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에게 미안하지만 요정같은 움직임만이 눈에 밟히는 영화 <댄서의 순정>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댄서의 순정>에서 우리로 말하면 ‘70년대 스타일’의 옌볜 중학교의 ‘촌발’ 날리는 녹색 교복을 문근영이 입고 나오는 순간 영화는 끝난다. 물론 진짜 끝난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미운 옷을 입고도 이렇게 예쁜 문근영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깜박거릴 때 줄거리나 영화적 완성도 같은 건 다음 이야기, 아니 필요 없는 이야기가 된다. 감독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은 조바심 나는 표정 하나, 생긋한 미소 한 조각까지 그 존재감이 너무 커서 이 외의 모든 것을 하찮아 보이게 한다. 이런 사태는 문근영 자신이 가장 원하지 않는 바겠지만 어쩌겠는가. 문근영은 이제 모두가 궁금해하고 모두가 기다리는 최고의 스타가 돼버린 걸 말이다.
<댄서의 순정>은 문근영의 영화지만 기대 밖의 폭발력을 보여주면서 문근영을 등급을 망라해 최강으로 띄운 <어린 신부>와는 다른 영화다. <어린 신부>가 “요, 귀여운 것”의 극대치를 보여준다면 <댄서의 순정>은 성인의 문턱에 들어선 여성 캐릭터를 통해 소녀에서 처녀로 부쩍 성장한 문근영을 보여준다. 열아홉살의 채린은 언니의 여권으로 몰래 한국에 들어온 인물. 댄스스포츠 선수인 언니는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근신 중인 영새(박건형)의 파트너로 초청받았다. 그러나 중학교 때 집단체조를 한 게 춤 이력의 전부인 채린은 초청했던 영새의 선배에게서 쫓겨나고 가리봉동 클럽에 팔려가려는 순간 마음 약한 영새의 구조로 돌아오고, 영새와 춤연습을 시작한다.
<댄서의 순정>에서 문근영은 <어린 신부>에 이어 다시 면사포를 쓴다. 하얀 드레스는 문근영을 인형처럼 예쁘게 보이도록 한다. 물론 그렇다고 보통의 신부가 되는 건 아니다. 보은(<어린 신부>)이나 채린이가 결혼을 했다고 남자와 동침을 하거나 하다못해 키스를 하는 건 관객을 실망시키기 충분한 일이고, 상업영화에서 관객이 가진 스타 이미지를 훼손하는 건 금기 중의 금기다.
몇달 동안 불철주야 춤연습을 한 채린은 불행히도 먼젓번 영새의 파트너를 뺏어갔던 경쟁자의 손을 잡고 선수권대회에 나가게 된다. 이 장면에서 비현실적인 발레 동작의 짧은 순간을 제외한 모든 춤을 완벽하게 소화한 문근영을 보면 관객은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근영이가 춤도 잘 추네.” 마음속의 순정을 배반한 채 춤추는 순간만은 악랄한 경쟁자를 사랑해야 하는 채린의 슬픔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배우의 연기력을 탓할 수 없다. 이미 많은 관객에게 춤추는 문근영의 요정 같은 움직임만이 관심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클라이맥스 장면까지 문근영의 매력과 무던한 스토리로 이어가던 영화는 뒷부분부터 삐끗하기 시작한다. 화려한 모피와 묵직한 귀걸이로 꾸민 문근영이 성인 여성의 매력에 다가가기 역부족이듯, 문근영의 예쁜 눈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만으로 상처받은 순정의 아픔을 기나길게 이어가려는 욕심도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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