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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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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초콜릿처럼 진하고 달콤한…

등록 2004-12-02 00:00 수정 2020-05-03 04:23

여성 듀오 ‘애즈원’ 펑키&솔 그룹 ‘지플라’… 개성 있는 R&B·솔과 함께 가을에 안녕을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낙엽이 쌓이고 겉옷이 두툼해지는 늦가을, 이 계절의 끝을 음미하고 싶다면 카푸치노 한잔에 리듬 앤드 블루스(R&B) 한곡은 어떨까. ‘꺾기’로 점철된 기교 위주의 노래에서 잠시 벗어나, 한국 여자 가수들의 달콤하고 진한 목소리에 편안하게 귀를 맡겨보자. 2년 만에 4집 <restoration>을 낸 사랑스런 R&B 듀오 ‘애즈원’(As one)과 매력적인 펑키·솔(Soul) 음악으로 무장한 신생 5인조 밴드 ‘지플라’(G-Fla)가 늦가을의 주인공이다.


한국의 흑인음악, 중요한 건 ‘필링’

재미교포 출신 민과 크리스탈로 이뤄진 애즈원은 1999년 데뷔 시절부터 매혹적인 R&B를 선보이면서 <mr. a-jo> 등 다양한 히트곡을 내놨다.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한 덕에 그들의 노래엔 가스펠 냄새가 묻어 있다. 극적인 멜로디는 없지만 밀고 당기는 비트를 타고 나오는 선율은 천편일률적인 기존의 발라드와 다른 맛을 낸다. 4집 수록곡 <oriental express> <beautiful love>에서 R&B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3집보다 얼마나 음악적으로 발전했느냐를 따지긴 힘들지만, 유치하고(?) 감미로운 사랑·이별 이야기는 이 계절에 썩 어울린다.
첫 음반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플라(보컬 정인·건반 이궐·드럼 정수영·베이스 정희영·기타·김지인)는 기타를 제외한 구성원들이 여자로, 음반 발매 전부터 공연을 통해 솔 마니아들의 관심을 받았다. 힙합 듀오 리쌍의 객원보컬로 <rush> 에서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를 선보였던 보컬 정인이 눈에 띈다. “따로 음반 안 내냐”는 질문에 시달려온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독특한 음색으로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솔 디바’ 메이시 그레이(Macy Grey)를 연상케 할 만큼 개성 있는 음색을 자랑한다. ‘지금은 옥탑방, 마음은 저 바다’라고 흥얼거리는 같은 노래에서 매력이 드러난다.


블루스에 리듬을 실은 R&B는 흑인음악의 하나로 재즈나 가스펠, 백인음악, 아프리카 노동요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혼재돼 있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네오솔(Neo-Soul)은 솔과 도회적 R&B를 조화시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이다. 어차피 중요한 건 장르에 대한 정의보단 이 모든 걸 아우르는 호소력 짙은 ‘필링’을 음미해보는 것이다. 기교 중심의 가창, 발라드 위주의 곡 편성, 표준화된 반주 등으로 다양성이 부족한 한국 R&B·솔 음악판에 진한 초콜릿처럼 씁쓸하고 달콤한 맛을 내는 목소리들이 있어 반갑다. 아직은 외국의 유명 음반 같은 밀도 있는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하지만, 한꺼번에 뭉개져 들어온 흑인음악 덩어리에서 자신의 실을 뽑아낸 가수들의 개성은 즐겨볼 만하다. 다만, 애즈원의 타이틀 곡 이나 지플라의 타이틀 곡 <love story>는 비교적 단순한 발라드 곡으로 여전히 한국에서 정통 장르음악을 본격적으로 하는 건 요원해 보이니, 가수나 제작사의 부족한 투지와 기획력이 부족한 게 아쉽다.
</love></rush></beautiful></oriental></mr.></rest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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