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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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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구기’ 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등록 2005-05-25 00:00 수정 2020-05-03 04:24

서울을 방문한 제3세계 작가들에게서 발견하는 한국문학 왜소증 컴플렉스의 치유단서

▣ 고영직/ 문학평론가

‘평화를 위한 글쓰기’(Writing for Peace)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은 한국 문학의 심화와 확장을 위한 문화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우리와 비슷한 식민 경험의 역사와 문화와 문명의 새로운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사례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무엇보다 케냐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는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응구기는 ‘언어’의 문제를 비롯해 다시-쓰기(re-write)라는 탈식민적 글쓰기의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사례가 될 듯하다. 응구기는 1977년에 발표한 <피의 꽃잎>(Petals of Blood) 이후 영어 글쓰기에 이별을 고한 뒤부터 모든 글들을 기쿠유어(혹은 규그어)로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베를린에서의 1884년 아프리카 대륙 분할은 유럽국가의 언어 분할을 따른 것”이라고 전제하고, 저 1970년대 치누아 아체베와 벌인 유명한 이식언어 논쟁에서 아프리카 작가의 영어 사용은 ‘문화적 노예화’의 증거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에 대해 아체베는 “아프리카 문학에서 영어의 위치는 뭐라 반박하기 힘든 어떤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을 수용했다.

케냐 작가 “영어는 흑인을 노예화한다"

선교사들이 세운 미션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영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응구기의 이러한 주장에는 영어가 식민제도를 운영하는 메신저 계급(중간 계급)을 양산하는 교육-기계가 되었다는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정신의 반식민지화’를 위한 실천적 운동을 적극 제기한 셈이다. 실제로 <아이야 울지 마라>(Weep Not, Child)에 등장하는 시리아나 고등학교에 대한 비판적 태도는 흑인들이 교육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을 강력히 역설한다. 작중인물 은조로게는 백인들의 문명을 모방하고 이를 소중히 하도록 학생들을 교육하는 시리아나 학교에서 ‘내일이면 밝은 태양이 솟아오를 거야’라는 꿈을 품지만, 그것은 제국주의자의 ‘문화폭탄’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철저히 깨닫게 된다. “난 이제 모든 것을 잃고 말았어. 교육도, 신념도, 가족도 모든 것을 다 잃었어.” 그 뒤 응구기는 프롤레타리아의 구전 전통에서 혁명적, 반항적 기초를 찾아야 한다는 글쓰기 전략으로 나타났다. 에드워드 사이드 식으로 말하면, 식민지에서 해방된 시대의 현실적인 잠재 가능성을 의식한 글쓰기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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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구기는 여전히 이야기, 노래, 속담 등 구전 전통을 활용해 독립 이후 아프리카 민중들의 사회적 저항, 정치적 선동, 정치적 단합을 꾀하는 민중적 다성성(多聲性)의 글쓰기를 전투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는 <탈식민주의와 아프리카 문학>(인간사랑, 1999)이란 평론집에서 <피의 꽃잎>에선 플래시백과 다성성, 시간과 공간의 이동, 그리고 전기와 이야기의 병렬 배치 등의 기교를 심화시켰는가 하면, 한국 김지하 시인의 <오적>과 <비어>의 풍자미학을 습득해 <십자가 위의 악마>라는 장편소설을 썼노라고 진술했다. 비록 한국의 상황과 처지는 좀 다르지만, 식민 경험을 넘어 신식민지의 역사현실에 예각화된 문제의식을 표현하고 있는 응구기의 글쓰기는 한국 문학에서 (재)식민화에 관한 중요한 통찰의 사례로서 읽혀야 마땅할 것이다.

한편 응구기 와 시옹오는 이번 방한 기간에 영화감독 졸라 마세코(남아공), 소설가 미아 코토(모잠비크) 등 10여명의 아프리카 예술인들과 함께 아프리카문화연구소(공동대표 이석호·김영수) 주최로 한신대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문학 심포지엄’에 참석해 은희경, 김형수, 김재용 등 한국 작가들과 탈식민주의에 관해 토론을 벌이게 된다.

