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영화] 조선시대의 ‘세븐’

등록 2005-05-05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외딴섬에서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국적불명의 스릴러 <혈의 누></font>

▣ 이종도/ <씨네21> 기자 a href=mailto:nacho@cine21.com>nacho@cine21.com

[%%IMAGE1%%]

청일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가 당대의 살림살이와 거리가 먼 로망이듯이, 김대승 감독의 <혈의 누>도 배경인 1808년의 역사성에 큰 관심이 없는 이야기다. 흰 가면을 쓰고 말을 탄 채 권총을 쏘는 범인의 이미지는 이 작품이 역사적 고증엔 관심이 없음을 보여준다. 고비마다 흐르는 라흐마니노프의 선율도 이 작품이 조선후기적 분위기보다는 국적불명의 기품 있는 미스테리 스릴러에 더 관심이 많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게 무어 흠이랴. 권총과 라흐마니노프가 폼으로 그치지 않고 작품 짜임새를 팽팽하게 당기면 되는 것 아닌가. 감독은 혹시 나올 이런 빈정거림에 대비한 것인지, 당쟁과 이윤을 둘러싼 초기 자본주의의 노사 갈등을 촘촘하게 끼워넣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독의 내심은 말 타고 달리는 흰 복면의 사내, 말 타고 벌이는 추격전 등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 그것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 말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19세기 외딴섬 동화도는 조선후기의 섬이라기보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수도원(<장미의 이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연쇄살인의 내용도 <장미의 이름>이나 <세븐>처럼 일관된 고리로 연결된다. 닷새간 차례대로 일어나는 효시(주검의 전시), 육장(삶기), 도모지(한지로 질식사시키기), 석형(돌담에 머리 깨 죽이기), 거열(마소로 사지를 찢어 죽이기)의 연쇄살인 방법은 서양식 연쇄살인의 말쑥한 번역이 된다. 흥미로운 살인범, 그리고 이를 차가운 이성과 놀라운 직관으로 잡아내는 수사관(차승원)이란 플롯이라. 얼마나 거절하기 어려운 매혹적인 제안인가.

스크린을 채우다 못해 흘러넘치는 과잉의 이미지는 호기심 당기는 플롯과 상승작용을 벌인다. 불타는 배, 모던하기 짝이 없는 무당이 집전하는 굿판, 놀라운 살인의 기예(특히 유해진이 살해당하는 방법)는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잘 쓰지 않는 예스러운 말투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의 실타래는 오히려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차승원의 딱딱하게 경직된 표정은 흠이 되기보다는, 사건의 심각함에 대한 정직한 반응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상승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잉도 있다. 억울하게 죽는 강객주(천호진)의 거열형은 장철 감독의 <십삼태보>보다 훨씬 과격해 마치 스크린이 찢어지는 것 같다. 격렬하게 몸부림치는 닭의 목을 연달아 치는 닭 잡는 장면, 하늘에서 피눈물(혈의 누)이 떨어지는 장면은 피로 흥건하다. 그러나 이렇게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는 건 큰 미덕이다. 어정쩡하게 타협하지 않고, 인간 내부의 탐욕을 극적인 이미지로 전환한다. 놀라운 돌파력과 집중력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이미지의 매혹으로 눈을 끈 뒤, 추리극으로 두뇌싸움을 걸고, 아껴두었던 질문을 마지막에 던지는 도덕극이 된다. 피칠갑을 한 매혹적인 그림첩은 이렇게 묻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 줄 아니? 물론 그 답은 여기에서 찾을 게 아니라 극장에서 찾을 일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