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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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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의 진화는 계속돼야 한다

등록 2005-09-01 00:00 수정 2020-05-03 04:24

‘때깔’나는 세련미와 ‘짱개집’ 유머로 상업광고 뺨치는 공익광고들
고루한 담화문 벗어나 도발적인 비쥬얼과 카피로 ‘크리에이티브’ 한판 승부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어? 저게 공익광고였어?”

요즘 텔레비전을 보다가 놀랄 때가 있다. 공익광고답지 않은 공익광고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기관장님’이 나와서 담화문을 읊지도, 연예인이 나와서 경고문을 읽지도 않는다. 시민들이 등장해 어색한 다짐을 하지도 않는다. 상업광고 뺨치는 세련미를 자랑하는 공익광고가 많다. 일단 ‘때깔’부터 달라졌다. 세련된 비주얼은 기본이다. 함축적인 카피까지 겸비했다. 광고 마지막에 뜨는 ‘국정홍보처’ 같은 기관 이름이 아니면 공익광고인지 모를 지경이다. ‘전통적’ 광고기법의 최후의 보루였던 공익광고마저 변하고 있다.

검붉은 니코틴 진액이 귀에서 흐르네

보건복지부는 금연 캠페인 광고로 올 상반기의 ‘자학 편’에 이어 하반기에 ‘이별 편’을 내보내고 있다. 두 편 모두 한국의 공익광고스럽지 않다. 먼저 이별 편. 우울한 음악(<saddest thing>)이 흐르고 모노톤의 화면이 시작된다. 어머니의 품에 딸이 안겨 있다. 슬픈 어머니와 무표정한 딸의 얼굴 위로 카피가 뜬다. ‘엄마, 미안해요. 나는 엄마의 사랑을 연기로 태워버리고 말았어.’ 그리고 이어지는 내레이션, “흡연 여성이 후두암에 걸린 확률은 비흡연 여성에 비해 무려 4.2배나 높습니다”. 마지막 화면이 압권이다. 딸의 귀에서 검붉은 니코틴 진액이 흘러내린다. 그 위로 ‘흡연, 세상과 이별하는 행위’라는 자막이 뜬다. 딸의 죽음을 검붉은 니코틴으로 표현했다. 낯선 이미지가 강력한 메시지가 되는, 아주 광고적이면서 아주 효과적인 표현이다. ‘이별 편’은 모녀, 부부, 연인의 이별 등 3편으로 구성돼 있다. 부부 편에서는 남편의 코에서, 연인 편에서는 남자친구의 눈에서 진액이 흘러내린다. ‘자학 편’도 만만치 않은 비주얼 스캔들로 승부한다. 넥타이를 맨 남자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고, 젊은 여성이 자신의 얼굴을 유리에 긁어대고, 젊은 남성이 독가스가 흘러나오는 맨홀 뚜껑에 머리를 들이민다. 흡연은 뇌, 피부, 폐를 자학하는 행위라는 것. ‘자학 편’에서도 비주얼 스캔들이 자극적인 그림에 머물지 않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김홍탁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비주얼로 주목을 끌고 카피로 설득한다는 광고의 기본에 충실하다”며 “잘못된 사실을 보여주고 옳은 행동을 유도한다는 공익광고의 취지에도 정확하게 맞다”고 평가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교통사고 방지 캠페인에서 뇌수가 흘러나온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줄 만큼 강력한 비주얼을 사용한 광고가 많다”고 덧붙였다. 금연 캠페인은 광고의 고전에 충실하다. 원 신 원 컷(One scene one cut)의 비주얼에 건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결합한 금연 캠페인에서는 ‘고전미’마저 풍긴다. ‘자학 편’은 2005년 스위스 국제광고제에서 캠페인 부문 최종 경쟁작(파이널 리스트)에 오르며 한국 공익광고의 성가를 드높였다.
국정홍보처의 ‘다이내믹 코리아’ 캠페인은 다이내믹하지 않아서 훌륭하다. 예전 같으면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슬로건을 살리기 위해 말 그대로 다이내믹한 비주얼을 짜깁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다이내믹 코리아’ 캠페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잔잔하게 대비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코리아의 ‘다이내믹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난해 방송된 첫 편은 아이들이 부르는 잔잔한 동요에 남자아이가 꽃다발을 든 흑백사진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피, “17년 후 이 아이는 스페인전의 승부차기를 막아냅니다”. 카피가 흐르자 이운재 선수가 승부차기를 막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조수미의 15년 전 사진,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쏘아올린 최순달 교수의 48년 전 사진이 같은 기법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의 마지막 카피가 흐른다.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큰 힘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 한국인 누구나 대단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것을 전혀 ‘다이내믹’하지 않게 보여주지만, 잔잔한 이미지가 쌓이고 쌓여서 ‘다이내믹 코리아’의 가능성을 설득한다. 비주얼은 ‘막춤’을 추지 않지만, 편집이 다이내믹한 이미지를 살리고 있다. ‘다이내믹 코리아’ 광고 콘셉트는 최근 방송되고 있는 ‘박주영 편’에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국정홍보처의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로 시작해서 “긍정의 힘을 믿습니다”로 끝나는 경제회복 캠페인은 정돈된 카피의 힘만으로 공익광고가 ‘확’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공익광고의 ‘때깔’이 확 달라진 이유는 뭘까. 공익광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광고주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은 아무리 좋은 광고 시안이 있어도 광고주가 채택하지 않아서 공익광고가 ‘후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신길우 국정홍보처 정책광고팀장은 “정부의 슬로건이 혁신 아니냐”며 “의사결정권자들이 외부에서 많이 수혈되면서 정부조직의 혁신이 광고의 혁신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광고주들이 눈을 높일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도 있다. 이명천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 더 이상 담화문 발표 수준의 카피와 계몽적인 비주얼로는 광고효과를 낼 수 없다”며 “국민 수준의 향상이 광고주의 수준을 끌어올렸다”고 진단했다.