오르한 파묵·세풀베다·모옌과의 연대

응구기 와 시옹오의 글쓰기가 저항적 글쓰기를 보여준다면,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과 칠레 출신의 작가 세풀베다 그리고 중국 작가 모옌 등은 민주주의와 독재 체제를 경험한 국가들이 처한 오늘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한다. 이번 포럼의 주제가 ‘평화의 세계공동체(World Community)’를 향한 모색이라고 할 때, 시장과 전쟁이라는 폭력적 시스템에 의해 구축되고 있는 근대 체제에 대한 다양한 글쓰기의 유형을 잘 보여준다. 국내에 출간된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민음사, 2004)은 최근 국내에서도 고고학과 회화 등 지식과 정보의 결합에 의한 문학적 글쓰기의 성공적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서양 세계 밖의 과격한 민족주의, 즉 ‘우리주의적 분노’로 인해 ‘영구적 평화’가 실현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한 파묵의 지적은 동서 문명(문화)의 교류 속에서만 문명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역시 국내에 막 소개된 칠레 출신의 망명작가인 세풀베다의 <소외>와 <핫라인> 또한 피노체트 독재 경험에 맞선 자의 실존적 소외가 빚어낸 망명문학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독재 이후 칠레 사회에 일상화된 사회악을 고발하고 있는 <핫라인>은 민주화 이후 ‘정상성에 대한 저항’(조희연)을 미시적 차원으로까지 육화해야 할 한국 사회에서 매우 의미 있는 상상력의 연대라고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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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문학은 정치를 위해 일을 한다’는 사슬이 풀리면서, 진정한 의미의 중국 당대문학은 시작되었다”라고 한 <붉은 수수밭>의 작가 모옌의 발언은 동아시아 지역문학의 공통 경험으로 확장되어 논의될 여지를 남긴다. 이 밖에 한국전쟁 당시 북쪽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헝가리 작가 티보 머레이, 김남주 시집 번역에 참여한 노르웨이 시인 에를링 키텔센 등은 ‘세계문학’이란 이름의 옥시덴탈리즘에 중독된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매혹의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금, 여기의 한국 문학은 혹시 ‘왜소증’이란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2002년 문학서적 신간 발행종수의 경우 1996년에 비해 16.3%가 감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문학이 과연 문학 독자층의 이탈이라는 계량적 측면에만 문제가 있다고 전가할 수 있을까. 다문화 세계를 살아가는 한국의 작가로서 우리네 경험을 어떻게 글쓰기를 통해 보존하고, 세계와 더불어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문학제도의 안과 밖을 동시에 재성찰하는 계기가 필요하다. 이번 서울국제문학포럼의 경우 유럽과 미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글쓰기 경험들은 다원적 보편주의를 향한 세계 공동체 건설을 위해 의당 주목해야 할 가치 지향을 내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문화의 교류 속에서 한국 문학의 외부성을 확장하고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모색들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 문학은 왜소증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에 겐자부로, 인터넷 생중계로 본다


세계적 작가들의 토론 13가지가 준비된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은 5월24일부터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평화를 위한 글쓰기’라는 주제로 열린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원장 현기영)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포럼은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해 게리 스나이더, 르 클레지오, 응구기 와 시옹오 등 세계적인 작가 20여명이 참가해 갈등과 전쟁을 넘어 평화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가슴을 맞대고 문학 담론을 펼친다. 한국쪽에선 고은, 백낙청, 황석영 등 60여명이 참여해 토론을 벌이며, 포럼 전 과정은 서울국제문학포럼(위원장 김우창) 홈페이지(www.seoulforum.org)에서 인터넷 생중계한다(아래 일정 참조). 마지막 날인 5월27일엔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를 찾아 세계 평화를 위한 ‘서울평화선언’을 채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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