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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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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

등록 2005-08-25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한 동호인의 화두가 몰고온 블로거들의 난상토론, 매체 창간의 배를 띄우다
독자가 스타작가 되고 동인축제·분장놀이 활발한 진짜 프로슈머 세계의 가능성
</font>

▣ 김낙호/ 만화연구가

최근 “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라는 도발적 광고 문구가 출몰하고 있다. 이런 발언의 진원지는 만화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들을 하는 온라인 블로그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만화계가 술렁대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뜬금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다. 만화 산업도, 잡지 출판도 불황과 침체에 허덕이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냥 만화 잡지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만화에 관한 지면을 만들자니 현실 감각이 없어 보이는 말로 들리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내 묘한 울림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특정 출판사에서 “만화 저널을 만들었으니 열심히 구독해주십시오”라는 광고가 아니라, 이제부터 토론을 하고 아이디어를 모아보자는 제안이기 때문이었다.

지망생·평론가·편집자의 글을 모아모아

도대체 만화언론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만화 온라인 블로거들은 불특정 다수의 평범한 독자들이 다른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에게, 같이 머리를 모아 지면을 창간해보자고 제안한다. 거창한 만화운동을 내세우지도 않고 대형 사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즐거운 풀뿌리 실험에 시동을 걸자는 말이다. 만화·애니메이션 이야기 사이트 ‘만화인’(http://manhwa.in)의 운영자 서찬휘씨가 ‘한국에서 만화언론은 가능한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시작됐다. “…‘담론’의 형성을 넘어 정보의 지속적인 공급, 홍보 창구로서의 역할,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언론’은 분명 필요합니다. 또한 언론은 사회적 반향을 이끌 수 있는 운동이나 행사의 기반이 되기도 하죠. …”라는 문제제기였다.

여기에서 읽을 수 있듯이 거대한 화두를 던진 게 아니다. 현존하는 만화단체 소식지나 무거운 정론지와는 다른, 대중적 지면을 염두에 뒀을 뿐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대감·우려·현실인식 등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반향을 예고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수많은 장문의 토론 글이 축적됐다. 토론에 참여한 사람들은 평범한 일반 독자와 만화가 지망생도 있지만, 만화잡지 편집자·평론가·프리랜서 기획자 등 실제 종사자들도 여럿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특정 회사나 단체의 입장이 아니라 대등한 만화 독자의 입장에서 토론에 가세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에 바탕해 만화언론이 왜 필요한지, 어떤 부분이 가능하고 또는 어려운지 하나씩 아이디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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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한국 만화산업의 여러 난점들도 자연스럽게 분석 대상이 되었다. 일본 만화 점유율 문제와 쿼터제 제안이라든지, 효과적인 창작 지원책 등이 구체적인 업계 자료를 가지고 논의됐다. 그리고 이러한 토론의 와중에서 왜 만화언론이 없는지 분통을 터트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실제로 그런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논의 과정을 바탕으로, 오프라인 모임에서 실질적인 기획회의도 실시되고 있다. 작은 실마리를 붙들고 한국 만화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 셈이다.

만화언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토론 과정은 색다른 방식으로 이뤄졌다. 토론이 하나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 블로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트랙백으로 엮인 블로그 댓글은 순서가 명확하지 않아서 논의의 맥락을 놓치기 쉬운 반면, 만화언론 토론은 관련 게시물의 리스트를 시간순으로 기록하고 ‘만화인’ 사이트에서 유지해 마치 하나의 게시판처럼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덕분에 토론에 기여한 각 글들은 분량과 논조의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토론의 전체 맥락은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이것 역시, 사람들이 자기 공간에서 긴 감상을 늘어놓기 좋아하면서도 그것을 공유하도록 갈구하는 대중 서사문화, 특히 만화의 특성과 맞물려 있다.

만화에는 ‘독자적 에너지’가 있다

대중문화의 건설적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돌았던 1990년대 초·중반에 소비자와 생산자라는 두 개념을 합성한 ‘프로슈머’(prosumer)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장르의 상품화가 일반화돼버린 가요 분야에서 볼 수 있듯, 대부분의 경우 소비 방식이 훨씬 정교화됐을 뿐이다. 프로슈머 개념은 생산자와 감상자 사이의 진입장벽이 한없이 낮으며, 보편적 접근성과 매니악한 세부 취향이 동시에 충족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다수의 대중문화는 산업적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 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 여기에서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바로 만화였다.

만화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뤄낸 산업적 체계화와 급성장의 물결 속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오히려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능동적으로 향유하는 매체로 발전한 것이다. 가요의 청취자들이 팬클럽을 만들고 음반을 소비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만화의 독자들은 한 단계 더욱 적극적으로 ‘판’에 개입해왔다는 말이다. 우선 이미 청소년층에서는 주류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각종 만화 동인 축제 행사를 들 수 있다. 독자들이 만화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기 위해서 직접 아마추어 회지를 만들어서 유통시키고, 아예 만화 분장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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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을 통해 만화는 독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현상을 유발했다. 그 에너지는 괄목할 만한 것이어서, 프로 작가들도 종종 이런 활동에 참여해왔다. 여기엔 프로와 아마추어, 독자의 창작의 경계선이 낮다는 상황도 작용했다.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연재를 하다가 스타가 되는 사례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3년 전 출범한 ‘독자만화대상’(www.comicreader.org)은 만화에서 독자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기존 만화상들의 구태의연함을 독자들이 직접 타개하고자, 순수하게 독자 투표에 의한 새로운 상을 만들어서 안정적으로 장기 운영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자면, 독자들이 다시 직접 나서서 대중적인 만화 정보 저널을 만들어서 유통시키겠다는 포부가 결코 뜬구름 잡기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게임까지 넓게 포섭하라

