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숭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삶의 지혜라고 말하는 광고들
섹시하고 청순한 여자, 잘생겨도 유머감각없는 남자 인기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험한 세상 한 얼굴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바야흐로 두 얼굴의 시대다. 예전에는 현실이라는 단 하나의 얼굴만 존재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일상화되면서 현실 공간의 나와 사이버 스페이스의 자신이라는 ‘분열’을 경험하면서 ‘이중성’은 일상적인 코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현실에 지친 사람들은 가상에서나마 자신이 ‘무언가 새롭고’(Something new), ‘무언가 다른’(Something different)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현실의 얼굴을 ‘페이스 오프’(face off)하고 가상 공간에서 ‘가면 무도회’를 즐기기를 원한다. 세태를 반영하는 광고에도 ‘이중성’은 중요한 콘셉트로 자리잡았다. 이중성에 익숙해진 대중들은 이중성을 강조한 광고에 반응한다. 두 얼굴의 사나이, 두 얼굴의 아가씨가 광고를 주름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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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의 잠재된 갈망을 건드린다
댄스 플로어에는 신나는 음악이 흐른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송혜교가 춤을 춘다. 유연하게 허리를 흔들면서 섹시하게 춤을 춘다. 마네킹의 얼굴 같은 마스크를 쓴 남자를 유혹한다. 슬쩍 남자의 얼굴에 손도 갖다댄다. 순간 휴대전화가 울린다. 카피가 뜬다. “180˚ 변신.” 송혜교의 위치가 남자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뀐다. 옷 색깔도 흰색 정장으로 바뀐다. 송혜교가 휴대전화를 들고 “난 자기 하나밖에 모르지”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마스크맨의 얼굴에는 땀 한 줄기가 흐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살짝 웃는 송혜교. 그 위로 카피가 흐른다. “험한 세상 한 얼굴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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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FT가 6월에 론칭한 휴대전화 ‘듀얼 페이스폰’의 광고다. 이 광고는 송혜교의 섹시함과 청순함을 활용해 이중성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임을 말하고 있다. 이제 내숭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라는 것이다. 물론 광고는 제품의 기능에서 출발했다. 듀얼 페이스폰은 한면만 정면이었던 기존의 휴대전화와 달리 양면을 모두 정면처럼 만든 제품으로 마케팅하고 있다. 한면은 디지털 카메라의 정면처럼 보이고, 다른 면은 MP3의 정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광고를 제작한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의 박재신 대리는 “이중성이 예전에는 부정적으로만 여겨졌지만 요즘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며 “이중성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듯 듀얼 페이스폰의 댄스 플로어는 가상의 무대다. 박 대리는 “현실의 인물처럼 보이지 않는 마스크맨을 통해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임을 드러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듀얼 페이스폰 광고가 직접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 광고는 대중의 의식 속에 잠재된 이중성에 대한 갈망을 건드리고 있다. 광고의 무의식은 대중의 무의식을 반영한다. “Need something new?” 광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슬로건이다.
나의 이중성은 스타의 이미지로 변주된다. 최근 ‘공전의 히트’를 기록 중인 LG전자의 싸이언 아이디어(CYON idea) 광고가 대표적이다. 올 6월 론칭한 싸이언 아이디어 광고는 파격적인 티저 광고(Teaser advertising·후속광고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첫 광고)로 시작했다. 일단 대표적인 꽃미남, 꽃미녀 배우인 원빈과 김태희를 ‘너무 잘생기고 너무 예쁘지만, 유머감각이 없어 보인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스타의 멋진 이미지만을 강조했던 예전 광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솔직함’이다. 티저 광고는 원빈이 회전문에 머리를 부딪히고, 김태희가 형광등에 머리를 들이받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들이 만들어진 이미지를 깨고 일상의 모습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스타의 이중성은 카메라 앞의 이미지과 카메라 뒤의 일상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드러난다. 티저 광고에 이은 ‘연기력’편은 (가상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원빈과 김태희의 열애설이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방송에 나온 두 스타는 “오빠 동생 사이예요”라고 ‘뻔뻔하게’ 열애설을 부인한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화면이 바뀌면 싸이언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폰으로 방송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이 비친다. 원빈이 “얼굴 하나 안 변하고 어떻게 이렇게 연기를 해?”라고 핀잔을 주면 김태희도 “오빠도 데뷔 때 비하면…”이라고 무안을 준다. 알고 보면 웃기는 사람들, 재미있는 연인들이라는 것이다. 이제 철없는 연애가 이어진다. 원빈은 자장면을, 김태희는 스파게티를 먹자고 우기는 ‘메뉴’편 등 3편이 동시에 전파를 탔다.
스타의 내숭은 언제나 대중의 관심사다. 스타의 이중성을 ‘까발려서’ 자신의 평범함을 위안받고 싶어한다. 더구나 일상에서 이중생활을 몸소 체험하게 된 대중들은 스타의 이중성을 가지고 하는 ‘놀이’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 원빈과 김태희의 이중성은 진짜 이중성이 아니라 광고 속에서 ‘설정’을 하고 벌이는 일종의 게임이다. 그런데도 대중들은 흥미를 느낀다. 다큐멘터리 기법과 유머 코드는 현실감을 만들어내는 법칙이다. 황홍석 LG전자 홍보실 과장은 “리얼리티를 끌어내기 위해 모델들에게 상황만 설정해주고 마음대로 애드리브를 하게 했다”며 “현재 방영 중인 광고 내용의 90%가 임기응변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광고의 상황도 식사 메뉴를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등 현실의 연인들 사이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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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원빈의 임기응변, 옥주현의 고백
롯데리아 샐러드 샌드 광고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함으로써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일단 평범한 여자아이가 수영장에서 미끄러져 울고, 입가에 립스틱을 엉망으로 칠하고 웃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 위로 옥주현의 노래가 얹힌다. “호박 같은 내 얼굴~.” 그리고 장면이 바뀌면 날씬한 옥주현이 웃고 있다. 옥주현이 예전에는 지금보다 ‘안 예뻤다’는 사실을 솔직히 드러낸다. 물론 “나는 아직도 호박이다”라는 카피는 “예뻐지는 호박, 단호박 샐러드”라는 카피로 반전된다. 결국 칼로리가 적은 단호박 샐러드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으면 옥주현처럼 날씬해진다는 메시지다. 광고의 슬로건은 ‘Something new’. 이 광고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노력이 뒷받침되면 몸이 변한다는 ‘플라스틱 보디’의 욕망을 담고 있다. 얼굴이 힘들다면 몸이라도 달라지고 싶다(something new)는 욕망을 대변한다. 지금, 광고는 말한다. 다른 얼굴, 다른 몸으로 변하고 싶다고. 비록 ‘가상’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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