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가족영화의 새꼴 보여준 <안녕, 형아>와 <말아톤>
‘천형’ 소재의 아슬아슬한 함정 잘도 피했네</font>
▣ 변성찬/ 영화평론가
최근의 한국 영화가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가족 영화’가 뚜렷한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2~3년 전 이상하리만치 철저하게 서사적으로 ‘가족’을 배제하고 있는 특정 장르의 영화들이 스크린을 장악했던 현상과 비교해보면, 그것은 분명 작지 않은 변화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위기(해체 또는 의미 변화)’가 그만큼 빨리 진행 중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일 수도 있고, 한국 대중영화의 대응 전략이 특정 세대에서 온 가족을 겨냥하는 것으로 변화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건, 그것은 하나의 ‘징후’임이 틀림없다.
정글은 초원이었다! ‘객관’의 놀라운 전환
올해 초에 개봉해서 기대 이상의 흥행 결과를 보여주었던 <말아톤>과 개봉을 앞둔 <안녕, 형아> 역시 가족 영화의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영화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두 영화는 다른 가족 영화와 구별되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다. 두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실화’를 모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영화는 모두, 평범한 한 가족에게 어느 날 ‘천형’처럼 던져진 ‘선고’를 그 출발점으로 한다. 자폐아와 소아암. 그것은 어느 정도의 대중적 공감과 감동이 보장되는 좋은 ‘소재’일 수도 있지만, 많은 텔레비전 드라마가 그렇듯 쉽게 극적 장치로 이용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그 현실적인 소재는 극영화로서는 기회일 수도 함정일 수도 있다. 두 영화는 소재주의적 드라마와도 휴먼 다큐멘터리와도 구별되는 영화적 방법을 찾아야 할 과제를 안고 출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 영화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슬아슬한 균형 잡기에 성공하면서 나름의 영화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흔한 ‘가족주의’ 영화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두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저마다 다른 세계이기도 하다.
[%%IMAGE1%%]
<말아톤>에서 ‘병이 아니라 장애’인 자폐아 선고를 받은 초원이로 인해 엄마에게 그때부터 세상은 ‘정글’이 된다. 장애란 결국 ‘약이나 수술로 치료할 수 없는’, 평생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짐의 다른 이름이다. 초원이와 초원이 엄마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그 짐을 안은 채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었다. <말아톤>은 객관적인 시점으로 이 두 모자의 분투와 성장의 과정을 뒤쫓는다. 이 영화의 시점은, 세상과 두 모자 사이에, 더 정확하게는 초원이와 초원이 엄마 사이에 놓여 있다. 이 영화의 힘은, 그 사이에서 펼쳐 보이는 놀라운 시점 전환의 드라마에서 나온다.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 있는 초원이의 세계는 엄마조차도 ‘그 속을 알 수 없는’ 절대적 고립의 세계이고, 엄마의 고통과 좌절의 원인은 바로 그 근본적인 소통 불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엄마를 포함한 영화 속의 인물들은 끝내 초원이의 진짜 속내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초원이가 달려낸 곳이 온갖 위험과 장애물이 놓인 ‘정글’이 아니라 드넓은 초원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초원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얼룩말과 함께 초원을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관객인 우리 자신뿐이다. 엄마의 눈에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가득 찬 정글이 사실 초원이에게는 드넓은 초원이었을 뿐이라는 가정법. 이 놀라운 시점 전환의 순간은, 이 영화가 흔한 가족 영화이기를 넘어서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보이는 초원이의 모습에서 초원이가 바라보는 세상으로의 극적인 시점 전환을 통해,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습적 시선에 강한 문제 제기를 한다. <말아톤>의 세계는 좁게는 ‘장애의 윤리학’에, 넓게는 ‘타자의 윤리학’에 맞닿아 있다.
동생 한이의 입을 빌린 철저한 ‘주관화’
<안녕, 형아>가 대면하는 현실은 장애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어린 소아암 환자의 문제다. 이 영화가 그러한 현실이 가져다주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한숨의 인력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철저한 주관화의 방법이다. 영화는 당사자인 형 한별(서대한)이나 그 선고를 현실적으로 감내해야 할 부모의 시선이 아니라, 철저하게 동생 한이(박지빈)의 시선을 빌려 ‘그 일’을 바라본다. 영화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영화의 발화 주체는 동생 한이인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9살 한이가 바라보는 세계로 빠져든다. 학원을 빼먹고 집에서 놀고 있던 한이에게 엄마가 열고 있는 문은 실제보다 훨씬 커 보이고, 형을 낫게 해주고 싶은 간절한 한이의 바람은 타잔 아저씨의 물을 마법의 약으로 만든다. <안녕, 형아>는 동생 한이의 시점을 통해 ‘슬픔에서 희망’을 발견하려 하는 진심으로 가득하며, 아픈 현실을 따듯하게 위로한다. 하지만 한이의 마법적 세계는 냉엄한 현실에서 끊임없이 위협받는 가냘픈 세계이기도 하다. 치료비로 빠듯해진 가계부를 놓고 한숨짓는 엄마의 모습과 한별이의 죽음과 장애인으로서의 생존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부모의 모습은, 마법적 세계 안에 놓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안녕, 형아’는 죽어가는 다른 소아암 환자 욱이가 살아남은 한별이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시각 장애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형 한별이를 맞이하는 동생 한이의 인사이기도 해야 할 것이다. <안녕, 형아>의 세계가 끝나는 그곳에서, <말아톤>의 세계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검찰,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이재명 대표 부부 기소 가닥
“경기도 국감서 성남시장 의혹 해명, 유죄”…이재명 1심이 놓친 것
명태균 “김건희에 전화, 대선후보 비서실장 윤한홍 임명 막았다”
소나무 뿌리에 송이균 감염시켜 심는 기술로 ‘송이산’ 복원
“그런데 김건희·윤석열은?”…민주, 이재명 1심 뒤 ‘김건희 특검법’ 공세
‘디올백 사과 의향’ 질문했다더니…박장범 “기억 오류” 말 바꾸기
[사설] 거짓 해명에 취재 통제, ‘대통령 골프’ 부끄럽지 않은가
‘노량진서 회 싸게 먹는 꿀팁’, 이를 막으려던 상인회…그 ‘비극적’ 결말
‘미정산 사태’ 구영배 큐텐 대표·티메프 경영진 구속영장 모두 기각
한국인이 쓸어 담은 ‘스웨덴 캔디’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