경쟁 프리젠테이션 거치면서 수준 높아져

공익광고의 수준 향상과 함께 공익광고의 기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시민의 일상에 녹아들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공익광고도 등장했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의 고용보험, 산재보험 광고는 일상성에 유머까지 더했다. 배경은 ‘짱개집’. 촌스런 양복을 입은 사장님이 거울을 보면서 머릿기름을 바른 ‘헤어’를 쓸어넘기고 있다. ‘철가방’이 묻는다. “사장님, 어디 가세요?” 사장님이 산재보험 신고하러 간다는 사실을 안 철가방은 서빙을 하고 있는 아가씨에게 다가가 ‘설’을 풀어놓는다. “산재보험이 뭔지 아니? 설거지를 하다가 다쳐도 치료비에….” 그리고 손님이 “인터넷으로 신고하면 되는데”라고 말하는 반전으로 끝난다. 광고의 힘은 캐스팅에서 나왔다. 예전 같으면 진짜 사장님을 썼겠지만, 진짜 ‘짱개집’ 사장님 같은 배우(윤문식)를 쓰고, 진짜 ‘철가방’ 같은 배우(최상혁)를 쓴, 작은 차이가 유머 광고를 만들었다. 공익광고협의회가 만든 ‘봄의 시작’ 편은 경제회복 메시지를 가족의 일상에 녹였다. 대화의 일상성과 화면의 화사함은 메시지의 딱딱함을 극복한다. 아이의 “엄마! 꽃!”이라는 한마디로 희망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공모의 힘은 공익광고의 수준을 높였다. 예전에는 수의계약을 통해 공익광고를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공익광고 아이디어 공모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경쟁 프레젠테이션 등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공익광고의 수준이 올라갔다. 그리고 제작비도 현실화됐다. 이정혜 공익광고협의회 차장은 “제작비가 현실화되면서 공익광고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공익광고의 수준은 광고문화의 수준을 대표한다. 외국의 경우, 공익광고는 ‘크리에이티브’의 보고다. 인간사의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를 가장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5초짜리 텔레비전 광고로 제한된 시간의 벽을 뛰어넘을 특권도 얻는다. 그래서 공익광고는 기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공익광고의 진화는 계속돼야 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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