소학교 교무실의 살가운 분위기가 느껴지고 청순한 이미지의 류타가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게다가 석탄난로에 불을 지필 때 문짝이 타오르는 것처럼 붉게 비쳐지는 장면은 꼼꼼하고 세심한 연출을 확인해준다.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교사, 인간의 미래를 믿고 새로운 르네상스를 지향한 교사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연극 <총구>, 그 감동은 국경을 뛰어넘어 전해질 것이다. 10월13일~11월18일, 전국 14개 도시 순회 공연, 02-762-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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