물론 만화언론의 진로에 관련된 난점도 적지 않다. 중심 주체가 없는 상태의 기획이기에, 실제 제작에 들어가기 위한 자금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온·오프라인의 선택, 광고주 설득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또 기존의 만화 관련 잡지들이 지녔던 ‘그들만의 잔치’식의 대중성 부족을 극복하고 만화 ‘언론’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열혈 만화 마니아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집중적인 매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불특정 다수의 집단적 의견교환 과정에서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십수년 전 모든 부정적 전망에도 주간 영화 언론이라는 형식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온 <씨네21>도 하나의 모델로 거론되고 있다.

지금까지 제안된 만화언론을 거칠게 요약하면 만화를 핵심 소재로 삼되, 온·오프라인 만화 관련 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대중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다시 만화를 매개로 하여 독자들에게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등을 포괄하는 하나의 취향적 문화 전반을 접하게 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만화언론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문제 지적에서 대안 도출까지 직접 짊어지고 나가려 한다. 어쨌든 ‘만화언론을 하지 않겠는가’라는 주제의 토론은 재미있는 실험이다. 만일 현재의 논의 방향이 계속 진전돼 창간이라는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 경우, 아마도 유례없이 크고 아름다운 잡지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듯하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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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에서 만나 질펀하게 놀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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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6633cc">[인터뷰/ ‘만화인’ 운영자 서찬휘 씨]</font>

동인지·전문지 탈피한 오프라인 잡지 형태로 논의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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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만화언론’이란 화두를 던진 서찬휘(27)씨는 올해로 개설 7주년을 맞은 온라인 만화 사이트 ‘만화인’의 지기(운영자)다. 만화인을 운영하면서 ‘만화인의 노래’라는 만화영화 노래 행사를 기획했고, 만화 독자들의 잔치인 ‘독자만화대상’의 원년 멤버로도 참여했다. ‘만화 즐김이’로서 만화와 만화영화를 중심으로 문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그에게 만화언론에 대해 들어봤다.

<font color="008080"> ‘만화언론은 가능한가’라는 화두를 던진 이유가 무엇인가.</font>

= 만화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화 소식을 모으는 공간의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무크지를 구상했는데, 형편상 동인지 수준의 작은 규모로 갈 수밖에 없었고 지나치게 마니아 중심이 될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다가 가볍고 작은 소식들부터 깊은 이야기까지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보니 자연히 '언론'이 떠올랐다.
<font color="008080"> 만화계 안팎에서 만화언론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는데.</font>

= 그동안 ‘언론’ 구실을 하는 만화 매체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문제는 ‘전문지’의 틀에 갇혀 만화계 안쪽의 소수들에게만 읽히는 경향이 강했다는 데 있다. 이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은 만화판에 한발씩 내딛고 있는 이들이라면 마음 한구석에 숙제더미처럼 안고 있었다. 그런 마음들에 불씨를 던진 것인데, 서로 뜻을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font color="008080"> 아무리 뜻을 모아도 활동 공간이 달라 토론이 쉽지 않았을 듯하다.</font>

= 6월 말에 글을 올린 뒤 순식간에 만화판 전체를 아우르는 대안 토론으로 발전했다. 각자의 공간에 오른 글을 직접 한 곳에 연결하는 목록화 프로그램을 짜서 토론의 중심을 잡아나갔다. 논의가 구체화하면서 7월29일 다양한 입장을 지닌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만화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온라인 매체를 시작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출판사업을 진행하고 궁극적인 목표는 오프라인 매체의 창간이라는 큰 틀에 합의했다.
<font color="008080"> 최근 만화언론이 이름을 <만>으로 결정했는데.</font>

= 우리가 논의를 하면서 ‘만화계의 안에서 바깥으로 끝없이 퍼지게 한다’라는 기조를 세운 것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공모와 투표를 거쳐 결정했다. ‘질펀할 만(漫)’을 한자 생성 과정으로 풀이하면 ‘물이 끝없이 퍼지다’라는 뜻도 있어 본래의 취지에 들어맞는다. 한편으로는 만화와 만화영화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가 ‘질펀하게’ 어우러지는 장소이길 바라는 뜻도 담고 있다.
<font color="008080"> 앞으로 구체적인 실무에 나서야 할 텐데 어려움은 없는가.</font>

= 만화 관계자들이 논의에 나설 때와 실무를 뛰는 것은 다른 영역이므로 서로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당장은 ‘각자의 공간에서 늘 하던’ 특징을 살리면서 ‘잘 묶어내는’ 식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준비 과정을 거친 뒤에는 파급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수익 모델도 생각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누가 뭐라든 돈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font color="008080"> 만화언론 <만>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길 기대하는가.</font>

= 무엇보다 대중문화에 대한 온갖 소식과 담론, 논의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허브(hub) 구실을 하게 되길 기대한다. 물론 중심에 만화 매체가 있었으면 한다. 그동안 제대로 다루지 않은 것들에 대해 가볍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접근하는 공간이길 바란다. 이를 위해 현재 논의된 큰 틀을 벗어나는 여러 가능성과 방향성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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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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