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말풍선으로 ‘보여주는 유머’ 만드는 사람들… 전문 사이트 ‘마이팬’에서 콘텐츠 수익모델 찾는다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인터넷상에서 ‘칼이쓰마’로 널리 알려진 나상혁(23)씨가 처음 유머를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한 것은 6년 전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이었다. 사람들이 자기가 쓴 글을 읽고 재밌어하며 추천해주는 게 좋았다. 2년 전에는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면서 ‘공익요원 시리즈’라는 유머를 올려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톡톡 튀는 글만큼이나 외모도 비범하다. 콧수염, 빡빡머리, 힙합 패션과 피어싱…. 요즘은 이 개성 있는 외모를 내세워 ‘배우’로도 나섰다. 이른바 ‘포토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포토 드라마는 사진과 말풍선 등을 더하고 가공해서 마치 드라마를 부분 캡처한 것처럼 ‘보여주는’ 유머를 말한다. 기존의 유머 글에서 유머 작가들이 유머를 내레이션하는 내레이터들이었다면, 포토 드라마에서 유머 작가들은 유머를 연출하는 프로듀서이자 주인공이 된다.
얼마 전에 마이팬(www.myfan.co.kr)에 나상혁씨가 올린 ‘크리스마스 솔로부대 생존법 베스트 10’이 그런 예다. 만일 그가 같은 내용을 유머 글로 썼다면 ‘크리스마스 솔로부대…’는 읽기에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이혼 관련 텔레비전 프로를 보며 스스로를 위안한다’는 내용을 아무리 설명해도, 텔레비전을 보며 “잡것들… 걍 갈라서라”고 말하는 나씨의 얼굴 표정만큼 강렬하지는 않을 것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도한다’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이건 오히려 커플들을 위해서 멋진 크리스마스를 비는 게 아니야?”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스트롤바를 아래로 내리면 ‘크고 뾰족한 눈으루다가…’라는 지문과 함께 영화 에서 우박을 맞고 대피하는 장면 한컷으로 솔로들의 심경을 단칼에 대변한다.
글솜씨론 한계… 펌킨족을 공략하라
경력 5년의 유머 작가로 명성을 쌓아가던 나씨는 네티즌의 관심사가 텍스트에서 비주얼로 옮겨가는 것을 민감하게 포착했다. 유머 게시판에서도 비주얼이 없는 텍스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촌철살인의 글솜씨만으로는 새로운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을 게 틀림없었다.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한 한컷의 이미자가 탄핵 정국을 알리는 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동시에 애니메이션이나 사진을 이용한 플래시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품도 많이 들고 다운받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대안으로 디카(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서 드라마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드라마는 동영상이어야 한다는 발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은가.”
포토 드라마의 출발은 지난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티즌 팬들을 몰고 다니는 유머 작가들이 동료 작가 양수현(36)씨의 집에 한데 모였다. 양수현씨는 국내 최초의 인터넷 가수 ‘류시아’를 데뷔시킨 당사자. 이들이 모인 목적은 유머 작가를 직업으로 해서 살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플래시 소설 과 삽화가 있는 유머시 (Lovis)로 열성팬을 두고 있던 양씨 역시 텍스트만으로는 더 이상 네티즌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며 콘텐츠 생산능력을 충분히 검증을 받은 작가들이기에 시나리오는 믿을 수 있었다. 게다가 포토숍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동료가 있기에 둘을 결합하면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인터넷의 정보 유통 혹은 소통 방식인 ‘퍼뮤니케이션’에 주목했다. 퍼뮤니케이션은 미니홈피와 블로그 같은 ‘1인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퍼옴’으로써 소통을 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퍼뮤니케이션을 즐기는 ‘펌킨족’(퍼옴의 펌과 즐거움을 뜻하는 킨(Kin)의 합성어로, 킨이 즐거움을 뜻하는 것은 Kin을 90도 돌려보면 한글 ‘즐’자가 비슷하기 때문)이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들면 전체 조회 수 100만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여기에서 유머 작가들이 안정적으로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자유로운 퍼뮤니케이션을 허용하면서도 문화 콘텐츠 생산자의 몫을 챙길 수 있는 수익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당시 모였던 유머 작가들의 고민의 결과가 펌 전문 사이트 ‘마이팬’을 만들었다. 팬이 작가를 키우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이팬의 정보관리자로 나선 양수현씨는 “아무리 작품 조회 수가 많더라도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다. 작가의 생명력을 키우는 것은 팬들에게 달려 있다. 팬들의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작가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인터넷에서 선풍적 인기를 모은 작품이라 해도 출판을 했을 때는 성공을 장담하기 힘들다. 설령 몇만부가 팔려도 6개월 이상의 작업 기간을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고료가 지급될 뿐이다. 그래서 마이팬은 작가들이 작품을 올릴 때부터 팬들의 지원을 유도하려고 한다.
현재 마이팬의 베스트 작가 목록에는 17명이 올라와 있다. 이들에게는 팬클럽 구실을 하는 ‘혈맹연합’이 구성된다. 혈맹연합은 얼리어답터 구실을 하는 펌킨족들이 가입해 작가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원할 예정이다. 네명의 작가가 지난 8월부터 한 연립주택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들은 팬들의 지원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큐피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박상진씨는 “지금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은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재미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 직업적인 콘텐츠 생산자로 대접받고 싶은데 아직은…”이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혈맹연합’ 되실래요?
