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3천만원짜리 남루한 드라마가 획득한 놀라운 현실감 </font>
▣ 이성욱/ 기자 lewook@cine21.com
(각본·감독·편집 노동석)은 딜레마의 영화다. 아니, 진퇴유곡의 난처한 처지를 스스로의 모순으로 극복한 자못 충격적인 영화다. 여느 한국 영화 제작비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3천만원이란 돈으로 만든 영화가 개봉에 이르렀다는 사실부터 놀랍다(12월3일 서울 씨어터2.0, 하이퍼텍 나다, 부산 DMC). 73년생 감독의 동갑내기 지인들을 배우 겸 스태프로 끌어들여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다는 건 소수의 영화제에서나 보여질 ‘출생성분’이다. 더구나 이건 나 같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다. 세트, 조명, 분장, 의상 등이 뒷받침돼 허구를 현실로 믿게 할 만한 마술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 제작비로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은 디지털카메라라는 최소 비용의 기동성으로 남루한 조건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오히려 그걸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인다. 신용카드, 인터넷, 현금자동지급기(ATM), 휴대전화 등 첨단 기기의 편리함에 푹 빠져 살면서 그 때문에 더욱 가난과 절망의 수렁에 깊이 빠져드는 ‘나의 세대’의 기괴한 맨얼굴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낸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병석(김병석)이 유일한 재산인 디지털카메라로 결혼식 비디오를 찍거나 고깃집에서 불 피우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현실은 영화의 빛나지 않는 때깔 때문에 더욱 현실감을 얻는다.
아마 노동석 감독은 고작 이런 조건으로 첫 장편영화를 찍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기력을 탓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무기력은 극중 주인공인 병석과 그의 여자친구 재경(유재경)의 하릴없는 무기력을 절묘하게 연출해내는 굉장한 기력이 되었다. 우리 세대는 이렇게 무기력하다는 걸 이렇게 웅변적으로 외치는 영화가 또 있을까?
자기만큼이나 대책 없는 형의 빚까지 끌어안은 병석의 사연도 그렇지만 여자친구 재경이 한 발짝씩 내딛는 절망 스토리는 슬프다 못해 처연하다. 그런데 그 슬픈 사연을 만들어가는 조건과 외부 인물들이 기막힌 웃음을 선사해준다(경험에 기인했을 카드깡 과정의 섬세한 재현과 카드깡 사채업자의 캐릭터는 예기치 못한 한방을 안겨주는 재밋거리다). 리얼리티를 차곡차곡 쌓으며 그 내부에 슬픔과 웃음을 배합할 수 있는 솜씨는 예사롭지가 않다. 웃음은 그 웃음 때문에 슬픔을 배가한다.
재경은 사채업자 사무실에 취직하지만 우울해 보인다는 핀잔과 함께 하루 만에 해고당한다. 인터넷을 뒤지다 홈쇼핑에서 물건을 떼다 팔면 상당한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유혹에 솔깃해 돈을 끌어모아 투자하지만 감당 못할 빚만 더 지게 된다. 병석도 만만치 않다. 병석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이름으로 돈을 얻어쓴 형 때문에 그토록 아끼는 비디오카메라를 팔아야 할 처지에 이른다. 이상하게 빚을 지게 되고, 그 빚 때문에 더 큰 빚을 져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나의 세대’로 호칭된 젊은 세대의 미래에 과연 희망이란 단어가 존재할까 싶을 만큼의 비감함을 던져준다.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의 절망감을 대단한 무게감으로 던져주는 영화의 완성도, 자신들의 초라함을 언젠가 드러낼 재능과 끈기로 빛나게 만든 스크린이 밝은 희망이 되어 돌아온다. 이렇게 은 줄곧 ‘어?’를 ‘아!’로 만들어내는 역설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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