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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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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느슨한 두번째 도둑질

등록 2005-01-06 00:00 수정 2020-05-03 04:23

배가 산으로 가도 상관없는 매력적인 오락거리 <오션스 트웰브>

▣ 김도훈 기자/ <씨네21> groove@cine21.com

<오션스 트웰브>를 보는 것은, 이를테면 빈틈없는 장인의 손으로 세공된 화려한 상자를 구입하는 것과도 같다. 무언가를 채워넣을 수 있는 상자로서의 쓸모는 없지만, 그 상자의 세공이 너무 멋져서 쓰임새에 관계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 전작인 <오션스 일레븐>은 날렵했던 케이퍼 무비(Caper Movie·가볍고 유쾌한 범죄 영화)의 충실한 미덕을 지닌 쓸모 있는 상자였다. 그러나 감독인 스티븐 소더버그(<트래픽> <에린 브로코비치>)는 <오션스 일레븐>의 충실한 후속편을 만들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전작으로부터 3년. 카지노 보스인 테리(앤디 가르시아)로부터 1억6천만달러를 훔쳐낸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일당은 각자 분배받은 몫을 유쾌하게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테리는 그들을 한명한명 추적해 덜미를 잡고, 11명의 도둑은 강탈한 돈에 이자까지 쳐서 되갚아야 하는 신세가 된다. 문제는 주어진 기한이 단 2주라는 것. 11명의 일당은 빚을 갚기 위한 한탕을 위해 유럽으로 건너간다. 부드러운 달빛 아래서 춤을 추는 듯 세심한 도둑질의 공정을 보여주었던 <오션스 일레븐>과 달리, 이들의 한탕은 계획대로 풀려가는 일이 없다. ‘괴도 루팡’을 연상시키는 프랑스의 대도 ‘밤여우’(뱅상 카셀)가 경쟁을 제의하고, 러스티(브래드 피트)의 옛 연인이자 유로폴 형사인 이사벨(캐서린 제타 존스)이 훼방을 놓는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미션 임파서블’식 문제 해결을 기대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정교한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도둑질 영화)의 굴레를 완벽하게 벗어던진 <오션스 트웰브>는, <핑크 팬더> 같은 60~70년대의 범죄 코미디 영화처럼 느슨하게 흘러간다. 게다가 줄리아 로버츠의 역할을 키워 ‘오션의 열두명’으로 만든 뒤, 프랑스의 대도둑, 유로폴 형사에다 수많은 카메오들을 흩뿌린다. 여기에다 대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향하는 법이라며 훈수 두는 것도 좀 나태한 일일 테다. 영특한 소더버그는 한번도 바다를 바라보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유럽의 보기 좋은 도시들을 배경으로 패셔너블한 의상을 걸친 할리우드 스타들을 데리고 유유자적 파티를 즐긴다. 사공들이 황홀할 정도로 매력적이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법이다.

어쨌든 <오션스 트웰브>에서 짜임새 있는 영화적 성취를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크다. 소더버그의 카메라는 자신만만한 젊은 스타일리스트의 능력을 과시하듯 빛나고, 미술과 음악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영화의 흥청망청한 매력을 북돋우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찰나적인 할리우드식 과용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샹들리에처럼 조잡하게 반짝거리는 할리우드식 공허함에도 진실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오션스 트웰브>는 그 드문 것을 쟁취한 오락거리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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