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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문근영을 질투할 것인가

등록 2005-05-05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한민국을 쩔쩔매게 하는 ‘국민 여동생’… 그 소녀의 아름다운 아우라를 말한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문근영의 필모그래피는 길지 않다. 아니 매우 짧다. 영화는 4편, 드라마 3편. 겨우 7편의 작품으로 문근영은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다. 단순한 인기 배우를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2003년 <장화, 홍련>의 수연, 2004년 <어린 신부>의 보은, 2005년 <댄서의 순정>의 채린까지,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배우 문근영뿐 아니라 자연인 문근영의 성장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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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이기에 가능했던 교복 광고

열일곱의 상처받은 소녀에서, 열여덟의 철없는 신부로, 열아홉의 순정한 여인으로 성장하는 문근영을 지켜보면서 심지어 마음까지 졸인다. “우리 근영이가 잘 커야 할 텐데….” 요즘 대한민국 ‘오빠’들의 근심이란다. 문근영은 이처럼 선망의 스타가 아니라 살가운 동생 같은 이미지로 사랑받고 있다. 오죽하면 배우 차태현은 “문근영은 국보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고, ‘연예인 X파일’은 그를 “무결점 소녀”로 칭찬했고, ‘국민 여동생’은 그의 별명이 됐겠는가? 문근영에게는 “안성기 이후 최초로 안티가 없는 배우”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10대 소녀들이 주력부대를 차지하고 안티가 주요한 코드로 자리잡은 팬덤 문화에서 10대 여배우에게 안티가 없다는 것은 대단한 이변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범국민적 차원으로 문근영의 매력에 “빠져~ 빠져~”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근영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가장 예쁘지는 않지만 가장 사랑스럽다. 특히 친근감을 주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말간 눈망울은 묘한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그 매력은 10~20대 오빠들에게만 통하지 않는다. 또래의 여고생들조차 친해지고 싶은 친구로 느끼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부모들은 문근영에게서 선망하는 자식의 모습을 발견한다. 아무도 문근영을 질투하지 않는다. 문근영은 지난해부터 교복광고에 출연 중이다. 여고생들의 우상인 신화 ‘오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은 만약 다른 여고생 스타가 연기했더라면, 무수한 안티를 만들어냈을 법한 구도다. 하지만 ‘문근영’이기 때문에 안티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껏 교복광고는 HOT, 신화, 동방신기로 이어지는 10대 가수, 남자 가수들이 독점해왔다. 당대의 10대 여고생에게 누가 가장 있기 있느냐를 증명하는 바로미터였기 때문이다. 여성모델은 대개 무명이었다. 여고생들의 ‘질투’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교복모델을 문근영은 한다. 영화에서도 교복을 입고 깻잎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내리는 얄미운 장면을 연기해도 도무지 밉지가 않다. 모두가 문근영을 사랑하고, 아무도 문근영을 질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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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천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TTL 소녀 임은경만큼 신비롭고, 장나라만큼 깜찍하고, 전지현만큼 여성스러운 문근영 앞에 대한민국이 쩔쩔매고 있다. 천개의 얼굴로 천개의 광고를 할 수 있다. 사실 문근영을 키운 것은 절반이 광고였다. 광고에 딱 맞는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에 다양한 얼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세상 모르는 소녀에서 슬쩍 섹시한 여인까지 다양한 이미지가 문근영 안에 있다. 그리고 무엇을 연기해도 기품이 서려 있다. 문근영은 쉬는 동안 오히려 컸다. 광고의 힘이다. 문근영이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동안에도 우리는 언제나 문근영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KTF 비기 광고에서 중학생처럼 깜찍을 떨었다가 교복 아이비클럽에서 여고생처럼 발랄해졌고 화장품 보브로 슬쩍 어른스러워졌다. 영화가 해마다, 텔레비전이 날마다 문근영의 성장을 생중계한다. 문근영은 과속하지 않았다. 광고와 영화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서서히 확장해왔다. 그것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가 갑자기 멈추었던 장나라의 인기와도 다른 양상이다. 문근영은 볼수록 빠져드는 그의 눈망울처럼 서서히 대중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 이효리와 투톱으로 애니콜 광고에 나선다.

