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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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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산조와 어울려요

등록 2005-09-01 00:00 수정 2020-05-03 04:24

‘보여지는 소리’의 가능성 점쳐본 다섯번째 ‘산조축제’
요가 시범단의 동작과 기의 흐름 자연스럽게 끌어내

▣ 글·사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우리가 과거 속으로 소리 여행을 떠난다면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청포를 입고 대금을 부는 선비와 어여머리에 가야금을 타는 여인을 만나고, 하얀 고깔에 장삼자락을 휘날리는 승무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예컨대 고즈넉한 가락에 맞춰 은은한 장단으로 가야금 12줄을 퉁기는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것을 일상적인 풍경으로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동안 ‘산조’(散調) 가락의 실용성 강화를 꾀했음에도, 그 감흥이 공연장과 연구실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정말로 우리의 소리는 일상에 들어오기 어려운 것일까. 이런 의문이 지난 8월25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가볍게 풀렸다. 소리가 동작을 부르며 기운을 얻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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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명인 김창조의 40분 소나타

가야금산조 현창사업추진위원회(이사장 양승희)와 한국산조학회(이사장 양승희, 회장 김해숙)가 마련한 이날 다섯 번째 ‘산조축제’에서 태껸과 요가를 만나 ‘보는 소리’를 선보였다. 베토벤이 루체른 호수에 비친 달을 보고 작곡한 <월광 소나타>에 빠지듯이 김창조 선생은 영암의 절경에 취해 내놓은 ‘산조’를 즐기게 된 셈이다.

사실 산조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전까지 춤을 뒷받침하는 음악으로 쓰이던 국악기 연주가 기악 독주곡으로 자리잡은 데는 가야금 명인 김창조(1856~1919) 선생이 주도적 구실을 했다. 한국산조학회 양승희 이사장은 “김창조 선생은 가야금 연주를 다스름 가락·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등의 틀을 갖춘 40분 길이의 소나타 형식으로 집대성했다. 나름의 음악적 구성으로 전통의 현대화 기틀을 다진 셈이다. 산조축제를 이어오며 김창조 산조를 재현하고 악보를 출판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이날 산조가 태껸과 요가를 만나는 데는 산조학회의 구실이 컸다. 1980년대 다산 정약용의 책을 읽는 모임 ‘악서고회’(樂書孤會)에 뿌리를 둔 산조학회는 산조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이 되도록 하는 데 뜻을 모았다. 김창조 선생이 산조의 창시자임을 밝히고, 그의 산조를 무대에서 재연한 것도 실용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면서 움직임을 통해 ‘보여지는 산조’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야말로 산조의 비주얼화를 통해 현대적 계승을 이뤄내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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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한국 음악의 놀라운 가능성에 머물지 않았다. 긴장(맺고)과 이완(푸는)의 뚜렷한 대비로 짜임새가 치밀한 산조의 가락이 태껸과 요가의 동작을 불러내는 듯했다. 대한택견협회(회장 이용복) 공식시범단 ‘치우패’의 태껸 동작에 가락이 입혀지면서 힘을 나누고 모으는 과정에 아름다움이 더했고, 원정혜(호원대 교수)씨와 시범단의 요가는 산조 가락이 ‘쿤달리니’ 같은 명상음악을 대신하면서 동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해 기(氣)의 흐름을 주도했다. 이들은 첫 번째 만남이면서도 마치 한 몸인 듯한 어울림을 보여줬다.

갈래갈래 계보마다, 실용화 첫걸음

이번 축제에서의 만남만으로 산조의 실용성이 강화됐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김창조 선생의 계보를 잇는 가야금 산조류파만 해도 6개나 된다. 이들은 다른 가락의 짜임새를 지니고 있기에 저마다 다른 대중화의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 더구나 거문고나 아쟁, 해금 등의 산조를 생각하면 산조의 대중화 형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각각의 음악적 특징에 걸맞은 다른 장르의 문화를 접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기악이 도달할 예술의 극치로 여겨지는 산조, 앞으로 8월31일을 산조의 날로 정해 대중화의 지평을 넓혀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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