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드러나는 장애인 차별… 특히 드라마에서 ‘갈등제공자·의존적 인물’로 잘못 그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모자란 자식 남한테 어떻게 맡기고….” “모자른 자식의 부모는 부모도 모자를 수밖에 없는 거야.”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의 시어머니가 발달장애(자폐) 아들을 둔 며느리에게 하는 대사다. 이 드라마의 친정어머니는 발달장애 손자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딸을 보면서 “저 녀석만 아니면…”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물론 드라마의 맥락이 있기는 하지만 대사만 놓고 보면 명백한 장애인 차별 발언이다.
미담중심 뉴스·희화화하는 개그도 문제
한때 드라마에 장애인 여주인공이 단골로 등장한 적도 있다. 지난해와 올해 방송된 <불새> <슬픈 연가> 등이 대표적이다. <불새>의 지체장애 장애여성은 비장애남성에게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는 캐릭터였다. <슬픈 연가>의 여주인공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여주인공이 눈을 뜨고 싶어하는 단 한 가지의 이유는 사랑하는 비장애남성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로 ‘설정’됐다. <봄날>의 여주인공도 실어증을 앓았다. 이처럼 최근 멜로드라마에서 장애는 주인공들의 사랑을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장치로 ‘남용’되고 있다. 또 장애가 여성에게만 부과됨으로써, 장애여성이라는 약자는 비장애남성이라는 강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편견을 강화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장애인의 날을 앞둔 4월18일 ‘방송에서의 장애인 차별 실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비장애인 시청자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방송의 장애인 차별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애인의 방송 출연 빈도에 대해 73.3%의 응답자가 ‘아주 적거나 적다’고 응답했고, 4.4%만이 ‘많다’고 대답했다. 일단 장애인의 존재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장애인을 가장 많이 본 장르는 뉴스·시사프로그램 59.6%, 교양 57.1%, 드라마 30.8% 순서였다. 하지만 뉴스·시사프로그램이 장애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도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렇지 않다’가 37.5%인 반면, ‘제대로 되고 있다’는 14.1%에 불과했다. 실제 올 1~3월 뉴스·시사프로그램 속 장애인 보도의 주제별 분류를 보면 미담 보도 22.7%, 단순 사건사고 보도 20.1% 순서였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아직도 장애인을 시혜적 관점으로 보거나 ‘인간승리’류의 장애극복담으로 미화하는 등 여전히 편향된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드라마의 장애인 차별 시각은 더욱 심각했다. 보고서를 보면, 장애인의 이미지에 대해 보도·시사 분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46.7%였으나 드라마에서는 84.4%로 두배나 높았다. <부모님 전상서>처럼 장애인을 가족간 갈등의 원인 제공자로 묘사하거나 <슬픈 연가>처럼 장애여성을 의존적인 존재로 그리는 한계도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장애인의 등장 빈도가 낮아 아예 장애인의 존재가 ‘지워져’ 있다. 더구나 일부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장애인 비하를 웃음의 소재로 남용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장애인 비하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장애인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낮은 형편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장애인을 희화해 웃음을 만들어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영국 BBC는 의무 할당제 도입
박성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는 “장애인 차별에 대한 방송심의 제재기준을 구체화하고 방송 관련 위원회에 장애인 참여를 보장하는 등 제도 정비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영국의 <bbc>처럼 모든 프로그램에서 일정 비율 이상으로 장애인을 등장시키는 것을 의무화하는 장애인 할당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지상파, 케이블 방송 등 모든 방송매체에서 장애인 문제에 집중해 제작하는 프로그램은 한국방송 <사랑의 가족>, 교육방송 <희망풍경> 단 두개뿐이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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