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김수남-최상일 ‘빛과 소리의 아시아’전과 ‘황규태, 1960년대를 보다’전
양떼 부르고 풀 베는 목소리와 장소음 2천개의 교배는 상상력 자극</font>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은 소리의 맛을 갤러리에서 느끼고 싶지 않은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한쪽에 있는 전시 공간은 ‘소리 전시실’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아마도 빛과 소리의 만남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동영상’이 떠오를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것의 가능성을 배제한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다. 소리 전시실에 들어가 잠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아시아가 보이고, 빛에 눈을 고정하면 아시아가 들린다. 마치 그림과 소리가 경계를 뛰어넘어 만나는 듯하다. 소리가 있는 사진전은 오감을 자극하면서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리와 빛의 현장으로 관객을 이끈다.
굿 사진가, 민요 전문 PD를 초대하다
김수남-최상일전 ‘빛과 소리의 아시아’는 발품에서 나왔다. 1970년대 새벽종이 울리면서 갈 곳을 잃은 우리 굿의 원형을 필름에 새긴 사진가 김수남씨와 15년 동안 사라져가는 소리를 채록한 문화방송 민요 전문 PD 최상일씨가 아시아 풍물 속으로 들어간 결실이다. 김씨가 아시아를 누비기 시작한 게 18년 전의 일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서구 문명의 꺼풀 속에 가려져 있던 아시아를 발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만난 소리꾼들, 잽이들, 춤꾼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아시아의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음악과 춤, 미술이라는 장르로 담아내기 역부족인 소리와 몸짓, 그림을 예사롭지 않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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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셔터를 누를 수가 없었다. 설령 춤꾼을 찍더라도 소리의 흐름을 알아야 다음 동작을 짐작할 수 있었다. 빛의 기록과 함께 소리를 채집해야 아시아의 원형에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김씨는 녹음기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구전민요를 채집해 CD와 자료집으로 남기던 최상일씨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했다. 그게 10여년 전의 일이다. 이내 최씨는 몽골의 호브드 두우트 초원에서 ‘양떼를 부르는 소리’와 입은 움직이지 않고 목청과 혀로 뱃속 깊은 곳에서 소리를 이끌어내는 ‘허미’에 마이크를 대고, 인도 라다크 사람들의 노동요 ‘풀베는 소리’와 ‘우유 젓는 소리’ 등을 담아냈다.
사실 김씨의 사진은 소리의 자리를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최씨가 마이크를 들고 들어가지 못한 지역의 빛을 담은 때문이다. 아시아 8개국 11개 문화권을 726장의 사진으로 보여준다. 소리를 만나지 못한 사진은 몸짓의 틈새로 강렬한 울림이 전해진다. 스리랑카 왈리가마 해변에서 장대에 매달려 물고기를 낚는 어부들은 생존의 신음 소리를 내는 듯하다. 이들은 지난해 3월 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갔을지도 모른다. 빛으로 새기지 못한 소리는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물론 전시장에 흘러나오는 아시아의 소리가 상상력의 촉매 구실을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시각과 청각으로 아시아에 손을 내밀도록 하는 ‘빛과 소리의 아시아’. 그것이 아시아의 현재를 통해 우리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면,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황규태, 1960년대를 보다’전은 콜라주한 우리의 과거 풍경으로 지구촌의 오늘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전시된 570여점의 사진 원본은 사진가 황규태씨가 1960년대에 생활 정경을 담은 것이다. 사진 속에는 대중적인 인물도 있고 광주리를 이고 가는 아낙네의 모습도 눈에 띈다. 그 모습은 본래의 이미지가 아니다. 황씨가 1990년대 후반부터 포토숍을 활용한 포토몽타주 작업을 해서 만든 작품들이다. 이들은 사진의 진화를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존 케이지의 ‘로라토리오’와 흑백 콜라주
그동안 전위적인 미술작업에 매달려온 황씨는 40여년 전의 흑백사진들로, 자신의 표현대로 ‘손장난’을 해서 ‘황규태 다큐멘트’를 탄생시켰다. 흑백사진을 크게 확대해 일부분만을 프린트한 것이다. 원래의 사진을 재료로 삼아 예술적으로 거듭난 다른 작품을 만들어낸 셈이다. 마치 사물이 전자현미경 속으로 들어가 전혀 다른 실체를 보여주는 것처럼. 사진평론가 이영준씨는 “한국의 예술사진은 재료를 너무 강하게 묶어두면서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그런 면에서 황씨의 작업은 신선하다. 자신의 작업이 또 다른 작업의 재료가 되면서 4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간단히 뛰어넘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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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황씨의 전시에서도 소리가 신선한 구실을 한다. 1960년대 흑백사진에서 오늘을 느끼도록 하는 데 미국의 퍼포먼스 연출가 존 케이지의 ‘로라토리오’(Roaratorio)가 한몫 거드는 것이다. 존 케이지는 청년 시절 선불교의 영향을 받아 듣는 이로 하여금 명상을 통해 열반 상태에 빠져들도록 한다. 로라토리오는 문명의 발달에서 비롯된 소음과 환경, 연주음 등 2천여개의 장소음을 채집한 음향 혼성교배 작품이다. 우연의 조작에 가까운 다성조의 콜라주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흑백사진 콜라주로 시대를 보여주면서 ‘음향짓’으로 의식의 교류를 시도하는 셈이다.
돌이켜보면 미술 전시장에서 소리를 경험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웬만한 전시장에 가면 작품 사이로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시장 배경 음악은 작품과 무연해 작품에 닿을 수 없었다. 때로는 작품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빛과 소리의 아시아’와 ‘황규태, 60년대를 보다’의 소리는 예사롭지 않은 시도라 할 수 있다. 소리 자체가 전시품 구실을 하면서 작품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까지 들려주기 때문이다. 빛과 소리의 합일을 통해 의식의 확장을 꾀하는 사진가들의 새로운 실험이 전시장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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