마이팬 작가들은 혈맹연합 가입비 유료화가 난항을 겪자 포토 드라마를 통한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선 포토 드라마에 상품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를 접목하려고 한다. 오는 1월8일 첫 방영하는 SBS 드라마 을 제작하는 아이에이치큐처럼 PPL로 10억원대의 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포토 드라마의 제품 노출 횟수와 시간으로 따지면 배너광고보다 훨씬 ‘디지털 구전’ 효과가 높아 나름의 수익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 방송에 비해 소재의 제약이 거의 없으며 인기 캐릭터는 상품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미 포토 드라마의 광고 효과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포토 드라마가 모바일 서비스로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 음악이 있는 포토 드라마로 휴대용 동영상 재생상치(포터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를 통한 서비스 등이 이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포토 드라마는 돈이 될 것인가. 네티즌들이 포토 드라마라는 장르를 기억하게 된 것은 지난 12월2일 ‘독버섯’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취재진을 피해 PC방으로 잠적한 독버섯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가 ‘삼촌과 조카... -_- 그 끝없는 전쟁’이라는 작품을 올리면서부터다. 물론 이전에도 비슷한 작품은 있었지만 ‘삼촌과 조카…’만큼 펌킨족의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다. 조카의 공부를 도와주던 삼촌이 조카의 문제집에 실린 ‘끝말 이어가기’ 문제를 접하고 쩔쩔매며 당황해하는 식의 내용을 담은 ‘삼촌과 조카…’는 각종 유머 사이트로 옮겨가 네티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많은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는 독버섯의 진가를 확인하게 한 것이다. ‘삼촌과 조카…’는 보고 또 봐도 재미있는 포토 드라마의 지존 구실을 하고 있다.
포토 드라마가 수익 모델로 연결될지 속단하긴 이르지만 인터넷상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는 데 성공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한번 보고 나면 혼자 보기 아깝다고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퍼뜨린다는 게 그 증거다. 블로그가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바꾸었듯이 포토 드라마가 네티즌, 모바일족의 메시지 전파 방식을 바꿀지도 모른다. 플래시는 동영상인지라 포토 드라마보다 손이 가고, 만화는 그림체를 숙달하기 위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숍 작업 능력만 있으면 되는 포토 드라마는 한결 손쉽다. ‘크리스마스 솔로부대…’처럼 작가 1인 드라마가 될 수도 있고 ‘삼촌과 조카…’처럼 주변 사람을 등장시킬 수도 있다. 장소 섭외로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다. 아이디어에 따라 촬영 장소만 물색하면 그만이다.
손쉬운 표현도구, 새로운 인터넷 장르
요즘 포토숍 프로그램이 아래아 한글만큼 보편화됐기에 원본 사진에 말풍선을 달거나 이미지를 수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네티즌들은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마저 허물고 있다. 일례로 최근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새로 출범한 ‘다음플래닛’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한국방송 드라마 의 뮤직 비디오 콘테스트를 열었다. 이 콘테스트에는 순식간에 1만여명이 참여해 음악·영상 편집 능력을 자랑했다. 워드 프로그램도 그리 범용화되지 않았던 십 몇년 전에 비해, 포토숍이나 영상 제작도 쉽게 생각하는 지금 네티즌들의 능력은 진화는 눈이 부시다. 앞으로 네티즌들은 포토 드라마처럼 만화도, 영화도, 글도 아닌 새로운 표현 장르를 만들어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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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줄거리라면 공중파 방송에서 ‘재현 드라마’로 다뤘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형식 파괴 드라마는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재현 드라마에는 컴퓨터 그래픽이 동원되기도 한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디지털 방송의 면모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통신망 연동으로 양방향성을 제공하거나 텔레비전이 첨단 지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까닭에서 인터넷의 특성을 살린 에 쏠린 관심이 적지 않다. 뭔가 다른 드라마를 보여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현재 1, 2회 분으로 서비스할 ‘첫키스’ 편은 촬영을 끝낸 상태에서 메이킹 필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인터넷 드라마라고 해서 아마추어들이 디지털 캠코더로 며칠 만에 뚝딱 해치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제작진도 방송 경력이 만만치 않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학에서 뉴미디어 관련 석사 과정을 마치고 드라마를 제작한 전진성 감독이 총괄 지휘하며 시트콤 드라마 대본을 쓰는 황현인 작가, MBC 의 김기정 촬영감독 등도 참여하고 있다. 촬영 스태프가 모두 50여명이나 된다.
네티즌들은 인터넷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방송을 체험할 수 있다. 일단 인터넷의 근본 정신이라 할 수 있는 ‘공유의 정신’은 통하지 않는다. 포토 드라마가 펌킨족들에 의해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과 달리 인터넷 드라마는 돈을 내고 콘텐츠를 보는 네티즌들이 있어야 한다. 전진성 감독은 ‘유료 콘텐츠’에 대한 거부감이 줄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인터넷이 공중파의 재방영 매체 구실을 하는데도 유료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모바일 드라마 을 40여만명이 다운받기도 했다. 유료 콘텐츠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양질의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것이다.”
인터넷 드라마는 ‘시청자’의 개념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공중파 드라마는 방송사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화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인터넷 드라마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화면을 선택해서 볼 수 있다. 5개의 각도에서 실시간으로 다른 화면을 잡아 서비스하는 것이다. 예컨대 크레인과 팰리스 등을 이용해 레일 위 5m 지점에서 촬영한 화면도 제공된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화면 옆의 채팅 창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때론 줄거리를 선택해서 볼 수도 있다.
아직까지 인터넷 드라마 시리즈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진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터넷 방송 하면 주로 성인물을 연상하기에 장소를 섭외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텔레비전 화면보다 훨씬 작은 모니터에 서비스해야 하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표정’을 최대한 살려야 했다. 제작진은 디지털 콘텐츠가 활성화되고 있기에 2년 정도 지나면 인터넷 드라마가 기존 방송의 경쟁 미디어로 자리잡을 것이라 믿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 세트톱박스가 보급되면 텔레비전 수상기로 인터넷 드라마를 볼 수도 있다. </tv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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