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길 위에서 주운 한마디]
이란- “내 가슴은 보헤미안이 가져가버렸네”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바다를 모두 마신 우리는 너무나 놀라웠네.
우리 입술이 아직도 해변처럼 메마르다니!
어디든 입술을 적실 바다를 찾으러 가자.
우리 입술이 해변이고 우리가 바다이니.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서사시 파리드 앗 딘 아타르(Attar).
이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14세기의 시인 하페즈(Hafez)이다.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죽은 시인이 아니라, 일상에서 끊임없이 인용되고 회자됨으로써 이란인들의 가슴속에서 숨쉬며 살아 있는 시인이다. 그 위대한 시인 하페즈의 무덤을 찾았을 때, 무덤은 죽은 이를 위한 한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였다. 꽃과 나무가 우거진 정원에서 사람들은 걷고, 차를 마시며, 일상 속의 시를, 시 속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인의 무덤은 산 자들의 공원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젊은 여성이 내 눈에 띄었다. 그는 작은 시집을 손에 들고 하페즈의 무덤 주변을 걷고 있었다. 살면서 풀기 어려운 문제가 찾아올 때면 이란 사람들은 하페즈의 시집을 들고 이곳으로 온다고 했다. 하페즈의 무덤 주위를 돌며 질문을 던지고, 시집의 아무 쪽이나 손이 가는 대로 펼친다. 그 펼쳐진 시집의 오른쪽 시 첫 구절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다고 했다. (여긴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니라 ‘산 시인의 사회’인 것이다.)
16세기, 하페즈 사후 이미 두 세기가 지난 그때. 그의 시가 지닌 신비주의적 면을 문제 삼아 그를 ‘수니’(이란에서는 시아파가 다수이다)로 몰아붙여 그의 무덤을 없애자는 물라(종교 지도자)가 있었다. (‘단순, 무식, 과격’은 80년대 대한민국 운동권들의 자조적인 농담이 아니라 시대와 장소를 막론해 일부 종교 지도자들을 설명하는 말 같다.) 그의 요구가 거세지자 당시 시라즈의 군주였던 샤 이스마할이 제안했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무덤 주변을 걷다가 시집을 펼쳐 답을 구하자고.
하페즈는 시를 통해 이렇게 답했다. “어젯밤 한 전사가 나에게 그의 칼을 제공했다. 그는 왕이었고, 나는 그에게 당신의 신하라고 답했다.” 충성스러운 답변에도 만족하지 못한 물라가 다시 고집을 피우자, 샤 이스마할은 다시 한번 무덤 주변을 걷고 시집을 펼친다. 조금 귀찮아진 하페즈는 이렇게 답한다. “파리들아, 독수리들아. 여기는 너희 땅이 아니다. 스스로를 귀찮게 하지 마라.” 그 물라의 이름은 파르시어로 ‘파리’라는 단어와 발음이 똑같았단다. 결국 물라도 뜻을 접어 그의 무덤은 이렇게 역사 속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하페즈를 둘러싼 또 한 가지 일화. 이란의 많은 시인들이 죽은 뒤에 하페즈 곁에 묻히고 싶어했다. 존경하는 시인 곁에 죽은 몸이라도 누이고 싶었던 순정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시인 곁에 급수(?)가 미치지 못하는 다른 시인들을 묻는다는 걸 못마땅해하는 반대의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일고 있었단다. 역시 하페즈의 시집에서 답을 구하기로 하고, 시집을 펼쳤다. 너그러운 하페즈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 눈 그늘 아래, 내 눈이 보는 것은 당신들의 것. 여기가 당신들의 둥지이니, 부디 내려오시오. 이 집은 당신들의 것.” 지금 하페즈의 무덤 곁에는 십여명의 이란 시인들이 함께 묻혀 있다.
내 운명은 보헤미안이었네
이란 사람들처럼 나도, 하페즈의 무덤을 걸으며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영험한(?) 신통력을 지닌 하페즈에게 내 운명의 방향을 묻고 싶었던 거다. 내 질문은 이러했다. “언젠가는 내게도 유랑을 끝내고, 어딘가에 짐을 내려놓고 정착할 날이 찾아올까요?” 통찰력 있는 하페즈가 내게 준 대답. “내 마음은 보헤미안이 가져가버렸네. 믿을 수 없고, 변덕스러우며 잔인한 보헤미안…. 그 운명의 길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라. 받아들이고 따를지니.” 결국 내 일생이 이렇게 보헤미안처럼 떠돌다가 끝날 거라는 건가? 하페즈의 무덤 곁에서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페즈를 비롯해 이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시인은 네명이라고 했다. 그 중 하나인 또 다른 시인, 사디의 무덤을 찾았을 때도 무덤은 산 자를 위한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이란은 산 자들이 죽은 자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사회였다. 죽은 자가 산 자의 기억 속에 세월을 거스르며 살아 있는 땅이었다. 김현이 그랬던가. “사람은 두번 죽는다. 한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라고. 그런 의미에서 이란의 시인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이란인들의 일상과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으므로. 그런 땅에서 태어나 시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지! 문득 내가 나고 자란 땅의 시인들이 생각났다. 그들의 가난하고 서러웠던 삶이 떠올라 잠시 우울해졌던 시라즈(Shiraz)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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