아직 섹시해서는 안된다?

문근영에게는 아름다운 아우라가 있다. 이미지 메이킹이 목적이 아니었다 해도, 문근영의 끊임없는 기부 소식은 문근영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시키고, ‘다른’ 존재로 부각시켰다. 더구나 외할아버지가 장기수 출신이라는 각별한 가족사는 문근영의 ‘똑똑한’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학생 신분을 강조하는 부모의 보호 덕에 노출이 심하지 않아 쉽게 소모되지도 않았다. 문근영의 이미지는 예쁠 뿐 아니라 똑똑하고 예의 바르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국 사회는 두어해 전부터 공부 잘하는 연예인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왔다. 배우 김태희의 인기에도 그의 학벌이 힘이 됐다. 더구나 성인 스타의 학벌은 별로 문제 삼지 않지만, 하이틴 스타에게는 공부 잘한다는 미덕이 중요하다. 대중에게 보아의 뛰어난 외국어 능력은 보아의 비범함을 증명한다. 자연인 문근영의 이미지는 영화배우 문근영에게 투사된다. 문근영은 모범소녀 이미지를 재현한다. 이제 문근영은 차태현의 바람대로 “보호받아야할 천연기념물”이 됐다. 예컨대 <댄서의 순정>에서 돈과 권력으로 채린을 가로챈 현수(정찬)가 문근영을 ‘범’하(려)는 장면이 나와야 개연성이 있지만, 영화는 그 개연성을 무시해버린다. 문근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저 현수의 입을 빌려 “프로페셔널” 운운하며 사적인 감정이 없어도 댄스의 호흡을 맞출 수 있다고 강변한다. 스크린 속에서조차 문근영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근영의 모범생 이미지는 퇴행적이지 않다. 단순히 말 잘 듣는 소녀가 아니라, 똑 부러진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 의지대로 삶을 밀고 나갈 것 같은, 21세기형 모범생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또래는 닮고 싶어하고, 어른들은 닮았으면 한다. 여전히 모범생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는 모범소녀에 열광한다. 문근영은 또래의 이상형이면서 어른들의 이상형이라는 기묘한 접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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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은 어른들을 안심시킨다. 나이주의 붕괴의 공포를 달래준다. 한국의 어른들은 오매불망 자식의 탈선에 걱정이다. 어른들의 나이주의 공포는 원조교제 여고생이라는 우리 시대 마녀의 이미지로 대표된다. ‘타의 모범이 될 만한’ 문근영의 이미지는 어른들을 원조교제의 공포에서, 반항의 공포에서 해방시켜준다. 문근영은 아직 섹시해서는 안 된다. 대중의 기대에 따라 문근영은 ‘무성’의 이미지로 남아 있어야 한다. 실제 <댄서의 순정>에서도 체육복을 입은 문근영은 여전히 여인보다는 소녀에 가깝다. <댄서의 순정>이 그림 좋은 춤 장면마저 과감하게 삭제한 것은, 문근영의 섹시함이 도를 넘어서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팬들은 문근영의 댄스 의상에 “왜 저렇게 노출을 시켰느냐”고 항의한다.

조디포스터냐, 주디 갈란드냐

문근영은 한국 영화의 성숙을 상징한다. 어쩌면 한국 관객들은 문근영을 통해 처음으로 한 배우의 성장과 부침을 지켜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문근영에 비견될 만한 전지현은 이미 성장한 다음에 성공했다. 하지만 문근영은 성장하면서 성공했다. 배우와 함께 성장하고 늙어가는 것은 팬들에게는 각별한 경험이다. 하지만 문근영이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연인’으로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할리우드에는 조디 포스터와 주디 갈런드라는 엇갈린 10대 스타가 있었다. 조디 포스터는 <택시 드라이버>에서 10대 매매춘 여성으로 인상적인 데뷔를 한 뒤, 20대에 <양들의 침묵>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30대인 지금도 지성파 배우로 건재하다. 하지만 주디 갈런드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역으로 10대 아이콘으로 떠올랐지만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하는 데 실패했다. 주디 갈런드는 아직도 영원한 도로시로 남아 있다. 지금 문근영 앞에 조디 포스터의 길과 주디 갈런드의 길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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