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과 팜므파탈의 심리전을 치밀하게 구성해 시청자 자극
장르 범벅에 팽팽한 긴장감 얹는 화려한 큐빅 퍼즐 시대가 온다
▣ 강명석/ 문화평론가
요즘 인터넷은 이른바 ‘스포일러’가 대세다. 스포일러란 작품의 결말과 반전 같은, 작품의 재미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정보를 일컫는데, 인터넷에서는 특정 작품에 대해 언급할 때는 ‘스포일러 있음’ 같은 첨언을 하는 것이 네티켓으로 여겨지고 있을 정도로 스포일러에 민감하다. 특히 요즘에는 반전이 중요한 스릴러나 추리물뿐만 아니라 문화방송의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드라마에서 ‘누가 누구와 되느냐’마저도 스포일러로 인정할 정도다. 그만큼 요즘 사람들은 자신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에 열광한다. <친절한 금자씨>도 말하지 않는가. ‘궁금한 그녀의 마음속’이라고 말이다.
바른 생활 사나이, 새로운 접근
<변호사들>은 스릴러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정치권의 검은돈, 각각 선과 악의 입장에 선 두명의 변호사들, 그리고 우리 편이 될지 악의 편으로 갈지 알 수 없는 팜므파탈 스타일의 여자까지 골고루 등장한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독특한 관점으로 이런 요소들에 접근한다.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스토리나 반전을 대단한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출연진들 스스로 ‘범인은 누구냐’라든가, 시청자들도 이미 눈치챈 것들을 반전이라고 밝히지 않는다. 이미 첫 회에 모든 사건의 실마리는 제공되어 있고, 등장인물들은 몇번의 추리를 통해 금세 진실에 다가선다. 대신 <변호사들>에서 시청자들을 자극하는 것은 그 정보들을 활용하는 캐릭터들의 ‘궁금한 마음속’에 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비밀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무조건 폭로하는 대신 서로의 마음에 따라 상대방 혹은 자기 자신과 협상한다. 주희(정혜영)의 옛 연인이자 악의 대리인으로 돌아온 석기(김성수)가 누명을 씌워 주희를 구속시키자, 정호(김상경)가 자신이 모은 증거들을 통해 석기를 압박, 더 이상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부분이 대표적인 예다. 그들은 선과 악, 자신의 사랑과 조직의 논리 사이에서 고민하고, 그 선택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사들>은 정답이 풀리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되고, 그 근원을 인간의 욕망과 도덕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찾는다.
악역을 맡은 석기가 옛 사랑인 주희와의 관계 때문에 갈등하는 것은 흔한 설정이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을 것 같은 바른 생활 사나이 정호의 도덕적인 면을 오히려 권력욕 이상의 ‘도덕적이고 싶은 욕망’으로 풀이하는 것은 선한 역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석기와 정호가 싸우며 “인간은 끝까지 악할 수 없다”와 “인간은 끝까지 착할 수 없다”는 말로 서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장면은 <변호사들>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정말 긴장하고 궁금하게 되는 것은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의 관계다. 석기와 정호 모두 자신의 대의(공익/보스의 뜻)와 욕망(주희) 사이에서 갈등할 뿐 아니라, 석기의 비서이자 주희의 가장 친한 친구 하연(한고은)은 사랑과 우정 혹은 정의와 이익 사이에서 고민한다. 특히 정호는 주희와는 부부 관계 이상의 신뢰를 쌓지만 정호는 의부증의 아내 때문에 주희에게 마음을 더 줄 수도, 거둘 수도 없다. 정호와 주희의 러브스토리는 지나칠 정도로 무뚝뚝한 정호의 캐릭터와 함께 남녀의 사랑만으로도 ‘스릴’을 보여준다. 또한 다른 스릴러들과 달리 스릴러의 전형을 벗어나고, 더불어 사건의 전개에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캐릭터의 면면은 인상적이다. 전문대를 졸업, 자신의 경쟁력이 오직 ‘외모’뿐인 것을 너무나 잘 아는 하영이 여변호사의 가슴 확대 수술 소문을 듣곤 “엘리트들도 가슴 크기에 신경쓰는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것만으로 보면 마치 여성 드라마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 캐릭터의 일상을 깊게 파고들어가며, 그것은 하영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보여준다.
“엘리트도 가슴 크기에 신경쓰는구나”
아직 6회밖에 방영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변호사들>은 한국 드라마가 문화방송의 <네 멋대로 해라> 이후 또 한번 변화의 기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네 멋대로 해라>가 드라마가 바라보는 세상의 폭을 넓혔다면, <내 이름은 김삼순> <부활> <변호사들>과 같은 일련의 드라마들은 한국 드라마의 기술적 구성이 얼마나 치밀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제 드라마는 스릴러부터 멜로, 코미디까지 모든 장르들을 아우르고, 그 위에 살아 있는 캐릭터를 덧붙이며, 그것도 모자라 그것들에 팽팽한 긴장감까지 부여해야 하는 화려한 큐빅 퍼즐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변호사들>이 시청률과 별개로 해외 시리즈에 익숙한 젊은 시청자들에게 이미 심상치 않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와 통할 것이다. 보면 볼수록 궁금하고, 머릿속은 복잡해지며, 마음은 갑갑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과 두뇌싸움이야말로 가장 괴롭지만 즐거운 놀이 아니던가. 몇년 전부터 드라마는 ‘생각 없이 편하게’ 보는 장르라는 말에 스스로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들>이 그 결정타를 날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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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한겨레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