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하고 빤한 영화 에 넘치는 문제적 에너지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11월26일 개봉하는 한국 영화 는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등장인물이나 줄거리나 어느 한구석 귀여운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요란스럽고, 썰렁하고, 어처구니없고, 문득 스산해지는 두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그 제목이 와 닿는다. 영화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만만치가 않아진다. 사회적 규범이나 상식과는 전혀 따로 노는 한 가족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황당하고 정신없다. 이야기 전개는 불친절하고 편집은 툭툭 튄다. 그럼에도 구태한 관습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빤한 상식으로 봉합하는 최근 영화들에서 느낄 수 없는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는 2004년 한국 영화의 발견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은 문제적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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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분야에 정통한 박수무당 수로(장선우)와 두 아들 후까시(김석훈)와 개코(선우)가 사는 철거촌 아파트에 젊은 여자 순이(예지원)와 또 다른 아들 머시기(정재영)가 흘러들어오면서 한 여자를 둘러싸고 아버지와 배다른 세 아들이 벌이는 경쟁이 영화의 큰 뼈대다. 더럽고 살벌한 치정 싸움처럼 보이겠지만, 영화는 사실 오각의 애정 구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콩가루에다 각자 생활력도 별로 없어 보이는 가족 구성원들은 삶에도 연애질에도 아무런 전략이 없고, 히죽 웃는 순이의 시선에 따라 멱살 잡고 싸우다가 같이 술 퍼마시고 집에 들어가 자는 식이다.
영화는 철거 깡패인 머시기가 한 철거촌에서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4년이 지난 다음의 본무대 역시 황학동 철거촌이다. 대부분의 가구가 집을 비웠지만 수로네 집 가족들은 개의치 않는다. 이 속도전의 현실에서 그들은 정지된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아들이 한명씩 찾아와 가족을 일군(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이 아닐 가능성도 농후한) 이들에게는 통상적인 부성애나 가족애, 형제애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날 벼락처럼 찾아온 순이는 이 칙칙한 가족에 활기를 불어넣지만 그렇다고 붕괴된 가족을 복원하는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도리어 순이는 삐쭉삐죽 튀어나온 가족 각자의 에너지를 극대화해 꾸물꾸물하던 이 가족과 무너져가는 폐허의 철거촌을 ‘빅뱅’시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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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언급할 때 꼭 등장하는 것이 에미르 쿠스트리차에 대한 비유다. 혼돈과 어수선함 속에서 요란한 축제의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점에서 는 쿠스트리차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쿠스트리차 영화의 결론이 땅덩이가 갈라지고 침대가 떠다니는 등 환상의 극대치에서 마무리되는 반면, 의 결론은 오히려 땅으로 내려온다. 머시기가 목돈을 만지기 위해 순이와 수로를 결혼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폐허 위에 깔려 있는 신부 입장 카펫처럼 쓸쓸하다. 그리고 주먹질을 해대던 세 형제는 어김없이 포장마차에 모여앉아 술을 마신다. 여기에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나 쿠스트리차의 분위기로 다 담아낼 수 없는 한국적 현실에 대한 진득한 성찰이 담겨 있다. 로 연출 데뷔를 한 김수현 감독은 이 영화에서 수로를 연기한 장선우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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