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의 법칙’으로 본 인기드라마 광고 잡기, 그 희로애락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주차장의 좋은 자리는 항상 차 있다. 가끔 빈자리가 생겨도 금세 차버린다. 자세히 둘러보면 비어 있는 사각지대가 있긴 하지만 남들이 꺼리는 그 자리는 나도 들어가기가 싫다. 일명 주차장의 법칙. 짝을 찾지 못한 전세계 미혼 남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 법칙은, 어쩌면 광고시장의 냉혹한 논리에 더 어울릴지 모른다.
한국방송의 연쇄드라마 대박 사건 뒤…
요즘 잘나가는 자리는 단연 한국방송 드라마들이 내놓은 자리다. 연일 30% 이상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수목드라마 <해신>, 주말연속극 <부모님 전상서>에 광고 한번 붙이고 싶은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좋은 자리는 한정돼 있고, 줄서서 기다린다고 떨어지지 않는다.
기업들의 소망을 한 보따리 짊어지고 나선 ‘프로그램 사냥꾼’은 각 광고회사의 전파매체 담당자들. 광고대행사 오리콤의 매체본부 이상경씨도 매일같이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 자리잡은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드나들기 바쁘다. 방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방송광고의 영업을 대행하는 이곳에서, 광고따기 각축전이 벌어진다. “3월이 지나면서 광고가 늘고 있어요. 5월엔 최대 물량이 될 듯하네요. 그만큼 더 잡기 어려워지는 거죠.”
이상경씨는 한국방송을 담당하는 영업1국에 주로 드나들기에 ‘한번만’을 요청하는 사내 광고기획자들의 부탁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눈치 작전, 애원 작전이 시작된 게 벌써 6개월이 된 거 같네요.” 지난해 6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드라마 4편의 시청률을 합해야 고작 20% 안팎이었던 한국방송의 사정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오! 필승 봉순영> <미안하다, 사랑한다> <쾌걸춘향> <열여덟 스물아홉>으로 이어지는 월화 라인, <꽃보다 아름다워> <풀하우스> <두 번째 프러포즈> <해신>의 수목 상승세, <애정의 조건>을 이은 주말연속극 <부모님 전상서>의 대박. 한국방송 드라마 전성시대다.
절정은 주말연속극 <부모님 전상서>의 18회 연장 결정. 수익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초기 제작 자본을 투여해야 하는 드라마의 성격상 ‘연장 방송’은 광고 완판(완전판매)이 눈에 어른거리는 방송사에 강한 유혹임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부모님 전상서>의 연장 방영이 안겨줄 ‘확신’의 예상 광고매출이 추가적으로 얼마가 되는지 꼽아보자면, 대략 28억원이 넘는다. 저녁 7시55분부터 8시55분까지 1시간 방영되는 이 드라마에 할당된 주차공간은 24개다. 방영시간 60분의 10%에 해당되는 6분이 광고시간으로, 15초 광고물이 24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기업마다 15초간 한번 떠드는 데 1161만원을 지불해야 하므로, 한국방송이 회수하는 드라마 회당 주차비는 24개×1161만원, 18번 회수하니 다 합쳐 2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덤으로 단가가 300만~400만원에 달하는 재방송 광고가 있어, 결과적으로 작가료·출연료 등을 제하고도 짭짤하게 한몫 잡는 셈이다.
물론, 이렇게 좋은 자리는 아무에게나 내줄 수 없다. 선착순도, 로비도 쉽게 통하지 않는 세계다. 방송광고공사 영업1국의 회의를 통해 한국방송에 배당한 총광고비가 많은 기업부터 적절히 안배한다. 이진영(오리콤 매체본부)씨는 “광고주가 제발 <해신> 한번 나가게 해달라고 해도 광고비가 많지 않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여긴 말 그대로 규모의 경제논리를 따르기 때문에 돈을 많이 쓸수록 좋은 자리가 돌아간다”고 한다. 광고가 상업주의,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가 달리 있지 않다. 막대한 광고비가 잘게 썰려 소비자가에 전가된다는 사실도 <부모님 전상서>의 대박에 즐거워하는 방송사와 이에 매달리는 기업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고질적인 연장 방영이 줄거리를 망친다고 일부 시청자들이 비난하지만, 이 문제도 거대자본의 순환에 가려진다.
과시욕과 수집욕의 접점, 광고시장
기업의 과시욕과 그런 과시욕을 긁어모으는 방송사의 수집욕은 상반되기는커녕 연속성을 가지고 중첩되기에, ‘시장’은 팽창되고, 세상은 광고에 잠식되기 쉽다. 이런 가운데 작가와 연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 마저 무심히 바라보며 무대 뒤에서 ‘광고, 삶의 현장’을 찍느라 바쁜 광고인들의 고군분투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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